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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간송미술관에서 변하지 않은 '우리'를 만나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들이다. 단풍 곱게 물든 가을날 대낮부터 도포자락 휘날리며 네 사내가 엉겨 내달린다. 갓 쓰고 술띠까지 두른 게 영락없는 양반 차림새인데, 가운데 수염도 안 난 젊은이는 상투 바람이다. 하회탈처럼 웃는 것이 얼근하게 취해 저만 즐겁다. 어딜 가나 이런 사람 꼭 있다. 옆에 부축하는 이들이 죽을 맛이다. 맨 뒷사람은 취객의 등에 얼굴을 묻은 채 휘청거린다. 나무들도 깜짝 놀랐는지 크게 입 벌리고 쳐다보는 듯해 해학을 더한다. 영조의 어진을 그리기도 했던 화원 김후신(1735∼1782)의 ‘통음대쾌(痛飮大快: 흠뻑 마셔 크게 유쾌하다)’다.

김후신, 통음대쾌, 지본담채, 28.2×33.7㎝, 간송미술관.
 저 배경 그대로 등산복으로 갈아입히거나, 저 인물들이 빌딩 배경에 양복 차림으로 나서도 이상하지 않을 익숙한 상황이다. 예나 지금이나 주정뱅이 하는 양이 비슷한 건 딱할 노릇이지만, 그림 속 얼굴들은 그만큼 우리 얼굴에 가깝다. “중국풍에서 벗어나 갓 쓰고 우리 얼굴 한 인물들이 그림에 등장하기론 현존 그림 중 거의 처음”이라고 간송미술관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이 설명한다. 그만큼 자신감 있게 우리 문화를 꽃피운 진경시대의 풍속화 명작 중 하나다. 그림 옆에는 서예가 소전(素筌) 손재형(1903∼81)이 봤노라고 적고 인장을 찍었다. 오래된 것들에나 남아있는 아취다. 그림은 27일까지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가을정기전 ‘진경시대 화원전’에 나온다.

 이 미술관이 다시 떠들썩해진 가을이다. 하루 평균 5000명, 전시 나흘째인 어제까지 2만여 명이 몰렸다. 관람시간보다 대기시간이 훨씬 길고, 쾌적한 감상이란 언감생심이며, 전시장 공간 연출이나 작품 설명 같은 배려도 없는 무뚝뚝한 미술관. 그런 이곳에 매년 이렇게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공짜이고, 보기 드문 전시라서일까. 최완수 소장은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변했어요, 그런데 여기는 50년을 안 변했거든요. 간송미술관에 오면 ‘우리’를 느끼고 가는 거죠. 사실 지금 어디를 가도 ‘우리’는 없잖아요” 한다. 1938년 건축가 박길룡(1989~43)이 지은 오래된 건물 냄새, 무심히 가꾼 마당의 파초와 산수유·감나무 냄새, 미술관에서 기르는 백공작 냄새, 그리고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석상과 석등 등. 이 미술관 마당에 서면 눈보다 코가 먼저 옛날을 감지한다. 이제는 없어진 서울 변두리 내 할아버지 댁 냄새와도 닮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여전할 수는 없다. 외부 기관과의 협업, 상설 미술관 신축 등 이 미술관도 변화의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이렇게 또 한 시대가 간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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