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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냐 아저씨' 연기하는 구례 농부아저씨

이상직씨는 연극 ‘바냐아저씨’의 주인공 의상을 입고 왔다. 셔터가 돌아가자 가만히 있는 게 어색한 듯 작품속 대사를 하기 시작했다. 촬영장은 어느새 무대가 됐다. >> 동영상은 joongang.co.kr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립극단 배우였던 이상직(47)씨. 그는 지금 전남 구례에서 살고 있다. 3년 전 귀농했다. 내려가서 벼농사·감농사 등을 짓고 있다. 한때 ‘오이디푸스’ ‘문제적 인간 연산’ 등에서 주인공을 한 국립극단 대표 배우였다. 백상예술대상·히서연극상 등을 수상한 잘 나가던 배우가 왜 저 시골까지 내려갔을까.



전 국립극단 간판스타 이상직
벼·감농사 지으며 동네 극단 꾸려
스탠드바 가수, 미용사 등과 공연도
"체험 바탕 농부 연기에 안성맞춤"

 3년 전인 2010년이면 국립극단이 재단법인화로 시끄러울 때였다. 국립극단이라는 간판은 있지만, 소속 배우는 사라지고, 작품마다 오디션이 실시됐다. 전속배우 체제가 붕괴돼, 이씨로선 졸지에 직장이 없어진 꼴이었다. 그래서 ‘국립극단 배우라는 자존감이 훼손돼 그로 인한 상처로, 연극에 회의가 느껴져 귀농을 택하지 않았을까’라고 짐작했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문명이 과연 행복을 가져다 주는지, 너무 많은 욕망을 부추기고 그 결핍을 채우려 보니 또 악다구니를 쓰는 건 아닌지, 연극 또한 지나친 상품화로 본래 갖고 있던 원초성을 상실한 건 아닌지. 제 삶의 철학이자 가치관이었죠. 그런 의문을 풀기 위해 귀농을 생각했고, 구체적인 계획까지 짰어요.”



 근데 왜 머뭇거렸을까.



 “마누라 때문이었죠. ‘이 인간아, 너는 너만 생각하냐’고 타박 들었죠. 학교 다니는 애들은 어쩌고, 연극 했으면 번듯한 상 하나라도 받아야 한다며. 그러다 2010년 결단을 내린 거죠.”



 섬진강을 바라보고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구례는 천혜의 공간이었다. 처음엔 농사만 지었다. 그러다 마을 사람들과 하나 둘 얼굴을 트기 시작했다. 국립극단에 있었다는 게 그들로선 신기했다.



 “하루는 ‘연극 얼마면 만들 수 있냐’고 묻는 거에요. ‘100만원만 있어도 돼’라고 했더니 눈망울이 똘망똘망해지더라고요. 시골일수록 문화에 대한 갈증은 더 강하죠. 사고 한번 치자고 했죠.”



 연극 배우를 뽑겠다는 포스터를 붙였다. 12명이 지원했다. 막노동하는 일용직, 미용사, 허름한 스탠드바에서 노래하는 가수 등이 있었다. “다 합격시켰죠. 대신 2개월 세게 굴릴 테니 각오하라고 했어요.”



 각자 생계가 있다 보니 같은 시간에 다 모일 순 없었다. 낮·오후·저녁, 세 타임으로 쪼개 연습했다. 이씨가 연기 지도선생으로 두 팔 걷어붙였다. 기본적인 발성부터 대사·호흡·동선·시선 처리 등을 하나씩 전수했다. “기본기 약한 건 어쩔 수 없죠. 대신 열정·진심·몰입은 프로페셔널 이상이에요.”



 극단명을 ‘마을’이라고 정하고, 2011년 2월 구례 섬진아트홀에서 창단 공연을 하기로 했다. 닐 사이먼 원작의 ‘굿 닥터’를 구례판 청춘콘서트로 각색한 ‘39도5분’이었다. 관람료는 무려(?) 1만원. 외지에서 온 공연이 늘 무료였던 것에 비하면 고가였다. 하지만 320석의 공연장은 이틀 연속 매진을 기록했다.



 “자기 아는 얼굴이 무대 오르는 게 신기했는지, 객석이 왁자지껄했어요. 끝나고 뒷풀이에서 출연료 명목으로 각자 3만원씩 나눠 가졌습니다. 연출·각색·주연·연기지도 등 저 혼자 1인 10역쯤 한 거 같은데, 저 역시 3만원 받았죠. 대학 연극 동아리 같은 분위기에요.”



 이씨는 2년 만에 서울 무대에 오른다. 26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체호프 원작의 ‘바냐아저씨’다. 이성열 연출가는 “이씨는 국내 최고의 연극 배우다. 게다가 구례에서 농사일을 해왔으니 작품 속 농부인 ‘바냐’를 연기하기엔 안성맞춤 아니겠는가”라고 농반진반 전했다. 이씨는 “50대가 어느 날 문득 느끼는 삶의 회의, 상실감을 담담하게 그릴 계획”이란다.



 이씨는 앞으로도 구례와 서울을 오가고 싶다고 했다. “생활체육이라는 말이 있듯, 이젠 예술활동도 연예인이나 배우만이 아닌 일반인도 할 수 있는 생활예술 시대가 돼야 해요. 서울과 지방의 문화 격차를 줄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과거 국립극단 배우로서의 자부심 못지 않은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 싶네요.”



글=최민우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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