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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멈춘 구축함 안 터지는 기뢰 단순히 예산 문제일까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한국·일본·중국의 통신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서로 자기 나라의 통신기술 수준과 역사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중국 전문가가 말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시골 땅을 파보니 구리철사가 나왔다. 1000년 전 지층이었으니 그때 벌써 전화를 발명했다는 얘기다.” 일본인이 뒤질세라 허풍을 쳤다. “우리도 1000년 전 지층을 팠는데, 유리조각이 나오더라. 1000년 전에 유리섬유를 이용한 광통신이 있었다는 뜻 아니겠느냐.” 잠자코 듣고 있던 한국 전문가가 말했다. “우리는 1000년 된 땅속을 뒤졌는데 아무것도 안 나오더라. 조상님들이 이미 무선통신을 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웃자고 만든 농담이겠지만, 한 가지 시사점이 있다.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정보통신 강국으로 발돋움한 건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그 고비고비마다 선배 세대의 피와 땀이 엉겨 있다는 점이다. 세계 최초의 첨단 디지털이동전화(CDMA) 서비스(1996년), 세계 10번째의 한국형 전전자교환기(TDX) 개발 성공(82년) 등 발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의외로 70년대 방위산업 국산화 시대와 만나게 된다. 통신 발전사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서정욱 전 과기부 장관이 ADD(국방과학연구소) 근무 시절 개발한 최초의 국산 군용무전기(KPRC-6)도 그중 하나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72년 7월 7일 청와대에서 KPRC-6 시제품으로 직접 통화를 해보고 흡족해하며 서 박사팀을 적극 밀어주었다. 군용 야전전화기(TA312) 국산화에 성공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통신장비뿐이었을까. 71년 11월 박 전 대통령 지시로 소총·수류탄·지뢰 등 11개 부문의 국산화에 돌입한 이래 대상 품목은 점점 늘어갔다.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미군 무기를 해체해 제조법을 궁리했고, 무전기를 트럭 뒤에 매달고 들판을 마구 달리는 게 성능시험이었다. 청와대의 방위산업 비서관(이석표)이 국산 벌컨포 시험장에서 순직했고, 군용지프 개발 때도 사고로 3명이 숨졌다. 문자 그대로 피와 땀의 역사였다.



 요즘은 어떤가. 국산 구축함 2호인 을지문덕함이 정전으로 5시간이나 ‘먹통’ 신세가 되고, 국산 기뢰는 폭발 성공률이 16.6%에 불과했다 한다. 어뢰인 홍상어 역시 명중률이 형편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군에서는 예산·인원 부족을 하소연하지만, 뭔가 다른 데에도 원인이 있지 않나 싶다. 철두철미한 직업의식, 군인정신 말이다. 북한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사는 처지에 다른 무기들마저 부실하면 어떡하나. 목숨까지 잃어가며 무기 국산화에 헌신한 수십 년 전 선배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마침 내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4주기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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