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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자꾸만 엉뚱한 생각이 든다는 소심한 40대 남성 사업가



Q 고등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2학년짜리 아들을 둔 40대 사업가입니다. 무리하는 게 싫어 사업 규모를 크게 키우진 못했지만 빚 없이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학 때 만나 5년 연애 끝에 결혼한 아내와는 대화가 잘 통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무 부족한 게 없는 가정 생활을 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요즘 자꾸만 엉뚱할 생각이 들곤 합니다. ‘어차피 죽을 인생인데 열심히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다가 또 갑자기 ‘누군가와 뜨겁게 사랑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물론 생각뿐입니다. 원체 소심한 성격인 데다 혼외자식 문제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사람을 보며 ‘이 나이에 무슨 사랑, 정신 차리자’고 스스로를 다잡습니다. 그런데 또 얼마 못 가서 연애하고싶은 마음이 다시 꿈틀댑니다. 사춘기도 아닌데 왜 이런 걸까요.

"요즘 날 들었다 놨다 하는 욕망, 두 번째 사춘기래요"



A 우리 무의식에 살고 있는 본능은 욕심쟁이입니다. 끝도 없이 더 가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남에 대한 배려도 적고 매우 이기적입니다. 본능이 이타적이었다면 개인 간 갈등이나 지역 감정은 물론 국가 간 분쟁이나 전쟁도 없었을 겁니다. 또 사회 시스템도 훨씬 간단했을 겁니다. 사회 시스템은 끝없이 요구하는 개인의 욕망을 적절히 통제해 다수의 관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한정된 자원을 공유하는 소프트웨어입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욕망을 아무 통제 없이 다 채우려 든다면 세상은 혼란에 빠지겠죠. 사회 시스템이 요구하는 역할에 충실히 사는 게 때로 본능과 역행하는 건 이런 이유입니다.



 본능은 비록 이기적인 욕심꾸러기지만 단순히 좋다, 나쁘다 식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끝없이 본능에 따라 욕망하지만, 그게 결코 채워질 수는 없기에 죽는 순간까지 결핍이라는 이름이 친구처럼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본능과 결핍의 관계에 관한 이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본능의 요구가 좌절될 때 사람은 결핍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본능을 지나치게 억압해 생긴 문제라면 가끔씩 통제를 풀고 이완시켜 본능이 숨 쉬게 해 주는 게 솔루션(해결책)입니다. 또 다른 이론은 이와 전혀 다릅니다. 인간의 고독과 결핍은 욕망이 좌절돼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 원래 갖고 있는 본질이라는 겁니다. 그렇기에 그 결핍을 잘 수용하는 게 솔루션입니다. 두 이론 중 어느 게 진실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후자를 좀 더 신뢰합니다. 만약 ‘욕망의 좌절이 결핍’이라고 한다면 욕망이 주인공이라 상대하기가 더 어렵고 피곤합니다.



 혼자가 된 60대 중반 어른이 불면증으로 찾아왔습니다. 불면증과 함께 우울감·불안감이 있고 허무감에 힘들다 하더군요. 스스로를 리더십도 강하고 지금까지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런지 당황스럽다는 겁니다. 또 모임에 가면 항상 대장 노릇 하며 분위기를 주도했는데 이젠 그것도 귀찮고 사람 만나기가 싫다 합니다. 세 번 정도 더 상담하고 약물치료도 했는데 한동안 클리닉 발길을 뚝 끊었습니다. 잘 지내려니 했는데 몇 달 후 다시 찾아서는 ‘당신 말 들었다가 요즘 더 괴롭다’고 하더군요.



 무슨 말인가 했더니 ‘너무 모범생처럼 스스로를 통제하시며 산 것 같으니 이젠 좀 본인의 감성적 욕구에 충실하게 살라’고 조언을 했는데, 이 이야기에 너무 용기를 내서 새 여자 친구를 만난 겁니다. 처음엔 정말 사춘기 소년처럼 들뜨고 좋았답니다. 그런데 한두 달 지나니 여자 쪽에서 사랑의 대가로 다른 걸 요구했답니다. 진실한 사랑을 찾았다고 행복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거죠.



 그의 얼굴엔 좌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60대 사업가의 강인함과 노련함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첫사랑에 배신당한 사춘기 소년의 얼굴이었습니다.



 그 이후론 ‘감성적 욕구에 충실하게 살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많은 남자가 이 말을 ‘용기를 내 사랑을 해보라’는 말로 오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



 남자의 위기입니다. 남성 자살률이 여성에 비해 두 배 이상 높고, 고령화에 따른 자살률의 증가도 남자에게 더 뚜렷합니다. 자살은 구체적 원인이 무엇이든 결국은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내가 가치 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 하는 극단적인 행동이라는 겁니다. 불안과 우울 등 결핍의 느낌도 정체성과 관련한 감정 반응이죠.



 정체성은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겁니다.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는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이 만든 용어로, ‘청소년이 삶에서 현재와 미래의 역할에 대해 혼란스러울 때 경험하는 불확실성과 불편함’을 의미합니다. 사춘기 때의 정체성 위기를 거쳐 정체성 성취(identity achievement)라는 발달학적 결과물을 얻게 된다는 겁니다. 정체성 성취는 자신의 직업과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에 대해 확신하고 전념하게 되는 단계를 이야기합니다.



 에릭슨은 정체성 위기를 사춘기로 단정지었지만 사춘기에만 오는 것 같지 않습니다. 특히 평균 수명이 100세를 바라보는 지금은 40대를 넘어 언제든지 제2의 사춘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사춘기 때 형성한 정체성 성취가 긴 인생을 살기에는 부족해 정체성 위기가 다시 한번 찾아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연 주신 독자분의 경우도 두 번째 사춘기가 찾아온 겁니다. 스스로를 소심하다 했지만 소심한 게 아니라 사회적 역할에 충실한 모범생으로 살아온 거죠. 우리 사회 시스템은 구성원을 모범생으로 교육하고, 모범생이 사회경제적 성취를 이루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습니다.



 정체성 조기폐쇄(identity foreclosure)라는 좀 어려운 용어가 있습니다. 이는 충분한 정체성 위기를 겪지 않은 채 자신이 전념할 가치관을 일찍 수용한 상황을 말합니다.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결국 정체성 위기가 다시 찾아옵니다. 좀 놀다가 마음을 잡은 사람보다 일찍부터 모범적으로 산 사람이 두 번째 사춘기를 더 세게 맞기 쉽습니다.



 두 번째 사춘기는 병이 아닙니다. 인간 심리 발달은 청소년기에 완성되는 게 아니고 평생 지속되기에 정체성 위기는 여러 번 찾아올 수 있습니다. 다만 두 번째 사춘기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던 본능이 모범적인 삶과 갈등을 일으키며 결핍과 허무감을 느끼게 합니다.



 인간 욕망의 본질은 더 사랑받고 인정받는 존재가 되고 싶은 것 아닐까요. 그렇기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욕구가 두 번째 사춘기에 살아나는 겁니다. 이런 욕구는 꿈이고 실현시키고 싶은 환상입니다. 그러나 막상 꿈과 환상을 현실화하면 행복은 찾아오지 않고 인생만 복잡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남자의 두 번째 사춘기를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는 다음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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