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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컴퓨팅 창시 … 잡스 이을 차세대 IT 리더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닷컴 창업자는 정보기술(IT)을 포함한 전 산업계가 소셜(Social) 혁명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9월 자체 콘퍼런스인 ‘드림포스’에서 그는 “앞으로 5년 안에 기업의 마케팅책임자가 정보책임자보다 기술 관련 지출을 더 많이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룸버그뉴스]




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19> ‘세일즈포스닷컴’ 설립자 마크 베니오프

2009년 여름부터 1년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살았다. 당시는 애플이 그야말로 ‘지구 최고의 기업’으로 추앙받던 때였다. 특히 매년 6월 샌프란시스코 시내 한복판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리는 ‘애플개발자회의(WWDC)’는 가히 세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축제라 할 만했다. 몇 개월 전부터 참가신청을 한다, 어떤 제품이 처음 등장할 것이다 등등 실리콘밸리 사람들 사이에선 기대에 부푼 대화가 오가곤 했다. 그때 알았다. ‘세일즈포스닷컴(Salesforce.com)’이란 회사를. 물론 이전에도 이름이야 들어봤었다. 하지만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은 WWDC에 필적할 만한 콘퍼런스로 너나없이 세일즈포스닷컴의 ‘드림포스’를 꼽았다. 매년 11월 역시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는 세계 최고의 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몰려든다고 했다. 구글이 매년 여는 ‘구글 개발자대회’ 같은 행사도 있지만, 시쳇말로 ‘신(神)급 엔지니어’들의 진정한 일합 겨루기는 드림포스에서 이루어진다는 거였다.



2011년 여름, 드디어 샌프란시스코 해변가에 자리잡은 세일즈포스닷컴 본사를 찾았다. 기자 시절이었던 만큼 취재를 위한 방문이었다. 그때 또 한 번 놀랐다. IT를 넘어 세계 산업의 트렌드를 바꿀 근본적 변화가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름 하여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PC나 스마트폰 같은 기기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해 각종 소프트웨어와 자료들을 빌려 쓰거나 꺼내 쓰는 것을 말한다. 전 과정이 마치 구름(cloud)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인터넷상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다.



15살에 게임회사 세운 신동 프로그래머

세일즈포스닷컴은 이 분야의 진정한 개척자, 특히 기업 시장에서의 선구자다. 온갖 값비싼 기업용 소프트웨어들을 직접 구매하지 않고 인터넷상에서 빌려 쓸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그렇게 해서 거두는 이 회사의 연간 매출은 40억 달러(2012년 기준)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아마존·구글·애플 같은 회사를 누르고 미국 경제월간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1위에 올랐다. 같은 해 경제지 포춘은 이 회사 창업자이자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베니오프(49)를 ‘올해의 기업인’으로 선정했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마저 그에게 2012년 ‘혁신상’을 안겼다. 스티브 잡스(애플), 제프 베저스(아마존)를 잇는 IT업계 차세대 리더 중 한 명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것이다.



베니오프는 샌프란시스코의 유대계 가정에서 자랐다. 15세 때 이미 게임회사를 창업한 ‘신동 프로그래머’였다. 남가주대 경영학과 재학 중이던 스무 살 시절엔 애플 매킨토시사업부에서 일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기업용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인 오라클에 스카우트됐다. 입사 1년 뒤 회사가 뽑은 ‘올해의 루키’에 선정됐고, 26세 때는 최연소 부사장이 됐다. 그렇게 잘나가던 그는 1999년 돌연 장기휴가를 내고 하와이로 떠났다. 오두막집 하나를 빌려 장고에 들어갔다. 그의 꿈은 창업가이자 자선사업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회사를 만들까. 그는 ‘인터넷이 소비자와 관련한 모든 방식을 바꿀 것’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기업용 시장이라 해서 못 그럴 게 뭔가. 그는 기업들이 인터넷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빌려 쓰고, 데이터 또한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며, 그 관리까지 맡길 수 있는 서비스를 생각해 냈다. CD롬으로 구성된 ‘실물 패키지’가 아닌, 인터넷을 통한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Software as a Service)’, 일명 SaaS의 시작이었다.



그해 베니오프는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엔지니어 3명을 영입한 뒤 사업을 시작했다. 집 바로 옆 원룸을 빌려 간이 탁자와 접이식 의자를 들여놨다. 모든 것이 부족했기에 ‘80% 차이를 만드는 20%’에 집중했다. 탁월한 멘토, 뛰어난 제품, 차별화된 마케팅이었다. 그는 우선 오라클 CEO인 래리 앨리슨을 개인 투자자이자 회사 이사진으로 끌어들였다. 이어 옛 상사인 스티브 잡스를 찾아갔다. 잡스는 세 가지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첫째, 24개월 안에 10배 혹은 그보다 더 커져라. 둘째, 서비스 즉시 대형 고객을 잡아라. 셋째, 애플리케이션 경제를 구축하라. 베니오프는 “애플리케이션 경제라는 게 뭐냐”고 묻자 잡스는 이렇게 답했다. “나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그걸 이해해야 한다.”



언변ㆍ유머감각 탁월 … 콘퍼런스의 제왕

베니오프는 수개월간 고민한 끝에 답을 찾았다. 기업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위한 온라인 작업실 겸 장터를 연 것이다. 덕분에 세일즈포스닷컴은 단지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회사가 아닌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애플 앱스토어와 같은 시스템을 2년 앞서 구축한 셈이다.



아울러 베니오프는 SaaS라는 새 개념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소프트웨어는 끝났다(No Software)’는 식의 다소 과격한 메시지를 마케팅의 전면에 내세웠다. 드림포스처럼 규모 크고 잘 짜인 이벤트로 개발자들을 규합했다. 뛰어난 언변과 유머감각으로 각종 콘퍼런스의 1순위 섭외 대상자가 됐다.



무엇보다 베니오프는 새로운 자선사업 모델을 제시했다. ‘1/1/1’, 즉 자본의 1%와 제품의 1%를 사회에 기부하고 전 직원 업무시간의 1%를 자원봉사활동에 쓰는 것이다. 구글을 비롯한 여러 기업이 이 모델을 벤치마킹했다. 베니오프는 2010년 어린이병원 건립을 위해 개인 재산 1억 달러를 기부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요즘 베니오프의 관심은 온통 ‘소셜 산업’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소비자의 소셜 프로파일을 분석한 뒤 이를 기업에 제공함으로써 마케팅 혁명을 주도하려는 것이다. 세일즈포스닷컴은 그 분석 도구를 제공하고, 이를 각 기업의 고객 명단과 연동하며, 분석에 필요한 엄청난 데이터를 대신 처리함으로써 수익을 얻는다.



베니오프는 세상을 바꿀 IT혁명의 현 단계를 소셜(Social)의 스펠링을 따서 정의한 바 있다. S는 속도(Speed), O는 개방(Open), C는 협업(Collaboration), I는 개인(Individual), A는 이에 대한 지지(Alignment), L은 이런 각 요소들을 조화롭게 이끌 수 있는 리더십(Leadership)을 의미한다. 참으로 벽에 붙여 놓고 매일 곱씹을 만한 화두다. 이를 거스르는 건 산업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심지어 정치적으로든 곧 도태 혹은 퇴보를 뜻하기에.





이나리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기업가정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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