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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22) 다인(茶人) 이병우의 경남 악양 묵제당





다실엔 찻물 끓는 소리, 뒤뜰엔 서걱서걱 댓잎 소나타 …











































다실이란 차를 마시는 용도의 방이다. 따로 다실을 가진다는 것은 엄청난 호사에 속하겠지만 홀로 앉을 시간이 절실한 사람들에겐 ‘우선순위에 둘 만한’ 호사이긴 하다. 땅값이 그리 비싸지 않은 곳이라면 대단한 결심 없이도 다실 하나쯤 장만할 수 있다. 시골집이란 집 한 채가 아니라 여러 채로 나눠져 있기 일쑤다. 암만 가난한 초가라도 본채 말고 창고와 우사와 아래채 같은 것들이 마당 주위에 둘러앉아 있곤 하다. 어쩌면 한옥이란 바로 그런 걸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디 기와로 지붕 얹고 나무로 기둥 세운 집만 한옥이랴. 예전부터 대다수 한국인이 살아온 집이 한옥의 정의라면 한옥이란 채를 여럿으로 나눠 놓고 앞뒤로 창을 뚫어 바람이 통하고 자연과 인간이 서로 들락거리며 사는 집을 칭하는 것이어야 마땅하리라.



‘채나눔’으로 여유로움을 얻다



건축가 이일훈이 주장하던 ‘채나눔’의 핵심을 나는 경남 하동 악양의 묵제집에 가 보고 금방 깨달았다. 크지 않은 시골집이다. 아니 소박하고 가난한 집이다. 세 칸 본채에 한 칸 반 창고채에 두 칸짜리 우사가 디귿 자로 놓인 집. 시골에 산 적이 있는 사람에게 이런 집은 익숙하디 익숙하다. 차를 만드는 사람인 묵제 이병우(나이 밝히기는 끝내 꺼렸다)는 그런 시골집을 사서 기능적으로 개조했다. 본채는 부엌과 손님방으로, 창고채는 다실로, 우사는 침실로 쓴다. 각각의 기능을 가진 공간이 채가 따로 나눠져 있다는 것만으로 엄청나게 여유롭게 느껴진다. 거실을 중심으로 뱅뱅 돌아가며 일상이 이뤄지는 아파트 구조가 ‘동선의 합리성’만을 추구했다면 그 합리성을 깨 버리자 새로운 자유와 싱그러운 공기가 스며든다는 걸 묵제의 시골집이 웅변하고 있었다. 꽁꽁 싸맨 집은 답답하다. 헐렁하게 열린 집이 아름답구나.



묵제를 처음 본 것은 전남 장성의 희뫼요에서였다. 덩치가 큰 사람이 솥뚜껑 같은 손으로 자잘한 찻잎을 보석인 양 섬세하게 집어 들어 주전자에 넣고는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묵묵히 한 잔씩 따랐다. 그런데 그 동작에 매우 눈길이 끌렸다. 자신이 만든 차라고 했고 아마도 세계에서 으뜸가는 차일 거라고 했다. 차 만드는 사람들의 자부심은 익히 봐 온 것이지만 열 잔 넘게 우려 마셔도 향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아닌 게 아니라 신기하긴 했다. 휴대용 차 상자를 핸드백처럼 어깨에 둘러메고 다니며 애지중지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침묵으로 건너간다고 호를 ‘묵제(默濟)’라 부르며 지리산 자락에서 오로지 좋은 차를 만들며 살아간다고 했다.



처음 본지 한 해쯤 지나 나는 드디어 악양면 신흥리 묵제의 다실에 와서 앉아 있다. 간소하지만 충만한 공간이다. 원래 슬레이트 이은 허드레 창고였던 곳을 양철지붕 얹고 벽 바르고 창호문 달고 툇마루 깔아 다실로 개조한 공간이다. 다탁 하나, 차를 끓이는 무쇠화로와 주전자, 정갈한 다구들 약간, 거기다 한 줄기 연기를 피워 올리는 침향 한 토막뿐이다.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찻물 끓는 소리가 되레 고요를 더한다.



간소하지만 충만함 넘치는 다실



이 방은 볼 게 많다. 우선 쪽물들인 모시를 붙여놓은 유리창 밖으로 서걱대는 대숲이 보인다. 대숲 아래 창턱쯤엔 귀여운 표정의 석수(石獸) 두 마리가 고개를 갸웃대며 방안을 들여다본다.



묵제의 경제력이 얼마쯤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가 일상에서 온갖 풍요를 누리고 사는 건 확실해 보인다. 그의 집엔 돈으로 거래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만들고 담그고 빚은 것들로 가득하다. 다실의 호사를 조금만 더 살피면 한쪽엔 단을 조금 높여 자기가 사숙하는 스승의 사진(이름을 물으니 산트 다카르 싱이라고 한다)을 걸어 뒀고 그 앞에 침향을 피우는 향로를 뒀다. 침향은 고가의 사치품이지만 차를 주고 물물교환해 조달한다. 새우젓 독 같은 길쭉한 옹기는 그 속에 스피커를 넣은 음향기기이고, 팽주의 자리 뒤쪽엔 수도꼭지를 끌어와 정갈한 ‘우물’을 만들어 뒀다. 양쪽 벽면엔 아주 작은 해와 달 모형을 걸고 드나드는 문 위에 곡옥 형태의 쇳조각을 붙였다. “이 방이 자그만 우주라는 뜻이지예. 생명이 순환하고 윤회한다는 걸 보여 주는 장치입니더. 문 앞에 걸어 둔 종은 드나들 때마다 머리를 치면서 정신 차리라 카는 거고예.” 이 다실의 이름은 ‘설양지’다.



“설은 ‘베풀 설(設)’ 위에 ‘초두변(艸)’이 얹어져 있는 글자로 향기 혹은 차라는 뜻입니더. 양(陽)은 볕이고예. 그러니까 설양지는 향기로운 차와 따뜻한 볕(陽)이 있는 장소(址)지예.”



향기로운 차와 따뜻한 볕이 만나는 곳



부산 사람인 그가 악양 골짜기로 찾아든 것은 늙은 차나무를 찾아서였다. 이 마을 뒷산 어름에 수백 년 묵은 야생 차나무 군락지가 있어서 그 채취권을 얻게 됐고 마침내 이사까지 하게 됐다. 낡은 집은 묵제가 들어오면서 환골탈태했다. 본채의 천장과 바닥에도 숯이나 감이나 흙물 들인 무명천을 발랐더니 자연스럽고 질기고 편안해졌다. 아래채는 원래 우사였던 곳을 편백나무를 좍 둘러붙여 침실로 만들었다. 곁에 붙은 화장실 내부도 온통 편백이다. 문을 열면 피톤치드 향내가 온통 환하다.



본채의 당호는 묵제당이다. 차 좋아하는 부산의 원로 화가 서상환 화백이 설양지와 묵제당의 현판을 써서 각까지 해 주셨다 한다.



묵제의 살림 솜씨는 취재에 동행했던 살림의 달인 여럿이 다들 혀를 내두르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우선 그가 담근 김치의 종류와 맛이 가히 눈부셨다. 직접 만들어 놓은 식초, 소금, 효소, 간장의 맛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이건 상추고 이건 열무입니더. 간은 소금 대신 함초로 했지예. 별거 없어예. 찹쌀풀 끓여서 쟁피 좀 부솨 넣고 꾹 눌러 놓으면 맛이야 저절로 들지예.” 뜰에 방아며 차조기 잎을 키우는 것도 특별한 양념이 필요해서다.



“식초는 과일보다 막걸리로 담는 기 최곱니더. 하얀 간장 보신 적 없지예? 이기 함초에서 뽑아낸 하얀 간장입니더. 이런 건 음식이 아니라 약이라예. 차도 사실은 약이지예. 좋은 차는 사람의 피를 맑게 하고 마음까지 맑게 해 줍니더. 피가 맑아지고 마음이 맑아지면 병이 발붙이지 못합니더. 다 도망가 뻐리지예.”



그는 생래적으로 감각이 빼어나서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데 능하다. 대수롭지 않은 듯 꺼내 보여 주는 직접 빚었다는 다기들은 결코 대수롭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젠 그릇이니 뭐니는 다 접고 오로지 차 하나에만 전념하기로 했단다. 솜씨 야무진 사람의 집에 들어서면 이런저런 궁금증이 발동하게 마련이다. 호기심을 못 이기고 묵제의 서랍장을 열었다가 우리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 겉옷과 속옷은 물론 쓰고 버리는 행주와 타월과 걸레들까지 하얗게 표백해 귀퉁이가 반듯하게 접혀져 서랍장 칸칸마다 칼같이 정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열등감이 폭발해 우리는 ‘남자가 이쯤 되면 필시 결벽증일 것’이라며 그를 흉봤다.



그러나 대숲 아래 놓인 큼직한 달항아리가 놓였길래 ‘저 귀한 것을 왜 저렇게 버려 뒀느냐’고 따졌을 때 돌아온 대답을 듣고 묵제에게 그만 손을 들기로 했다. “원래 가장 귀한 것은 가장 후미진 곳에 두는 겁니더. 저기 두면 화장실에서 내다보이거든예.”



글=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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