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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규의 시장 헤집기] 소득세 백년전쟁

딱 100년 전 일이다. 1913년 2월 우드로 윌슨 전 미국 대통령 얼굴엔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그는 “미국이 한결 정의로운 나라가 됐다”고 말했다. 그럴 만했다. 미 헌법 개정안이 확정돼 연방정부가 사실상 부자들을 겨냥해 소득세를 매길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윌슨은 서둘러 소득세법을 만들었다. 첫 세율은 겸손(?)했다. 순소득의 1%였다. 온갖 감세와 면세 조항이 곁들여졌다. 당시 미국인 가운데 소득세를 낸 사람은 1%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 역사가인 아서 슐레진저 2세는 “1913년 소득세법은 진보진영이 혁신시대(Progressive Era·1890~1920년)에 거둔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보수진영에도 되갚아줄 기회가 찾아왔다. 4년 뒤인 1917년 윌슨은 제1차 세계대전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2차 ‘자유채권(Liberty Bond)’을 발행해야 했다. 보수진영은 채권 법안 통과를 미뤘다. 다급한 나머지 윌슨이 손을 들었다. 이런 과정 속에 연방정부의 부채한도(Debt Ceiling)가 처음 도입됐다. 금융역사가 존 스틸 고든은 “소득세 도입 이후 뾰족한 수가 없던 보수세력이 마침내 훌륭한 방패(부채한도)를 손에 넣었다”고 평가했다.

이후 미국의 정치·경제 역사는 부자 증세와 부채한도가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하면서 펼쳐졌다. 1942년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부자들에게 95%나 되는 세율을 매기려 했다. 보수 쪽이 부채한도 증액을 거부하며 버텼다. 이런 식의 장군·멍군의 역사가 계속되는 가운데 18차례나 셧다운(연방정부 폐쇄)이 일어났다. 미 경제정책연구소(CEPR) 공동소장인 딘 베이커 등은 이를 ‘100년 전쟁’이라고 불렀다.

올해 셧다운 이전까지 어느 쪽이 이겼을까. 결론은 무승부였다. 방종과 거품 때문에 위기가 오면 어김없이 부자 증세가 추진됐다. 그때마다 보수 쪽은 부채한도를 방패처럼 앞세워 응전했다. 어느 한쪽의 완승은 불가능했다. 부자들은 어느 정도 세율 인상을 감수해야 했다. 반면 진보 쪽은 그 세율이 성에 차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올해 100년간의 균형을 깨려고 한다. 보수세력이 부채한도 증액을 대가로 의료보장(오바마케어) 중단이나 연기를 요구하지만 오바마는 꿈쩍도 않는다. 자신의 경제정책 스승인 루스벨트와는 정반대 모습이다. 양쪽은 내년 2월까지 부채한도를 늘려야 하지만 잠시 휴전상태다.

게다가 또 다른 중대 변수가 기다리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의 차기 의장에 대한 상원 인준이다. 재닛 옐런이 오바마의 지명을 받고 대기 중이다. 이르면 11월에 청문회가 시작된다. 공화당이 잔뜩 벼르고 있다. 상원에선 공화당이 소수지만 필리버스터(의사진행 지연 발언)로 인준 과정을 지연시킬 순 있다.

실제로 공화당은 2011년 필리버스터로 오바마가 Fed 이사로 지명한 피터 다이아몬드 MIT대 교수를 낙마시켰다. 공화당은 “그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지만 노동시장을 주로 연구했을 뿐 금융통화정책 전문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공화당은 달러 가치(물가 안정)보다 고용을 중시하는 다이아몬드의 Fed 입성을 막았다. 옐런은 다이아몬드 교수만큼 일자리를 중시한다. 양적완화(QE)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민주·공화 양당의 갈등이 재정뿐 아니라 통화정책으로 번지는 것이다. 올 연말 글로벌 시장이 평온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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