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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지지선 1060원 … 연내 1050원 아래로는 안 갈 것”

원화 가치가 연중 최고점까지 근접한 23일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에서 한 딜러가 이날 하루 동안의 환율 추이 그래프를 지켜보며 업무를 보고 있다. [뉴시스]
#24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본관 대회의실. 수출 중소기업 임직원 120여 명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곳에서 열린 ‘환율전망 및 환리스크 관리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환율전망 강연 후 전문가와의 일대일 맞춤형 상담도 진행됐다. 중앙회 통상정책실 관계자는 “올 들어 열 번째 열린 설명회인데 이전보다 참석자가 30% 넘게 늘었다”고 말했다. 같은 날 대한상의 주최로 ‘기업 환관리 방안 설명회’도 열렸다. 김범준 대한상의 거시경제팀 연구원은 “최근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크게 올라가면서 긴급히 마련한 자리였지만 예상보다 많은 150여 명이 참석했다”고 말했다.

원화 강세 어디까지 … 민간 경제·금융 연구소 긴급 조사

#24일 외환시장에서 한때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54.3원을 기록하며 1050원 선을 위협하자 최희남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정책국장과 유상대 한국은행 국제국장은 공동으로 구두 개입에 나섰다. “정부와 한은은 최근 원-달러 환율의 일방적인 하락 움직임이 다소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시장 내 쏠림 현상이 심화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후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060원 선을 회복했고 이날 장은 1061.0원으로 끝났다. 다음 날인 25일 종가도 구두개입 덕에 1061.8원을 기록했다. 기재부와 한은이 공동으로 구두 개입에 나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7월 이후 5년3개월 만이다.

환율이 한국 경제의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환율 변동폭이 커지면서 금융시장은 출렁이고, 계속되는 원화 강세 추세로 수출 기업은 불안해한다. 최근 정부의 구두 개입으로 주춤해졌지만 강세 기조는 여전하다. 원-달러 환율이 1100원대를 넘었던 과거의 학습경험으로 기업들은 ‘아직은 견딜 만하다’는 입장이 주류이나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현대경제연구원 김민정 연구위원은 “원화절상 속도가 상당히 가파르다”며 “지금 같은 속도가 계속되면 실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기업·정부 모두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심의 초점은 원-달러 환율이 어디까지 떨어질 것이냐다. 중앙SUNDAY는 24~25일 주요 민간경제연구소와 4대 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거시경제·환율 담당자에게 ‘원화 가치가 연말까지 어디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느냐’고 물었다. 응답자들은 대답은 대부분 같았다. ‘원-달러 환율의 1차 지지선은 1060원, 2차 지지선은 1050원’이란 거다.

LG경제연구원 이창선 연구위원은 “연내 원-달러 환율이 1050원 아래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너무 크고 속도가 빨라져 정책당국이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말까지는 1050~1070원 사이를 오갈 것”이라며 “강세 기조가 이어지면서 내년 중엔 1030~1060원 사이를 오갈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선 원화 약세 반전 가능성도 제기
우리금융지주산하 경영연구소 김진성 거시경제실장도 “1050원 아래로 내려가지는 않겠지만 원화 값은 기조적으로 강세를 유지할 것”이라며 “올해 원-달러 평균 환율이 1090원 선인데 내년에는 1070원 수준까지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경제연구원·대한상의 조사본부와 KB금융지주·신한금융지주·하나금융지주 산하 연구소들도 모두 1050원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원화 강세 전망은 ▶다른 신흥국에 비해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좋아 외국인 투자 선호도가 높고 ▶18개월 연속으로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면서 달러 유입이 늘고 있고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연기로 달러화가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데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선 원화 가치가 약세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익명을 원한 외국계 투자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1060원 선을 지키려는 정부의 의지가 강력해 보인다”며 “여기에 향후 미국의 양적완화 움직임이나 국내 유입 자금의 향방에 따라 약세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요즘 원-달러 환율이 매우 빠르고 불안정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어 원화 강세가 쭉 이어진다고만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원화 강세 추세가 이어지면서 수출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고 있다. 최근 이어지는 주요 상장사들의 3분기 (잠정)실적 발표를 보면 삼성전자를 제외한 자동차·정유 등 주요 수출 기업의 실적은 여전히 부진하다. 시장상황이 좋지 않은 데다 원화 강세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앞으로도 원화 강세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기업들은 걱정이다. 대·중소기업 간에 ‘아직은 견딜 만하다’는 입장이 대세지만 이제부터라도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대자동차 그룹 측은 “환율이 10원 떨어질 때마다 매출액이 2000억원씩 줄어드는 영업구조여서 환율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올 초 사업 계획을 세울 때 원-달러 환율을 1050원에 맞춰 놨기 때문에 아직 큰 영향이 없지만 환율 급변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24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결제 통화 다변화 ▶해외생산 확대 ▶고부가가치 자동차 출시 같은 환율 변동 대책을 마련해놓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항공유나 항공기 리스 비용이 모두 외화로 결제되는 만큼 환율 변동이 영업실적을 좌우한다”며 “아직까지는 큰 영향이 없지만 외환시장의 추이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환율 변화 대응 위해 24시간 모니터링
환헤지 수단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의 고민이 아무래도 더 크다. 서울 구로구에 있는 정보기술(IT) 벤처기업 T사의 박모(46) 사장은 “아직까지야 괜찮지만 1050원 아래로 내려가면 영업이익률이 5% 아래로 떨어진다”며 “이미 연간 선물환 매도 한도 금액을 모두 썼기 때문에 현재로선 환율 변동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라고 토로했다. 올해 매출 목표 800억원을 세워놓은 이 회사의 수출 비중은 60% 수준이다. 이 회사가 선물환 계약을 더 많이 체결하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중소기업들이 큰 손실을 본 2008년 키코(KIKO) 사태의 트라우마 때문이다(키코란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변동할 경우 미리 약정한 환율에 약정금액을 팔 수 있도록 한 파생금융상품). 박 사장은 “우리는 당시 키코 비중이 작은 편이었는데도 그해 영업이익을 모두 날렸다”며 “그때를 생각해 올해엔 연간 달러 환전 예상액의 절반 정도만 선물환 계약을 맺었는데 다른 중소 수출기업도 대부분 사정이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창배 연구위원은 “환율은 변화의 방향도 문제지만 더욱 중요한 건 속도”라며 “갑작스럽게 변동이 생기면 기업들이 이에 맞게 사업 전략을 세우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국이 속도 조절에 나서야 하고, 중소 수출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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