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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통속 드라마와 미술의 절묘한 만남

몇 년 전 미얀마를 다녀온 후배의 이야기다. 한 현지인이 그를 붙잡고는 자기가 한국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봤다면서 줄거리를 얘기했다고 한다. 역경을 헤치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여주인공이 재벌 아들과 사랑에 빠지는데, 알고 봤더니 출생의 비밀이 있었고 등등…. 그러나 후배는 그게 무슨 드라마인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캐릭터와 플롯의 드라마가 어디 한둘인가.

팝아트 ‘Soap Opera’ 시리즈

이런 상투성은 그간 많은 비판을 받아왔고 이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패러디 돼 웃음거리가 되곤 한다. 그럼에도 지금도 여러 드라마에서 반복되고 있다. 플롯만 전형적인 것이 아니다. 배우들의 제스처도 다분히 상투적이다. 또 다른 지인은 외국 친구에게서 이런 질문을 들었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은 상대방의 팔을 강하게 붙잡아 휙 돌려세우거나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지르는 등 굉장히 격렬하던데, 한국인은 평소에도 그러느냐고. 한국 드라마의 문법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미처 의식하지 못하지만 외국인에게는 신기했던 모양이다.

통속 드라마의 장면처럼 우리 주변에 범람하는 대중문화 이미지를 외국인의 눈 같은 새로운 시점에서 관찰하거나 새로운 맥락(context) 속에 놓으면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띈다. 영국과 미국의 팝아트(Pop Art)는 그 점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앤디 워홀은 유명한 ‘캠벨 수프 깡통’ 그림을 1962년 처음 선보였는데, 수프 깡통을 썰렁하게 고스란히 묘사한 32점의 그림을 수퍼마켓에 진열하듯 갤러리에 줄지어 걸어놓았다. 한국식으로 하자면 컵라면을 재현한 그림들을 마트에 진열하듯 전시한 것과 마찬가지다. 갤러리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그 이미지를 접할 때 관객은 익숙하고도 낯선 느낌을 받게 된다. 평소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 대량생산·복제된 이미지가 얼마나 우리 시각을 지배했는지 깨닫게 된다.

이동기 작 ‘안경을 쓴 남자’(2013).
그런 면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팝아티스트’라고 종종 일컬어지는 이동기의 연작 ‘소프 오페라(Soap Opera)’는 팝아트의 정통적인 면을 계승하면서 한국적인 것을 절묘하게 살렸다. 서울 송원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아토마우스’ 캐릭터 그림 대신 ‘소프 오페라’ 시리즈가 주로 걸려 있다. 한국 드라마의 상투적인 이미지를 포착해 아크릴 회화로 재현한 것이다.

이 중 45도 각도로 클로즈업된 남자의 얼굴을 보여주는 ‘안경을 쓴 남자’만 봐도 어딘지 참으로 익숙하다. 한국 드라마는 종종 45도 각도로 클로즈업된 얼굴에 분노나 경악의 표정을 짓는 것으로 한 회가 끝나지 않던가?

이 작가는 외국 팬들이 한류 사이트에 올려놓은 드라마 캡처 사진들의 정형화된 이미지들에 흥미를 느껴 이를 작품 소재로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미국 드라마와 달리 유난히 가족이 나오는 장면이 많은 것을 포함해 한국 드라마엔 반복적 특징이 있다”고 작가는 지적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가족 사진’에서 빛바래고 구겨진 가족 사진의 클로즈업 역시 많이 본 장면이다. 한국 드라마의 단골 요소인 출생의 비밀이 극적으로 밝혀지는 장면에서 이런 사진이 두둥둥 하며 나오지 않던가? 이 그림을 보면 왜 한국 드라마에는 허구한날 출생의 비밀이 등장하는지에 대한 질문까지 떠오른다. 그것은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칼럼(중앙SUNDAY 매거진 8월 18일자)에서 지적된 것처럼 “출생의 비밀이 아니고는, 그러니까 내 부모가 달라지지 않고는… 성공도 신분상승도 없다는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 때문일 수도 있다.

이렇게 한국 대중문화의 상투적 이미지는 그 안에선 자제돼야 하지만, 다른 예술에선 오히려 동시대를 읽게 해주는 의미 있는 코드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는 한류를 접하는 외국인들에게도 폭넓게 어필할 수 있는 한국적 팝아트의 현명한 전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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