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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우리를 슬프게 하는 국정원

권석천
논설위원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나오는,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하는 국정감사입니다.”



 그제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에서 박영선 국회 법사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실제 국감장 뒷줄에 있는 검사들 표정에선 만감이 교차했다. 당혹과 좌절, 무력감, 그리고 조직과 인간에 대한 허무함이었다.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 직무에서 배제된 윤석열 여주지청장과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의 설전은 그만큼 거칠게 서로의 마음을, 검사들 마음을 후벼 팠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표범이 사냥하듯 신속한 수사가 필요했다.” 트위터에선 윤 지청장의 어록이 빠르게 리트윗(재전송)되고 있다. 나는 그의 절차 위반은 잘못이라고 보는 쪽이다. 한 검찰 간부의 설명이다.



 “윤 지청장이 위임전결로 국정원 직원을 체포했다고 하는데요. 위임전결은 ‘차장급’이 아니라 차장이 해야 합니다. 위임받은 이상 지검장이 반대하는 결정을 해서도 안 되고요.”



 수사권과 기소권을 쥔 검찰의 권한을 절차로 규율하지 않는다면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외압을 받는 상황이었다면 예외를 인정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 예외가 관행이 되고, 시민의 자유를 빼앗아온 게 현실이다. 그 점에서 얼마 전까지 검찰권 확대와 특수부 수사에 제동을 걸었던 야당 의원들이 절차 위반까지 편드는 모습은 씁쓸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건 국정원의 태도다. 한 대학 교수는 “국정원이 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느냐”고 묻는다.



 “국정원 요원들이 댓글뿐 아니라 트위터로 정치와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게 사실이면 기관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죠. 민주주의는 국정원이 지키고자 하는 국가 안보의 핵심인데….”



 종북 세력을 척결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해도 그 과정과 절차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국정원법도 정치활동 관여를 금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의혹을 자체 조사한 뒤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 의뢰를 했어야 마땅하다. 문제의 트위터들을 보고 검사들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윤 지청장)고 분노했다면 국정원은 더 크게 분노해야 한다. “남재준 원장이 트위터 의혹에 격노하고 엄중 조사를 지시했다”는 소식이 풍문으로라도 들려와야 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건 하나 더 있다. 청와대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으로 의심되는 트위터가 쏟아져 나왔다는데, 군 사이버사령부 요원들이 정치 댓글을 올렸다는데 청와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어제 국무회의에서 관련 현안을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군 통수권자로서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 비서진은 대체 대통령을 어떻게 보좌하고 있는 것인가.



 이명박정부로부터 도움 받은 것도 없는데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이 불거지는 상황 자체가 싫을 수도 있다. 그렇게 신세 진 게 없다면 더더욱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면 대통령 위상이 높아지는 것 아닐까. 박 대통령 지시로 국정원이 자체 개혁안을 마련했다고 하지만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는 작업 없이 개혁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어쩌면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검찰 내분도 폭탄이 굴러다니다 하수종말처리장에서 터진 것인지 모른다. 한 검사는 “청와대에서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하라’고 한마디만 해줬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선거는 국민이 대통령을 임명하는 인사(人事) 절차다. 그 중요한 절차가 다시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다른 절차들도 지켜질 수 있다. 크든 작든 절차가 지켜지지 않는 나라에 사는 건 위험하고 슬픈 일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난 10개월 “이 모든 것이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는 안톤 슈낙의 마지막 문장에 갇혀 있는 이유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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