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김영희 칼럼] 일본 대책, 독·불 화해에서 배우자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한·일 갈등 해결에 앞장을 서야 할 일본 외무성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내용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것은 아베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에 얼마나 무성의한가를 웅변으로 설명하는 사례다. 일본의 이런 망동을 볼 때마다 우리는 묻는다. 일본은 왜 독일 같지 않은가. 독일·프랑스 화해는 한·일 관계 개선의 모델이 될 수 없는가.



 운 좋게도 2차대전의 승전국 대열에 낀 프랑스는 미국·영국·소련과 함께 독일 분할점령국의 하나가 되었다. 프랑스의 점령정책의 핵심은 독일이 군사·경제대국으로 재기하는 것을 영구히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1949년 서독 총리가 된 콘라트 아데나워는 프랑스의 독일 공포증을 해소하지 않으면 독일은 유럽공동체 안에서 영원히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데나워는 ‘프랑스 정책’을 서독 외교의 기본 축으로 삼았다. 그는 석탄과 공업의 중심지인 차르의 자치와 루르의 국제관리를 받아들였다. 그는 프랑스가 경계하는 통일을 당분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중부 유럽에서의 패권국가 야망을 버린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독일의 유럽’에서 ‘유럽의 독일’로 대외정책의 전환이었다.



 프랑스도 독일, 최소한 서독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시작하고, 1952년 장 모네가 밑그림을 그려 외상 로베르 슈망이 제안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출범했다. 이것은 프랑스가 주도한 신뢰 쌓기의 획기적인 프로젝트였다. 석탄철강공동체는 협상과정에서부터 서독의 주권과 평등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까지도 서독서는 나치의 만행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미지근하고 오늘의 일본처럼 보수진영은 독일의 과거를 부정하고 미화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아데나워가 프랑스와의 담대한 화해정책을 추진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독일이 유럽의 이웃나라들에 준 고통과 유대인 학살을 정치지도자들이 사과할 때마다 보수·민족주의 진영의 역풍이 거세게 불었다. 미국의 정치학자 제니퍼 린드는 『사과하는 나라들(Sorry States)』이라는 명저에서 이런 현상을 한·일 관계에도 해당되는 ‘사죄의 역효과’라고 부른다. 실제로 일본서도 1990년대 가이후 도시키 총리와 국왕 아키히토가 한국에 대한 일본의 과거 만행을 사과한 데 이어 역대 총리들마다 반성과 사과 성명을 냈지만 그때마다 보수·우익들 사이에 역풍이 불었다. 서독의 사과와 역풍이 일진일퇴였다면 일본의 사과와 역풍은 일진이퇴인 것이 독일과 일본의 큰 차이다. 그나마 아베의 민족주의 정부에 와서는 전진은 없고 후퇴만 있는 실정이다.



 사회 저변은 갈등의 온상도 되고 화해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그런 사회 저변의 변화 없이는 정부 간, 지도자들 간 합의와 화해 성명이 사회 저변의 변화에 지속적인 기여를 못한다는 점이다.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와 1998년 김대중·오부치의 공동선언은 그때로서는 최상의 외교적 결실이었다. 그러나 그런 성과도 일본의 민족주의적 보수·우익의 더 거센 역풍을 부르고 거기에 대한 한국의 대응으로 한·일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었다.



 독일의 화해정책에 대한 피해국가 프랑스의 대응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활발한 민간교류로 독일·프랑스 화해의 인프라를 까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 유럽공동시장, 나토동맹 그리고 결국은 유럽공동체(EU) 같은 다자기구로 독일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1963년 아데나워와 드골이 서명한 역사적인 엘리제 우호협력조약의 중요한 내용의 하나도 대규모 학생교류와 여름 어학캠프와 자매도시 결연으로 광범위한 화해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일본 대책도 사과 요구 일변도에서 일본 시민사회의 변화로 중점을 옮겨야 한다.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의 망언에 일일이 반응하지 말고 연간 수만 명의 청년·학생들을 교류하고 여름방학에는 두 나라의 전국 각지에 상호 어학캠프를 운영하고 수백 개의 자매도시를 맺어 지방자치단체 수준의 교류협력 프로그램을 동시다발로 운영하면 느리지만 착실히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외교관들과 정치인들에게만 맡겨서는 한·일 관계의 정상화는 백년하청이다. 정부 차원에서 할 일은 망가진 최소한의 기능적 관계를 복원하고 군사정보 교환 같은 안보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게 동북아의 지정학적 요청이다. 다자 틀에서 으뜸은 한·일 간, 다자간 FTA다. 특히 한·중·일 FTA는 상호의존도를 높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장치일 것이다. 히틀러 암살음모 연루로 감옥살이를 한 아데나워, 반나치 레지스탕스를 이끈 드골같이 확실한 도덕적 권위를 가진 탁월한 지도자가 없는 한국과 일본은 다자 틀과 사회 저변의 변화에 기댈 수밖에 없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