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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고도 전기비만, 궁해야 뺀다

이규연
논설위원
15일 건국대에서 열린 생명문명 국제세미나장. 스위스에서 온 광합성 학자가 사진 한 장을 띄웠다. 다시마 모양의 고산지대 식물이었다. 이 식물 모양에 착안해 축축 늘어지는 태양전지그물을 만들고 있다고 그는 소개했다. 건물 지붕에 걸쳐놓으면 딱딱한 사각전지판보다 더 많은 태양에너지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요즘 스위스에서는 녹색기술 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바람의 동력은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이라고 학자는 설명했다.



 스위스의 제조업 비중은 우리와 비슷하다. 원자력발전 비중도 그렇다. 그런 스위스가 지난해 위험천만해 보일 수도 있는 정책을 채택한다. 원전을 짓지 않기로 한 것이다. 수십 년 뒤 원전은 제로가 된다. 알다시피 스위스는 직접민주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자연도태’ 의견이 발의됐다. 이후 국민적 합의를 이룬 뒤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궁하면 통한다고 할까. 새 에너지원을 찾아내고 효율을 높이려는 경쟁이 촉발됐다.



 전기는 음식과 같다. 값싼 음식이 가까이 있으면 자주 많이 먹게 된다. 현대 비만의 주범이 냉장고와 패스트푸드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전기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전기요금은 유럽연합 평균의 절반이다. 공교롭게도 전력 소비량은 두 배다. 최근 누진제가 도입되면서 가구 소비 방식은 나아지고 있지만 산업계는 여전히 고도(高度) 비만형이다. 값이 싸니 다이어트의 절박함을 못 느낀다. 공급 방식도 지나치게 획일적이다. 단체배식을 하듯, 정해진 가격에 일괄적으로 나눠준다. 다양한 에너지원과 가격대가 등장할 무대가 없다.



 “전력 가격·공급의 틀을 이대로 두면 에너지 스마트 사회로 갈 수 없다.” 스마트그리드의 개척자인 문승일 서울대 교수는 단언한다. 지금의 구조라면 굳이 비싼 고효율 설비를 할 이유가 없다. 문을 열어놓고 에어컨을 틀어도 매상에 치명적이지 않다. 계절·시간대에 따라 전력요금을 달리 하려면 정보망을 깔아야 하는데, 애써 그런 곳에 돈을 들일 필요성도 못 느낀다. 세상이 깜깜해질지 모른다고 경보를 날려도 뻐꾸기 소리쯤으로 흘려보내는 판이다.



 문제가 수없이 제기됐음에도 고치지 않는 게 더 문제다. 2·3대 녹색성장위원장을 지낸 양수길 박사는 ‘전기의 정치변수화’를 문제의 뿌리로 본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실천하려면 전기 수급체계의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건의했지만 경제수석실·경제부처의 반대에 부닥쳐 무산됐다고 했다. 물가와 성장률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지 모를 결정을 당대에서 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맞는 얘기인데, 지금은 아니다”라는 레코드판이 돌아갔다. 그 사이 적자는 쌓였고 녹색산업은 성장하지 않았으며 사회는 고도 전기비만형이 됐다.



 최근 원자력 비중을 이전 계획보다 낮춘 국가에너지 기본계획 초안이 공개되자 논란이 일고 있다. “전기요금이 5배까지 오른다” “공장 문을 닫아야 한다”는 다소 황당하고 거친 주장까지 신문 헤드라인에 오른다. 지구촌의 흐름으로 볼 때 초안이 과격해 보이지는 않다. 스위스처럼 원전을 자연도태시켰다는 것도 아니고 현 수준에서 약간 비중을 낮추겠다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쉬운 것은 고도 전기비만을 바로잡을 확실한 방안이 보이지 않는 점이다. 이참에 전기요금 구조와 공급 방식을 현실화·고도화하는 논의를 해야 한다. 미래세대를 위해 당장 힘들더라도 살을 빼고 단체배식 방식을 바꿔야 한다. 다시마 태양전지 망처럼 혁신적인 생각이 넘쳐나게 해야 한다.



 스위스 학자의 강연을 듣고 학교에서 나와 부근 맛집 거리로 들어섰다. 골목은 환했다. 일식집 간판, 한식집 메뉴 진열대에서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있었다. 두 평 남짓한 휴대전화 판매장에는 10여 개의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무심코 시계를 봤다. 낮 12시였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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