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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 얼굴 없는 성형광고 늘어난다는데 …

최근 서울메트로가 민원전화를 받은 성형광고.


서울 지하철 1·2·3·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는 최근 승객으로부터 민원 전화를 받았다. 3호선 객차 내부의 인쇄 광고에 대한 것이었다. 새까만 바탕의 광고 속엔 맞잡은 두 손을 클로즈업한 사진과 함께 이런 카피가 쓰여 있었다.

“딸아, 걱정마. 이제 시집갈 수 있을 거야.” 무얼 알리려는지조차 모호한 광고 귀퉁이에 작게 쓰인 건 ‘○○○성형외과 의원’. ‘성형수술을 받고 예뻐지면 결혼할 수 있다’는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서울메트로 측은 “광고를 보고 언짢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유머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 않겠나.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내부 토의를 거친 끝에 계약이 만료되면 더 이상 이 광고를 연장 게재할 수 없도록 결론을 냈다.

정보 전달보다 감정에 호소
‘그 남자, 오늘은 내가 끝냈다!’ ‘고마워요 ○○성형외과’‘아름다운 인생을 원한다면’ ‘5살이나 많은 여자한테 내 남자를 뺏겼다’ ‘Change your life with ○○’ ‘대한민국에서 취업하기’ ….

지하철과 시내버스에서 볼 수 있는 성형외과 광고의 문구들이다.

이 중엔 수술에 대한 설명이나 비포&애프터 사진이 없어 언뜻 봐선 성형외과 광고로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하지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한 가지다. 행복을 위해선 무엇보다 외모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취업을 위해서도, 연애를 위해서도, 인생을 위해서도 예뻐져야 하니까 성형을 하자고 광고는 말하고 있다.

이처럼 성형외과들이 성형 자체와 관계없어 보이는 문구를 사용해 우회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의료광고 심의 때문이다. 강남의 한 성형외과 홍보 관계자는 “논란이 생기면서 심의 기준이 까다로워졌다. 비포&애프터 사진을 실으려면 화장까지 똑같이 해서 같은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차라리 강한 한 마디의 문구나 이미지로 승부하려는 경향이 생겼다”고 말했다. 경쟁은 심한데, 규제는 많고 광고에 대한 논란마저 커지면서 법규제를 피하는 방식으로 광고를 하는 묘수를 만들어낸 것이다.

KAIST 경영대학 박병호 교수는 “성형을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정보가 있는 광고를 원한다. 정보 없이 감정에 호소하는 건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성형외과 입장에선 잠재 고객 확장의 효과가 있지만 사회적으론 성형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얘기다.

허위·과장이라기엔 애매하고 적나라한 사진도 담지 않아 심의 기준에는 어긋나지 않지만, 이런 광고는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할 가능성이 더 크다. 박 교수는 “은연중에 왜곡된 인식을 갖게 하고 환상까지 심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버스·지하철에서의 성형광고 논란은 수차례 반복됐다. 주로 지나치게 광고가 많다는 문제 제기다.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윤인순(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대한의사협회의 ‘의료광고 심의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1년 602건이었던 성형외과 광고는 2012년 3248건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 전체 의료광고 총 심의건수 1만2177건의 26.6%를 차지한다. 광고가 크게 늘어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대중교통이다. 지난해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의료광고를 할 수 있는 매체에 대중교통 시설이 포함됐고 버스·지하철에 성형외과 광고가 우후죽순 붙었다.

‘성형의 메카’라는 압구정역의 경우 벽면과 기둥, 출입구의 계단 양 옆 대부분을 성형외과 광고가 채우고 있다. 4번 출구의 안내판에 적힌 지명은 전부 성형외과다. 세어보니 압구정역 내부에 있는 성형외과 광고는 90개에 육박했다. 강남 일대를 다니는 버스 측면에서도 이런 광고를 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대중교통의 성형외과 광고가 시각 공해에 이르렀다는 논란이 일자 박원순 서울시장도 개선책을 찾겠다고 나섰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나치게 성형 광고가 많아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것이라고 본다. 서울시 시내버스의 성형외과 광고 비율을 5% 이내로 유지하도록 협의하고 광고에 대한 사전심의를 강화해 공공성을 제고하겠다”라는 글을 올렸다. 박 시장이 언급했듯이 “사전 심의에 의해 광고가 시행되고 있고, 성형광고 자체를 제한하기는 어렵다”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박 시장이 5%라는 숫자를 내세우면서 의지를 보인 건, 대중교통과 성형광고가 가진 특성 때문이다. 엄연히 의료행위임에도 광고를 통해 성형이 손쉽게 비춰지는 것, 이런 왜곡된 인식이 버스와 지하철에 실려 도시 곳곳에 퍼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그것이다.

대중교통에서의 의료광고 심의를 강화하는 방안도 진행 중이다. 현재 대중교통시설의 의료광고는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따른다. 옥외에 해당하는 역이나 버스 외부 측면은 심의 대상이지만 실내인 객차 내부는 법망에서 비켜 있다. 이 때문에 내부에서 허위·과장광고를 해도 제재할 수 없다. 소비자시민모임이 7·8월 두 달간 운송수단 내부에 실린 의료광고 실태를 조사한 결과 검증되지 않은 시술을 알리는 등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성형외과 광고 31건이 확인됐다. 이와 관련, 지난 5월 민주당 최동익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에 버스·지하철 내부의 의료 광고도 심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국회 계류 중이다.

시내버스·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성형외과 광고들. 수술에 대한 정보나 비포&애프터 사진 없이 감성에 호소하는 문구를 사용한다. [중앙포토]


“심의 후에도 사후 모니터링해야”
반론도 있다. “눈에 띄는 것만큼 광고가 많지는 않다” “경영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지하철 1·2·3·4호선 전체에서 성형외과 광고의 물량 비중은 7.9%다. 압구정역과 신사역을 지나는 3호선만 따지면 27%다. “혜화역을 가면 공연 광고가 많은 것처럼 지역 특성이 반영됐을 뿐이지 모든 역에 성형광고가 있는 건 아니다”라는 것이 서울메트로 측의 얘기다. 서울시도 “운수 수입만으론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부대사업으로 수입을 늘려 시민의 세금을 아끼는 측면을 봐 달라”고 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성형 성수기가 시작되고 성형외과 광고도 증가한다. 소비자시민모임 윤명 기획실장은 “대중교통에 부착된 광고는 남녀노소 모든 사람에게 노출된다”며 “심의를 받은 광고에 대해 유효기간을 두는 등 사후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주희 기자, 정재홍 인턴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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