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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교과서 논쟁도 교과서다워야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
한국 사회에서 교과서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엄밀히 초·중·고교를 졸업하면 교과서를 들춰볼 일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한국의 언중(言衆)은 ‘교과서’란 단어를 자주 쓴다. 대개는 ‘올곧고 반듯하며 종합적이고 정확하다’는 의미로다.



 그런데 ‘교과서’가 완전히 망가졌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논란을 통해서다.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은 검인정 체제에선 필수적이다. 한국 사회는 국정교과서의 절대성과 획일성에 익숙했다. 8종이나 되는 한국사 교과서의 상대성과 다양성이 낯설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이번 논쟁의 진행 양상은 도를 넘었다.



 국정·검인정제에 관계 없이 교과서엔 바뀌지 않는 속성이 있다. 우리 학생들이 읽고 줄 치며 공부하는 책이란 점이다. 이 점에서 교과서 논쟁이 ‘교과서다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학생들이 이 논쟁을 지켜보며 합리적인 토론 문화를 배울 수 있게 해야 한다. 비판하되 상호 존중하고 모든 주장엔 설득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런가.



 이번에 한 대학의 역사교육학과는 모양새가 적잖이 구겨졌다. 교학사 교과서의 한 필자가 속한 학과다. 동문들은 ‘학교를 망신시켰다’며 해당 교수 퇴진을 요구했다. 문제는 방법과 내용이다. 교과서에 대한 비판을 넘어 교수 개인의 과거를 언급한 성명서를 언론에 뿌렸다.



 이번 전쟁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은 최고의 수능 전문가로 변신했다. 특정 한국사 교과서를 보면 수능에서 몇 점을 받는지를 예측하면서다. 과목별로 수험생 중 몇 %가 만점을 받느냐, 수험생 평균이 몇 점이 나오느냐의 예측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부분이다. 매해 수능 출제 위원들은 왜 한 달 넘게 합숙하겠나.



 검인정제는 다양한 교과서가 경쟁하게 하는 제도다. 집필자와 출판사들 스스로 자기 교과서의 장점을 널리 알리고 선택받게 노력하면 된다. 교학사 교과서는 환자로 치면 ‘식물인간’과 다름없다. 그런데 7종 교과서 집필자들은 ‘산소호흡기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과서 사정에 밝은 교육계 인사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 번 만든 교과서를 3, 4년 쓰면 과목당 1500억원 규모 시장이에요. 10개 출판사가 똑같이 나눠 먹으면 150억원이죠. 출판사가 하나만 빠져도 출판사당 수십억원이 더 들어와요.” 교과서 전쟁의 ‘불편한 진실’이다. 현재는 출판사별로 채택률이 어떻게 될까. 교육부의 담당자에게 물어봤다.



 “절대 비밀입니다. 교과서별로 채택률이 높아졌다, 내려갔다 하는 게 정쟁의 대상이 되잖아요. 그건 의원님들이 물어봐도 못 가르쳐줍니다.”



 교과서에 관한 한 교육부는 비밀주의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이번에 8종 교과서에 대해 수정·보완 권고를 하면서 교과서들을 분석한 전문가 명단을 밝히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을 계기로 ‘교과서 같다’는 표현이 ‘과도하게 공격적이고, 탐욕적이며, 비밀을 유지한다’는 의미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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