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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코끼리 아저씨

나는 코끼리가 좋다. 아마 세상 모든 동물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동물일 것이다. 제일 싫어하는 동물은 나 자신을 포함한 인간이라는 동물이고. 왜 코끼리를 좋아하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미워할 만한 것이 전혀 없어서 코끼리의 모든 것이 다 좋다, 뭐 그런 식으로밖에는 말할 수 없다.

원래 우정이란 그런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 같기는 한데 막상 들먹이자니 왜 친한지 잘 모르겠고, 일단 서로를 믿기 시작했으니 서로에게 관련된 모든 것이 전부 깨달음이 된다. 모든 것으로 시작해서 모든 것으로 끝나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우정이다. 다만 끝이 없기를 기도하면서 우리는 사랑도 하고 우정도 나누면서 세상을 살아간다.

나는 코끼리가 슬프다. 언젠가 코끼리가 문득 쓰러져 죽는 것을 보았는데, 그 거대한 코끼리가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무너질 때 나는 마치 이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었다. 나는 그날 그 순간 시인이 되었다. 아무튼 코끼리와 나의 관계가 이렇다 보니 코끼리에 관한 어떤 농담까지 좋아하게 됐는데, 널리 알려질 대로 알려진 그것은 이른바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3단계 방법’이다. 첫째, 냉장고 문을 연다. 둘째, 코끼리를 냉장고 안에 집어넣는다. 셋째, 냉장고 문을 닫는다.

보통 사람이 이 얘기를 처음 듣는다면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만약 성품이 맑은 사람이라면 약간의 침묵 뒤에 박장대소를 할 테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라면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미소 정도는 지어줄 만한 그런 얘기다. 하지만 코끼리의 진정한 측근인 내게 이것은 화두이자 악귀를 물리치는 주문(呪文)이다. 가령 나는 난관에 부딪혀 심하게 지쳐 있을 적에 즉각 웅얼거린다.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냉장고 안에 집어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그러면 정말이지 신기하게도 내 안 어디에서인가부터 은은하되 굉장한 힘이 솟구치고 정신이 또렷해진다. 이건 요술이 아니라 과학인지도 모른다. 정작 우리는 자신과 세상을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만들면서 좌절하기 마련이다. 내가 지금 뒤로 밀리고 넘어지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이유가 아닌 것이다. 진짜 이유는 쪽지에 몰래 적어 내 마음의 수많은 서랍 중 하나 속에 집어넣고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엉뚱한 이유를 내 실패에 들이댄다. 불문(佛門)에서는 이런 것을 두고 전도몽상에 빠졌다고 한다. 결단코 인생에 궁극적인 성공이란 없다. 있다면 끝없는 문제 해결의 과정이 있을 뿐이다.

사실 우리는 언제나 냉장고 안에 코끼리를 집어넣으면서 이제껏 잘 살아왔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러한 스스로를 잘도 부정하면서 막무가내로 절망하기 일쑤다. 여기서 또 하나. 평소에는 그렇게 냉장고 속으로 쑤셔넣기 힘들던 코끼리가 어째 수월하게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뻔히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를 때다. 코끼리를 냉장고 안에 집어넣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런데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진다. 어? 내가 냉장고 안에 들어와 있네? 내가 코끼리가 되어 냉장고 속에 갇혀버리고 만 것이다. 이러면 코끼리와 냉장고에 관한 이야기는 냉철한 선문답(禪問答)이 된다.

그러나 걱정할 게 없다. 밑바닥은 즐겁다. 잃을 것도 없고,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공 때문에 좌절한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는 실패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강해진다. 용기란, 그리고 능력이란,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내가 먼저 아는 것이고, 그런 나를 몰라주는 세상에 내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증명해 보이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코끼리를 만나게 된다.

인생은 무섭다. 얼마나 무서운가 하면 누군가 우리의 목숨을 구해줬다고 해도 우리는 금세 잊어버린다. 밑바닥의 유익은 사람들이 다 떠나버리니 그제야 누가 내 진짜 친구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세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그나마 세상을 솔직하게 사랑할 수 있다. 희망이 없으면 살지 못하듯 거짓말 같지만 인간은 비극이 없이는 살지 못한다.

왜 자살하려 하는가?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어차피 가만히 앉아 있으면 우리는 시간이 죽여주게 돼 있다. 이 미친 세상이 대체 어디까지 가는지 정도는 더 두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명심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우리가 아무리 외롭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마지막 친구, 나의 코끼리가 곁에 있는 것이다.



이응준 1990년 계간 문학과 비평에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온다’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국가의 사생활』과 시집 『애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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