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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大 동문회’란 단어, 북한에선 절대 금기어

김일성종합대학 정문.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 부근에 위치해 있으며 교내엔 실내 수영장과 기숙사, 각종 오락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중앙포토]


평양엔 없고 서울엔 있는 김일성종합대학 동문회

평양에도 없는 ‘김대 동문회’가 서울엔 있다. 북한 최고의 대학이라는 김일성종합대학 동문회다. 북한에선 동문회나 동창회·친우회가 일절 금지돼 있다. 종파주의·가족주의·지역주의를 배격한다는 원칙에 따라 노동당 조직과 외곽단체 말고는 그 어떤 사적 모임도 결성하지 못하게 돼 있다. 이 때문에 제아무리 김일성 주석의 이름을 딴 대학이라 해도 동문회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 가운데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생들이 하나둘 늘면서 이들이 동문회를 결성했다. 이름하여 ‘김일성종합대학 서울총동문회’. 정작 북한엔 없는 동문회가 대한민국 서울에 생긴 것이다. 남북 분단의 현실이 낳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중국 동문에 “탈북자 북송 막아달라” 편지
현재 동문회원은 모두 30여 명. 2010년 평양의학대학이 김일성종합대학에 편입되면서 10여 명이 추가됐다. 정치인부터 언론인·공무원·연구원·한의사·사업가까지 직업도 다양하다. 나이도 30대 초반에서 70대 후반까지 고루 분포돼 있다.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을 비롯해 장해성 망명북한펜센터 이사장,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현인애 NK지식인연대 부대표,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석영환 한의원장, 사업가 김형수·정경일씨 등이 주요 멤버다.

 이들은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너 자유의 땅을 찾은 일반 탈북자들과 달리 주로 제3국 대사관이나 대표부에 근무하거나 해외출장을 갔다가 한국행을 선택했다. 한 회원은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생은 북한에서도 핵심 엘리트 계층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보다는 개개인의 정치적 선택에 따라 결심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특히 김정일·김정은 세습 체제에 대한 회의가 결단을 촉진한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서도 북한 관련 활동을 하는 회원이 상당수다. 정보당국에서도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일부는 비밀리에 대북 활동을 돕기도 한다. 김일성 주석 주치의였던 석영환씨는 TV 건강 프로그램에도 종종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반면 아직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친지들 때문에 이름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 회원도 적잖다.

 한국에 온 뒤에도 삼삼오오 모이거나 개인적으로만 연락을 주고받던 이들은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을 지냈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2010년 10월 세상을 떠난 것을 계기로 동문회 결성을 추진하게 됐다. 황 전 비서가 ‘걸머지고 걸어온 보따리는 누구에게 맡기고 가나’라는 문구가 담긴 유작시(詩)를 남기자 “우리 동문들이 남북통일의 짐을 나눠 져야 하지 않겠느냐”며 의기투합하게 된 것이다. 회원들은 대부분 재학 시절 황 전 비서의 특강을 들으며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모셔왔던 터였다.

 의견을 모은 끝에 2011년 8월 동문회를 정식 출범시켰다. 당시 통일교육원장이던 조명철 의원이 초대 회장을 맡았고, 올해 6월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이 2대 회장이 됐다. 김 동문회장은 “김일성종합대학이 북한에서 주체교육의 최고 전당, 민족간부 양성의 원종장(原種場), 학원의 맏아들 등 여러 호칭으로 불리고 있는데 우리가 이제라도 맏아들 구실을 제대로 해보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그때부터 회원들은 분기에 한 번꼴로 모여 친목을 다지는 한편 남북한 사회를 위해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해 왔다. 이병석 국회부의장과 김성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을 초청해 특강을 듣기도 했다. 김 동문회장은 “막상 한국에 와보니 일반인도, 사회 지도층도 북한에 대해 너무 모르거나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그럴수록 각계 인사들과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가 불거질 무렵엔 유학생 자격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한 중국의 당·정 간부들에게 “탈북자 북송을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중국 권력 서열 3위인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 상무위원장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2년간 공부한 동문이다. 또한 지난달 25일엔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일방적으로 연기한 것을 규탄하는 내용의 ‘탈북 지식인 구국성명’을 발표했다. 북한 관련 현안이 있을 때마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셈이다.

 회원들은 김일성종합대학을 ‘김대’라고 부른다. 물론 북한에서는 절대 금기시되는 호칭이다. 김 동문회장은 “북한에서 수령의 존함을 줄여서 말하면 용서받을 수 없는 모독죄로 몰리지만 한국에 온 이상 자유롭게 줄임말로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핵심계층만 입학 … 청탁 적발도 적잖아
김일성종합대학은 해방 다음 해인 1946년 개교해 지난 1일 67주년을 맞았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도 64년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경희와 남편 장성택도 정치경제학부 동창생이다. 이들 부부가 대학에 다닐 때 총장이 바로 황장엽 전 비서였다. 현재 15개 학부, 50여 개 학과로 구성돼 있으며 1만2000여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학생들은 학용품·교과서·교복에 시내교통비까지 지원받는다.

 북한 최고의 명문대답게 입학도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고교 성적이 우수해야 하는 건 기본. 학교별·지역별로 쿼터가 있어서 학교장과 시·군 인민위원회 추천도 필수다. 이렇게 뽑힌 학생들이 모여 시험을 보는데, 여기서 떨어져도 다른 대학에 지원할 기회가 보장된다.

 또한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출신 성분이 좋지 않으면 입학은 꿈도 꿀 수 없다. 김 동문회장은 “북한 주민들은 크게 적대계층, 동요계층, 핵심계층 등 세 부류로 나뉘는데 김일성종합대학의 경우 핵심계층 자녀들에게만 입학 자격이 주어진다”고 설명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 노동당 주요 간부의 약 40%가 이 대학 출신이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입학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당 간부들이나 사회 부유층이 자녀 입학을 위해 채점 담당자를 매수하거나 교수들에게 청탁하다가 적발되는 경우도 적잖다. 대학 내에서도 모두 열공만 하는 것은 아니다. 김 동문회장은 “재학생은 결혼을 못 하게 돼 있는데 몰래 연애하다 결혼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교내에선 절대 금연인데 몰래 피우다 걸리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80년대 말에는 당 고위 간부 자녀들이 카드 도박을 하다 걸려 전원 교화소에 보내지기도 했다.

 회원들은 요즘 “북한 최고의 대학 출신답게 한국에서도 제 역할을 다하자”는 다짐 속에 여러 활동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무엇보다 탈북 새터민들의 한국사회 정착에 도움을 주는 활동과 탈북 청소년 교육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또한 한국 청소년들과 대화의 자리를 자주 만들고 문화 이벤트나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해 남북통일의 중요성을 각인시킨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김 동문회장은 “서울에서 김대 동문들이 활발히 활동한다고 하면 김정은이 얼마나 불편해하겠느냐”며 “남북통일을 앞당기는 데 회원들 모두 미력하나마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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