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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온갖 잡일 해 생계 … 미래를 잃은 시리아 난민





요르단 떠도는 54만명 고단한 삶













유엔의 날인 10월 24일을 맞아 반기문 사무총장이 발표한 기념 메시지 중심에는 시리아 사태가 있다. 반 총장은 “시리아 내전은 우리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안보 위기”라고 규정하며 “우리가 뭘 더 할 수 있는지 반성해볼 때”라고 역설했다. 시리아에서 아랍의 봄으로 촉발된 반정부시위가 내전으로 확산된 지 2년7개월째. 사망자는 10만 명을 넘어섰고, 난민은 218만여 명에 이른다. 시리아 난민 최대 캠프가 있는 요르단에서는 열악한 삶을 견디지 못한 난민 대다수가 캠프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국제사회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요르단의 최하위 계층으로 내몰린 시리아 난민들의 삶을 살펴봤다.



“향긋하고 따뜻한 차 한잔에 15센트요!”



 오전 6시 요르단 마프라크에 위치한 자타리 캠프. 한 손에는 보온병, 한 손에는 컵을 든 열네 살 소년 아마드 오잔이 빵 배급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 주변을 돌며 큰 소리로 외쳤다. “가끔은 하루에 보온병 네 개 정도 분량을 파는데, 그럼 8달러는 벌 수 있어요. 횡재한 날이죠.”



 시리아에서 반정부시위가 처음 발생한 다라 지역에 살던 오잔 가족은 올 초 요르단으로 건너왔다. 오잔 가족 역시 대다수 시리아 난민처럼 이슬람 원리주의를 고수하는 수니파. 나이와 관계없이 장남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다. 몇 년 전 아버지를 잃은 오잔의 가족에게는 오잔이 곧 가장이다. 오잔은 한때 선생님이 되기를 꿈꿨다. 하지만 지금은 화장실 청소, 천막 설치 같은 잡일을 하며 돈을 버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미성년자가 절반 … 화장실 청소 등 궂은일



 자타리 캠프를 나와 마프라크 시내에 살고 있는 나이야(34·여) 가족의 가장도 그녀의 열세 살짜리 아들이다. 나이야의 남편은 이유도 모른 채 시리아 정부군에 폭행당한 뒤 허리를 못 쓰게 돼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일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아들의 월급은 100디나르(약 15만원) 정도로, 거의 월세를 내는 데 들어간다. 그나마 얼마 전 아들이 해고당했다. 복잡한 계산을 제대로 못 한다는 이유였다. 나이야는 지원차 가정 방문한 국제 구호 개발 비정부기구 월드비전 활동가들에게 “학교를 그만둔 지도 1년이 훨씬 넘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푸념했다. 나이야의 아들은 세차장이나 피자가게 등을 돌며 다른 일거리를 찾고 있다.



 요르단으로 유입된 시리아 난민 54만여 명 가운데 18세 미만 미성년자는 53.3%.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나이야의 아들이나 오잔처럼 생존을 위한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 내전 발생 전 시리아의 취학률은 90%를 훌쩍 넘었다. 하지만 현재 요르단에 머물고 있는 6~14세 가운데 학교를 다니는 아동은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남자 아이들이 가족 부양이라는 짐을 지고 있다면 여자 아이들은 성폭행과 조혼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거리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 등에 사는 부호들을 위해 몸값을 주고 어린 신부를 구하러 온 매파들이 시리아 소녀들에게 접근한다. 나이가 어리다고 거짓말하거나 기도문을 외우며 뿌리치려 해도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NYT는 이들이 장차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잃어버린 세대라는 말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허무와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에게서 비롯됐다. 힘겨운 난민으로서의 삶을 겪은 데다 내전 이후 상당 기간 이어질 종파 간 보복전을 고스란히 목격할 시리아의 미래 세대가 바로 이런 지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월드비전이 요르단 이르비드 지역에서 매일 시리아 아동 200명을 대상으로 보충수업 교실을 진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9월부터 1년 동안 시리아 난민을 위해 50만5000달러를 투입한 한국 월드비전의 전지환 국제구호팀장은 “비상식량이나 임시 거주를 지원하는 긴급 구호를 넘어 놀이치료, 미술치료 등 심리치료를 통해 난민 아동들을 돕는 것이 주요한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여자 아이들은 성폭행·조혼 위협 시달려



 하지만 요르단에 머물고 있는 시리아 난민 전체를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요르단에서는 이들이 이미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는데, 대부분 사회 최하위 계층으로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많은 난민이 자타리 캠프에 머물렀지만 난민 급증으로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대부분이 캠프를 떠나 주변 지역사회로 유입됐다. 요르단에 있는 시리아 난민의 76.9%인 41만여 명은 난민촌 밖에서 산다. 이처럼 캠프를 나와 살려면 경제적 부담은 더욱 커진다. 한 달 월세가 100~300디나르(약 15만~45만원)이고, 월세의 몇 배 가격인 400디나르 내외(약 60만원)를 줘야 취업 허가증을 받을 수 있다.



 현지인들의 배척도 심하다. 손기술이 좋고 성실한 시리아인들은 요르단인들이 기피하는 직종에 취업해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지만 요르단인들은 일자리를 빼앗긴다고 생각한다. 시리아에서는 전문직이거나 중산층 이상이었던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하며 학대를 견디는 이유다.



1차 대전 때처럼 절망·허무의 세대 될 우려



 ‘난민의 땅’으로 불리는 요르단에서 사실 이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몫이었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1950년대에는 중동 각지에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몰려왔고, 2003년 이후에는 전쟁을 피해 이라크인들이 요르단을 찾았다. 특히 요르단 인구 640여만 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 되는 310만여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값싼 노동력 제공 등을 도맡아왔다. 이제는 시리아 난민들이 그 서러운 지위를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 머물고 있는 시리아 난민 하산 샤르한(29)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옆 블록에 형성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거주지를 보며 말했다. “길어도 한 달이면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저들도 50년 전 같은 생각을 했겠죠.”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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