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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치매’ 아버지의 결혼

행복했던 때, 사랑하는 사람들. 때론 아팠던 기억까지도 하나둘씩 잊게 되는 병. 사람들은 이 병을 ‘치매(dementia)’라고 합니다.



치매 환자가 있는 가족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한다고요. 사랑하는 가족에게 생긴 이 서글픈 병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될까요.



이번엔 치매를 앓고 있는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한평생 함께 살아온 부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스무 살 어린 간병인을 의지해 살다 할아버지는 혼인신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가족들은 아버지의 결혼이 무효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어떻게 판단을 했을까요? 사생활 보호를 위해 내용은 각색했습니다.





#딸의 이야기, ‘간병인’과 ‘어머니’



한국에서 연락을 받은 건 몇 달 전이다.



아버지는 의식을 자주 잃었다. 요양원으로 옮겨간 뒤로부턴 오랫동안 깊은 잠에 빠지는 시간이 늘어났다. 요양원에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구십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버지는 대부분의 한국 아버지들처럼 평생 자식을 위해 사셨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돈을 벌겠다며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탔던 것이 타향살이의 시작이었다. 사업이 잘 되면서 먹고 살만 해진 건 아버지가 환갑을 넘겼을 때였다. 하지만 어머니가 지병으로 앓아눕게 되면서 또 한 번의 슬픔이 찾아왔다.



한국에 계신 아버지의 곁을 지키고 있는 분은 어머니를 간병했던 간병인이었다. 어머니가 허무하게 타향에서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셨다. 한국에 작은 아파트를 구입하신 아버지는 간병인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아버지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간병인.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게 전부였을 뿐인데, 그분은 현재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아버지의 법적인 배우자가 되어 있었다.



대사관을 통해 알아보니 혼인신고는 불과 몇 년 전에 되어 있었다. 과연 치매를 앓고 계신 아버지가 온전한 정신으로 부부가 되겠다고 결정하셨을지. 요양원으로 찾아가 아주머니가 곁에 없을 때 아버지에게 넌지시 물었더니 “내가 승낙한 뒤에 혼인신고를 해야 하는데 마음대로 결정해 버렸다.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간병과 가사를 도와주던 아주머니에게 어머니의 자리를 내어줄 수는 없었다.





#새 어머니의 이야기



하루에도 몇 번씩 의식을 잃는 사람의 곁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내가 마흔을 갓 넘겨 간병을 시작해 20년이 지났지만 매일 뜻밖의 상황이 펼쳐진다. 아침을 먹고 돌아섰는데, 아침식사를 했단 걸 잊기도 하고, 혼자선 거동이 불편해 화장실부터 목욕까지 어린아이 돌보듯 붙어있어야 한다. 그렇게 십수 년을 식사, 목욕, 화장실 볼일까지 수발 들며 평생을 바쳤고, 아내의 역할을 다했건만. 혼인 무효 소송을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 번도 치매 환자의 수발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자식이랍시고 나를 사기꾼 취급을 하고 있다.



부부가 되기로 한 것은 오래전 일이다. 그 사람의 아내가 세상을 뜨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함께 들어오면서 우리는 한집에서 같이 살기 시작했다. 나이 차이는 많이 났지만 둘 사이는 좋았다. 자식들과 함께 여행을 할 때도 항상 동행했다. 일본에 있는 손자가 장성해 결혼식을 올릴 때에도 가족의 자격으로 참석해 사진까지 찍었다.



혼인신고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남편은 자신의 병세가 악화하자 정신이 맑은 날, 내 손을 잡고 “혼인신고를 하라”고 말했다. 남편이 하라고 해서 신고를 했을 뿐,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속이진 않았다. 평생을 헌신해 놓고도 하루아침에 남편의 유산을 노리는 사람처럼 대접을 받게 되니 억울할 뿐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의 혼인, 법원의 판단은



구십을 바라보는 치매 아버지의 혼인신고. “이 결혼을 인정할 수 없다”며 소송을 낸 자식들에게 부산가정법원은 “두 사람의 혼인 신고를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우선 법원은 20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한 두 사람이 ‘사실혼’ 관계라고 봤다. 인생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낸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당시 간병인이었던 현재 아내의 영향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귀국을 결심했을 당시의 남편은 70대였다. 법원은 당시 남편이 건강했으며, 만약 새 어머니가 ‘간병인’이었다면 별도의 ‘월급’을 받아야 했지만 그런 기록이 없던 것을 증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자신보다 연상인 남편과 단둘이 생활하면서 살림을 했는데 이는 간병인이나 가사 도우미로서의 의무라기보다는 부부간의 동거, 부양, 협조의 의무에 가깝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에게 혼인신고의 의사가 있었는지에 대해선 “혼인에 합의할 의사 능력이 없는 상태였다”고 봤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사실혼의 관계가 유지되었기 때문에 사실혼 관계를 해소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엔 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현예 기자
※김희국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치매 환자 숫자는 2008년 42만1000여 명에서 2013년 상반기 기준 57만6000여 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치매환자는 2024년께 100만 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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