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남덕현의 귀촌일기] 태양초 타령이 어이없는 까닭은…

남덕현
“‘언니 태양초 맞죠?’ 허는디 보내주구 싶은 맴이 싹 사라지데! 시골 사정은 알지두 못허믄서 해마다 태양초 타령을 참말루 쉽게두 혀. 태양초 좋은 줄은 알아가지고. 하여튼 입맛은 맬깡 청와대여! 사램덜이 왜냥(왜 그렇게) 경우들이 읎댜?”

동네 어르신이 친척에게 고춧가루를 보내주마 전화를 걸었다가 기분이 상하신 모양이다. 얻어먹는 주제에 주는 대로 먹지 까탈을 부린다는 타박이 아니다. 태양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면 그런 소리는 안 나올 것이라는 섭섭함이 더 크다.

사실 태양초는 전통적인 농촌의 대가족 환경에서나 생산이 가능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논과 밭으로 일 나가면 태양초를 만드는 일은 할아버지나 할머니 그리고 어린 손자들의 몫이다. 해를 따라 고추를 옮기고, 비라도 올 기세면 냉큼 걷어야 하며, 햇볕이 너무 뜨거우면 바람과 그늘을 찾아 이동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한쪽만 너무 햇볕에 노출되면 누렇게 타버리기 때문에 오징어를 굽듯 몸통을 이리저리 번갈아 뒤집어줘야 한다. 한마디로 하루 온 종일 누군가 고추 옆에 붙어 있지 않으면 태양초는 엄두도 낼 수 없다.

대부분 노인 둘이 사는 경우가 태반이고, 아이들보다 전봇대 숫자가 많은 곳이 요즘 시골이다. 누가 있어 애지중지 태양초를 빚어낼 것인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태양초는 시골의 붕괴와 더불어 벌써 ‘멸종’했어야 옳다. 몇 년 전 건조기 회사에서 날아온 홍보책자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태양초처럼 건조됩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태양초 흉내를 낼 수 있다. 그러나 태양초의 맛과 향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 차이는 오랜 시간 고추를 심고, 기르며, 말려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직감의 영역에 속한다.

태양초와 기계건조 고추를 구분하는 방법을 공부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도시 사람들은 이미 멸종한 태양초를 찾고, 시골 사람들은 건조기를 돌려 태양초 흉내를 내야만 하는 ‘경우’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성장과 개발논리에 무너진 시골의 뼈와 살 위에 세워진 ‘도시’가 이제 시골에 ‘시골 흉내’를 내라고 강요하는 꼴이다.

일찍이 노자는 얻기 힘든 것을 귀하게 여기면 반드시 도적질이 성행한다고 했다. 태양초 귀한 줄 누가 모르겠는가? 태양초만큼만 시골을 귀히 대접해준다면 오죽 좋을까. 얼마 전 중국산 다대기를 건조해 만든 가짜 고춧가루를 유통시킨 업자가 적발됐다는 기사를 보았다. 기막힌 심정은 중국산 다대기 소동과 태양초 타령이 크게 다르지 않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