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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프라이카우프가 소문난 잔치 돼서야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기자
“북한 정치범 12만 명과 납북자·국군포로 수백 명을 위해 한국형 프라이카우프(freikauf)를 도입할 의사가 있습니까.”(심재권 민주당 의원)

 “과거부터 논의돼온 방식이고 동·서독에서 시행된 사례가 있기 때문에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류길재 통일부 장관)

 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선 ‘프라이카우프’에 대한 질의가 나왔다. 프라이카우프는 과거 서독이 동독 측과 벌인 정치범 석방·인도 협상 방식을 말한다. ‘자유를 산다’는 의미다. 서독은 1963년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까지 3만3755명의 정치범을 동독에서 빼내는 대가로 34억 도이치마르크(약 15억 달러 추산)를 지불했다.

 기자는 의미 있는 추가 논의가 이어질 것이란 생각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기대는 금방 무너졌다. 더 이상 질문은 없었다. 심 의원이 통일부에 요구한 25건의 국감자료 목록에도 프라이카우프나 정치범 석방 대책 등은 올라 있지 않다. 처음부터 깊게 다룰 요량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앞서 지난 8일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도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다. 전 대표는 “서독의 프라이카우프를 우리 현실에 적용한, 남북 인도주의 문제의 대타협인 한반도 프라이카우프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심 의원의 질의는 소속당 원내대표의 제안을 주무장관에게 각인시키는 수준이란 평가가 국감장 안팎에서 나왔다.

 국회의원이 자신들의 정책을 공론화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프라이카우프 도입을 주장하려면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그 핵심은 ‘돈을 주고 산다’는 것이 아니라 시행 과정에서의 철저한 비밀이다. 서독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고 교회나 변호사 등 민간이 전면에서 보이지 않는 활동을 벌였다.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이런 원칙은 지켜졌고 26년간의 꾸준한 활동 끝에 독일 통일이란 목표점에 도달했다.

 제안 단계부터 정부에 “할 테냐 말 테냐”고 요란하게 광고를 한 우리와는 판이하다. 프라이카우프가 납북자·국군포로 문제의 해법으로 거론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명박정부 때인 2009년 10월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은 “일정한 대가(현금·물자)를 주는 ‘독일 정치범 송환 방식’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정치권의 반응은 썰렁했다. 야당의원 질의에 대한 류 장관의 답변 역시 원론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진정 북한 내 납북자·국군포로, 정치범 문제의 인도적 해결을 원한다면 떠들썩한 광고보다 치밀한 전략을 소리 없이 짜야 한다.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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