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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정상회담으로 한·일 갈등 극복해야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냉전의 종식으로 ‘역사의 종언(終焉)’이 구가된 지 4반세기. 세계적인 흐름으로 확산되리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동북아에서는 역사가 끝나기는커녕 ‘다시 시작’되고 있다.



 냉전 기간 동안 사실상 ‘정지’돼 있었던 동북아의 역사. 이 정지되었던 동북아의 역사도 탈냉전으로 ‘종언’의 실마리를 찾는 듯했다. ‘한·일 미래 파트너십’이 제창되고 한·중·일 정상회담이 정례화되는가 하면, 동북아 공동체의 움직임 등이 태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우경화로 동북아에서 역사는 다시 시작되고 있다.



 지금 한·일 관계도 이 역사의 파고에 휘청거리고 있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수정주의적 움직임 때문이다. 냉전 시기에도 역사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때는 갈등이 안보 차원에서 봉합되곤 했다. 그리고 역사를 우회하여 공존할 자세가 일본에 어느 정도 있었다. 한 일본 학자의 지적처럼 그것은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일말의 속죄의식과 근대화에 앞선 선진국 일본의 여유였다. 하지만 아베 신조를 비롯한 전후 세대의 일본 정치가들에게서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전쟁의 기억은 풍화(風化)되고 있으며 중국과 한국의 발전으로 일본이 ‘베풀었던’ 근대화의 여유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일본이 경제적 성공으로 서구의 배싱(질시)을 즐긴 것도 잠시. 경제적 침체로 패싱(경시)당하다가 중국의 부상으로 미싱(실종) 내지 나싱(소멸)이 되어버렸다는 일본의 자조가 우경화된 민족주의를 강력한 정치적 흐름으로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고 나섰다. 일본을 주요 안보파트너로 삼겠다는 메시지다. 한·일 갈등에서 교통경찰 역할을 해야 할 미국으로부터 우리가 소외되는 모습이다. 우리 정부 당국자의 말처럼 아베 내각의 ‘역사 인식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는 미묘한 상황에서 일본에 면죄부를 준’ 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외교·안보적 파장이다. 언론의 지적처럼 우리가 미·일 동맹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에 이어 외교·안보에서도 샌드위치 신세’가 될지 모른다.



 우리 눈에 일본의 움직임은 ‘절망’에 가깝다.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움직이는 일본 정치의 ‘정말 놀랄 만한’ 특징 때문이다. 일찍이 저명한 사회 인류학자 나카네 지에 도쿄대 명예교수가 일갈했다. 일본은 ‘도덕적 미션이 없는 수직적인 사회’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제무대에 나설 경우 위험하다고 했다. 키신저의 생각도 비슷했다. 1972년 10월 저우언라이(周恩來)와의 회담에서 말했다. ‘중국은 보편적 관점을 지니고 있지만 일본은 편협하여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하지 못하다’고.



 그런데 지금 일본에서 이 ‘예민하지 못한 감수성’이 극단으로 흘러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를 우려하는 한 지인 일본 학자가 우회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전해왔다. 일본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는 이유를 아느냐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력이나 군사력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자유의 여신상과 노예제도가 병존하는 극과 극의 상황에서 정상을 회복해온 미국 사회의 복원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일본 사회에는 이런 복원력이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의 역사 인식과 행동이 ‘아시아의 패러독스’를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해왔다. 이에 대해 일본은 무엇이 문제냐고 맞받아치고 있다. 역사 인식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지 않느냐고 억지다. 이러다 보니 한국의 ‘일본 피로증’, 일본의 ‘한국 피로증’이 맞물려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 한·일 리더십 어느 쪽에도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다.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실무급 ‘한·일 외교대화 라인’이 복구될 거란 보도다. 환영할 일이지만 이 문제는 결코 실무적 차원에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상회담만이 그나마 해법을 내놓을 수 있는 정치적 난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일 정상은 강한 언어들을 내려놓고 현실적인 대화를 해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가 긴밀하고 중요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과거와 같은 안보 차원의 봉합으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된다. 양국 정상이 높은 지지를 누리고 있는 지금이 적기(適期)일 수 있다. 이 적기의 타이밍을 놓칠 경우 양국 모두 민족주의적 여론을 제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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