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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512>판소리의 모든 것

권철암 기자
판소리는 400여 년 전부터 전해오는 우리 민족 고유의 민속 예능이다. 서민의 고된 삶을 풀어내고, 때론 신랄한 사회 비판으로 서민들의 답답한 가슴을 뚫어줬다. 음악뿐 아니라 문학·연극적 가치를 함께 지닌 판소리는 그래서 ‘민속 예능의 꽃’으로 불렸다. 안타까운 건 최근 판소리가 대중의 관심에서 많이 멀어져 있다는 점이다. 판소리의 기원과 종류·변천사·득음 등에 대해 알아봤다

# 무대와 객석이 하나로

판소리는 부채를 든 창자(소리꾼)와 북을 치며 추임새를 넣는 고수, 감상자라 할 수 있는 청·관중이 하나가 된 민속 예능이다. 소리꾼이 창(소리·노래)과 아니리(말), 너름새(몸짓)로 이야기를 풀어가면 고수가 소리북에 장단을 맞춰 흥겨운 추임새로 소리판을 만든다. 청·관중 역시 창자와 고수의 공연에 참여하면서 긴 이야기의 한 부분을 담당한다. 판소리는 음악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그냥 판소리다. 서양식으로 어느 장르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이 중심이 돼 있지만 문학과 연극적인 요소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김정태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연구사는 “판소리는 서정적인 노래에서 서사적인 극가 양식으로 발전한 예술로 전통음악의 무가·정가·민요·시조 등 다양한 양식을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 판 주도하는 소리꾼(창자)

인당(忍堂) 박동진 선생은 판소리 완창(完唱)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사설로 전해오던 판소리 일곱 마당을 소리로 복원한 인물이다. 사진은 인당이 1990년 7월 28일 ‘변강쇠가’를 완창하는 모습. [중앙포토]

 소리꾼은 창과 아니리·너름새를 섞어가며 소리를 하는데, 소리판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주체다. ‘창자’(唱者)나 ‘광대’(廣大)라고도 부른다. 창이란 판소리에서 노래로 부르는 부분을 말하고, 아니리는 말로 내부를 설명하거나 근경을 묘사하는 부분을 가리킨다. 아니리는 시간의 흐름이나 장면 전환 등 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구실을 한다. 또 창은 어떤 장면을 확대 부연해 긴장과 감흥을 유발시킨다. 해학적인 대목은 아니리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너름새는 판소리 창자가 소리하는 도중에 하는 춤이나 몸짓을 가리킨다. 소리꾼은 이런 창과 아니리 등을 번갈아 가면서 부른다. 그래서 판소리는 긴장과 이완이란 반복 교체 구조 형태를 갖추고 있다.

# 소리 공간 메우는 고수

동리(桐里) 신재효 선생은 판소리 여섯 마당 집성자이자 개작자·이론가·후원자·지도자로 높이 평가된다. [중앙포토]
 고수(鼓手)는 소리판에서 북장단을 치는 사람이다. 소리꾼과 함께 소리판을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주체다. 고수는 소리꾼 왼편에서 소리꾼을 보고 앉는다. 고수는 장단을 짚는 반주의 기능과 함께 추임새로 소리의 공간을 메워 주는 역할을 한다. 추임새는 소리 도중에 하는 ‘얼씨구’ ‘좋다’ ‘으이’ ‘그렇지’ ‘아먼’ 등의 흥을 돋우는 감탄사를 가리킨다. 이 말은 ‘추어주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정도 이상으로 칭찬해 주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뱃속에서 올라오는 무게 있는 음성으로 그 분위기에 맞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청·관중, 추임새 넣으며 즐겨야

 판소리의 특징은 청·관중에서 찾을 수 있다. 청·관중은 소리꾼의 소리에 장단을 맞추며 고수처럼 추임새를 넣는다. 소리꾼과 고수의 공연에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우리 고유의 문화인 셈이다. 이 때문에 청·관중 없는 판소리 공연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녹음된 판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녹음으로 듣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판소리가 아니다. 청·관중과 공연자 사이에 상호작용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판소리에서 사용하는 말 중 ‘귀명창’이란 것이 있다는 사실이 청·관중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단적인 증거다. 판소리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추임새를 넣고 동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게 익숙하지 못 하고 어렵다면 박수로 화답하는 것도 괜찮다.

# 영조 무렵 한시로 남아

 판소리의 기원으로 많이 언급되는 것이 무당굿 기원설이다. 소리꾼 대부분이 무계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다. 문헌을 통해 판소리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최초의 시점은 영조 무렵이다. 충청도 목천 사람인 유진한이 호남 지방을 여행하고 돌아왔는데, 이때 공연됐던 춘향가의 가사 200구를 한시로 옮겨 놓은 것이다. 판소리는 전승을 구가하던 19세기에 열두 바탕이었으나 현재 전승되고 있는 것은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등 다섯 바탕이다. 변강쇠타령·옹고집타령·배비장타령·강릉매화타령·장끼타령·무숙이타령·가신선타령 등 일곱 바탕은 전승 과정에서 탈락했다. 예전의 박동진 명창은 전승이 안 되는 다른 판소리를 복원해 부르기도 했다. 현재는 창작 판소리라 해서 오늘날에 맞는 소재와 주제로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해 새롭게 부르기도 한다.

# 동편제·서편제·중고제

왼쪽부터 만정(晩汀) 김소희, 동초(東初) 김연수, 양암(亮菴) 정광수. 이들은 수많은 명창을 길러내고 우리 판소리를 전승 발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 인물들이다. [중앙포토]

 판소리는 명창의 출신지나 창법 등 음악적 특징에 따라 크게 동편제와 서편제, 중고제로 구분된다. 동편제는 송흥록의 음악을 이어받은 유파로 남원 운봉, 구례, 순창, 고창 흥덕 등지에서 성행했다. 창법은 씩씩하고 웅건담담하다. 처음 소리를 낼 때 신중히 내고, 구절의 끝맺음이 대단히 명확해 쇠망치로 내려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동편제의 명창은 송흥록을 비롯해 박만순·김세종·정춘풍·김창록·김찬업·박기홍 등을 들 수 있다. 서편제는 박유전의 음악을 이어받은 유파로 광주, 나주, 보성, 해남 등지에서 성행했다. 부드럽고 애절하며 슬픈 계면성음을 많이 쓰는 유파다. 서편제의 명창은 박유전을 비롯해 이날치·정창업·김창환·김채만 등을 들 수 있다. 중고제는 김성옥의 음악을 이어받은 유파로 경기도 남부와 충청도에서 불렸다. 창법은 동편과 서편의 중간이며, 상하성(上下聲)이 분명하다. 중고제 명창에는 김성옥을 비롯해 고수관·김제철·한송학·김석창·김정근·김창룡 등을 들 수 있다.

# 현대 판소리, 개인 특성 두드러져

이자람(34)은 직접 창작한 ‘억척가’ 등 50여 곡의 판소리를 15명이 넘는 캐릭터로 연기하는 퓨전 소리꾼이다. [중앙포토]
 판소리는 대략 4기의 역사로 나눌 수 있다. 19세기 전반은 전기8명창 시대로 권삼득·송흥록·염계달·모흥갑·고수관 등이 활동했다. 19세기 후반은 후기8명창 시대로 박유전·박만순·이날치·김세종 등이 활동했다. 근대5명창 시대인 20세기 전반에는 김창환·송만갑·이동백·김창룡·정정 등이 명성을 날렸고, 20세기 후반은 인간문화재 시대로 김연수·김소희·박동진·박봉술·정광수 등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돼 활동했다. 현대에 들어 판소리는 여러 스승으로부터 두루 받은 전수와 오랜 수련을 통해 나름의 재해석과 통합된 소리를 구축하게 됐다. 동편제·서편제·중고제 등으로 명확하게 구분되기보다 개인의 음악적 짜임새와 특성이 두드러지게 됐다.

 호남, 그중에서도 전북을 소리의 본고장이라고 한다. 판소리는 동편제라는 음악 양식으로 지금의 전북을 중심으로 꽃피었기 때문이다. 1940년에 정노식이 지은 ‘조선창극사’에는 90명의 명창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40명이 전북 출신이다. 또 현재 소리꾼들이 주축이 된 창극단 8곳 중 전북이 4곳이나 된다. 조선후기 전주대사습놀이가 전주에서 열렸고, 세계소리축제도 올해로 12번째 전주에서 열렸다.

# 득음, 세상을 표현하는 오묘한 경지

 흔히 ‘득음(得音)’이란 말을 한다. 득음은 판소리계에서 오르고자 하는 이상적 경지나 수련을 통해 자신만의 소리 세계를 구축한 단계라 할 수 있다. 득음은 수련 과정에서 ‘음을 얻었다’거나 ‘목을 얻었다’라는 것이다. ‘음을 얻었다’는 것은 정확한 음정과 넓은 음역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발성, 갖은 음색으로 세상의 소리를 다양한 성음으로 표출할 수 있는 경지를 말한다. ‘목을 얻었다’는 것은 학습과 수련이라는 담금질 과정을 통해 소리 하기에 적합한 목구성을 획득하고 다양한 목재치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는 경지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을 보면 폭포수 아래서 피를 토하며 득음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과연 현실성이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과장된 면이 많다는 해석이다. 일반적으로 피를 토하는 경우는 없고 성대 관리가 잘 되지 않거나 너무 무리하게 연습을 해 피가 나올 수는 있다고 한다. 다만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는 피를 토할 정도로 수련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폭포수나 깊은 산속에서 수련하는 것은 타당성이 인정된다. 체력이 중요시되는 소리꾼에게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는 피로 해소를 빨리 시켜 수련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폭포수 아래 차가운 물속에서 오랜 시간 연습하는 것은 자칫 목을 상하게 할 수 있어 영화나 드라마에서와 같은 장면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권철암 기자
<자료 : 전라북도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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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