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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옷맵시, 현대 패션과 통하다

‘포(袍), 선비 정신을 입다’에서는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김서룡·정욱준이 창안한 현대 포 작품을 볼 수 있다. 전통 포를 소재로 현대적으로 풀어낸 요즘 선비의 옷이다.


“선비는 ‘융합형 지식인’입니다. 21세기가 원하는 인재상이죠. 포는 그런 선비를 대표하는 옷이고요.” 가천대 의상학과 조효숙 교수는 선비의 외투인 포를 주제로 한 기획 전시 ‘포, 선비 정신을 입다’를 두고 선비 정신을 이렇게 되짚었다. 기획에 참여한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씨는 “선비와 함께 우리 정신 문화를 입어볼 기회”라고 전시를 소개했다. 또 다른 기획자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이 전시가 “지성·절제·품위가 깃든 선비의 옷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자리”라고 했다. ‘포, 선비 정신을 입다’ 전시장, 경복궁 옆 아름지기 사옥을 미리 찾아봤다.

아름지기 전시회 '포(袍), 선비 정신을 입다'



전통 옷을 현대인 체형에 맞게 재현



‘포(袍), 선비 정신을 입다’는 우리 전통 문화를 계승·보존하는 아름지기 재단에서 11번째로 마련한 기획 전시다. 이 단체는 의·식·주 전통을 현대로 올바르게 계승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여러 차례 기획전을 열었다. ‘끽다락: 차와 하나되는 즐거움’, ‘행복한 새참, 도시락전(展)’ ‘생활 속의 아름다움-아름지기 가구전’ 등이다. 모두 전통을 주제로 삼고 이것이 어떻게 하면 현대와 아름답게 만날 것인가를 보여준 전시였다. 이번 전시는 꼬박 1년 넘는 기간의 준비 과정을 거쳤다. 조 교수는 진태옥·박경미 기획위원, 박성실(단국대 대학원 전통의상학과 교수)·정민자(아름지기 고문) 전통복식자문위원과 머리를 맞댔다. 주제는 ‘선비’로 정해졌다. “우리 문화 5000년의 정신을 가장 오롯하게 담아낼 수 있는 시대 정신이 선비 문화에 담겨 있어서”다.



조 교수는 “영국의 기사도 정신,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은 오늘날 이들 나라 발전의 토대였다. 우리 선비 정신이 앞으로의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또 우리나라가 새롭게 도약할 기반을 마련해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선비 정신은 문(文)·사(史)·철(哲) 각 분야를 고루 아우르고, 선비는 시(詩)·서(書)·화(畵)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 21세기를 이끌어갈 우리 인재상이 선비 문화, 선비 정신에 깃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선비 정신이 지성과 감성을 두루 강조하는 현대적 개념이었다는 얘기다. 조 교수는 주제를 선정하고 옷 짓는 방법을 다시 따져본 다음 난관에 봉착했다고 한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지 고민이 컸다. 자료에 남아 있는 걸 토대로 복원한 옷은 요즘 사람들 체격과 맞지 않았다. 그런데 이걸 무작정 크게 만들자니 우스꽝스러워 보일 게 뻔했다. 조선시대 평균 체격보다 오늘날 평균 체격이 1.3배쯤 크다고 해보자. 그렇대서 옷을 1.3배 크게만 만들어선 안되지 않겠나.“



그래서 현대인 체형을 분석하고 각 신체 부위의 크기를 조정했다. 패션 모델들을 데려다 놓고 입혀가며 보정에 보정을 거듭했단다. “그래야 관람객이 옛날 포를 보고 ‘멋지다, 아름답다, 입고 싶다’고 느끼지 않겠어요.” 조 교수의 설명처럼 이번 전시에 선보인 10여 벌의 전통 포는 신장 180㎝ 안팎의 성인 남성에게도 손색 없을 크기로 재단됐다. 걸린 포 앞에 서면 입었을 때 맵시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다. 입어봄 직한 실제 크기의 포라서다. 조 교수는 “옛 옷을 재현한 다른 전시에선 해보지 않은 첫 시도다. 이전까진 고증 자료에 있는 사이즈 정도로 재현한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해선 관람객이 옷을 내 것으로 느끼지 않고 전시물로만 보게 된다”고 말했다.



푸른 포는 조선 영조가 입었던 것과 같은 양식으로 제작된 것이고 나머지 두 벌은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이 만든 현대적 포 작품이다.


선비 생활 알아야 이해되는 전통 포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전시 공간의 흐름에 주목해 보라”고 권했다. 전시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름지기 신사옥에서 열린다. 최근 완공된 이 건물 1층은 연중 상설 전시 공간이다. 단정한 분위기의 현대적 갤러리다. 이곳엔 현대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김서룡·정욱준 3인의 현대적 포가 걸렸다. 마네킹에 걸거나 낚싯줄에 매단 현대적 포 사이엔 2벌의 전통 포가 어우러져 있다. 전시장 벽 한 켠에 너르게 걸린 포는 조선시대 영조 임금이 입던 푸른 도포다. 맞은 편 구석엔 손누빔 기법으로 만든 포 ‘중치막’이 자리 잡고 있다.



박 대표는 “현대 패션 디자이너가 만든 요즘 포와 전통 포가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현대 패션을 대표하는 3인의 현대 포는 전통 포와 닮은 듯 다른 듯 조화를 이루며 1층 전시 공간을 채우고 있다. 현대 패션 디자이너가 재해석한 포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전통 포 전시실과 마주친다. 현대인 체형에 맞춰 제작한 실감나는 작품들이다. 박경미 대표는 “전통 포가 간직한 여유로운 아름다움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고 설명했다. 전통 포의 감성을 담은 현대적 포를 감상하고, 옛 포의 세밀한 아름다움을 관찰한 다음 눈길은 선비의 생활 공간에 걸린 전통 포로 옮겨간다. 현대 건축처럼 보이는 사옥 2층에 전통 한옥을 들였는데 여기에 놓인 전시물이다. 박 대표는 “선비가 생활했음직한 공간에서 선비가 입던 포를 보아야 진짜 그 삶의 한 부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 공간이 오롯이 갖고 있는 분위기 자체를 느끼도록 관람 동선을 짰다.  



포(袍)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서는 전통포의 다양한 형태도 만나볼 수 있다. 2층 전시실(위)과
1층(아래)에 걸린 갖가지 포의 모습이다.
여유로운 품새 살리고 풍류도 담아



‘포(袍), 선비 정신을 입다’는 현대 패션 디자이너들과의 교류에 큰 부분을 할애했다.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씨는 전시 기획과 더불어 포를 주제로 한 디자인 작업에도 직접 참여했다. 진씨 외에도 김서룡·정욱준 2명의 현대 남성복 패션 디자이너가 선비의 포를 재해석한 작품을 제작했다. 진태옥씨는 “본래 갖고 있던 한복, 전통 옷의 세부 정보에 얽매이지 않으려 했다”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동정이나 고름처럼 한복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장식 기법을 재현만 해선 제대로 된 전통의 현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씨는 “포의 여유로운 품새를 되살리고 팔랑거리는 포 자락에서 느껴지는 풍류를 옷에 담았다”고 했다. 이렇게 출발한 진태옥씨의 포는 폭신한 전통 포의 어깨선을 가죽 코트의 단아한 어깨선으로 대체하고 허리춤에 매어놓은 은장식으로 우아한 멋을 더한 모양새다. 그는 “패션 디자인 50년 인생에서 놓쳤던 것, 우리 것의 놀라운 아름다움을 이제야 찾았다”고 고백했다.



김서룡씨는 “답답하고 지루할 것이라 생각했던 전통 포가 예상외로 너무나 화려해 놀랐다”고 작업의 첫 과정을 기억해냈다. “작업에 참여하고 공부를 하면서 전통 포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단선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포는 정말 환하게 빛나고 고운 느낌의 옷이었다. 보면 볼수록 화려한 매력이 돋보이는 옷이랄까. 그 느낌 그대로를 내가 만든 포에 담아냈다.” 김씨는 씨실과 날실을 엮어 속이 살살 비치는 정도의 ‘실크 오간자’로 코트·재킷을 만들었다. 마치 수십장 얇디 얇은 실크 오간자가 폭신한 비단신의 결을 만들어 내듯 매끈하게 재킷 위를 수놓고 있다.



그는 “원래 선비는 진짜 멋을 아는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 우리 현대사에서 멋내는 남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겼다. 삶을 진정 즐길 줄 아는 사람에 대한 불손한 시선이었다. 이번 작업을 계기로 본래 우리 신사, 우리 선비가 멋을 즐겼단 사실을 되짚었으면 좋겠다. 물론 화려한 겉모습만이 아니라 진정한 멋을 즐기는 사람 말이다”라고 작업의 의미를 새겼다.



정욱준씨는 “포는 원래부터 현대적인 옷이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요즘 옷 디자인에서 대중이 좋아하는 건 지극한 단순함, 즉 ‘미니멀리즘’인데 포를 보면 이런 느낌이 난다는 이유다. 포가 원래 현대적인 옷이란 가정에서 출발한 정욱준씨는 짙푸른 청바지 천과 가죽으로 자신의 포를 지었다. 흔히 ‘데님’이라 부르는 도톰한 면 소재에 물 빠짐이 전혀 없는 짙푸른 청바지 색이 ‘정욱준 포’다. 그는 허리가 아닌 가슴 부위를 조이는 여밈, 가죽 벨트의 한 끝을 길게 늘어뜨리는 등의 방법으로 포와 비슷한 분위기를 그려냈다. “포를 입은 선비의 마음가짐을 전시 관람객들도 그대로 느꼈으면 한다. 선비가 품었던 여유, 현대적인 담백함 등을 이 시대 선비의 포에 담았다. 그래야 포를 입은 선비 정신이 계속해서 전해질 테니.”



글=강승민 기자 사진=이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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