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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절규 가득찬 지구 … 부풀고 찌그러졌을 것

박주택의 시집 제목 『또 하나의 지구가 필요할 때』는 시 ‘도플갱어’에서 따왔다 ‘지구의 이쪽이 아프고 지구의 저쪽이 아퍼 또 하나의 지구가 필요할 때 우리는 날마다 전시되고 날마다 비육되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빛 한 점 새어 들지 않는 동굴 같은 집에 박주택(54) 시인이 앉아있다. 24시간 커튼을 드리운 골방에서 시인은 홀로 육신과 정신을 유폐시켰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 때마다 폭음을 했다. 새 시집 『또 하나의 지구가 필요할 때』(문학과지성사)는 철저히 자신을 갉아먹은 자리에서 태어났다.

커튼 친 골방서 폭음 … 바닥까지 가봤죠

 어린 시절부터 문사로 이름을 날렸고, 지금은 시단의 중진으로 번듯한 교수 직함까지 있는 시인에게 뭔가 어울리지 않는 고독이다.

 “바닥까지 가 본 거예요. 20대 때 시는 장식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그냥 지나칠 수 없게 철저히 시 속으로 들어가 버린 거죠.”

  그는 이번 시집이 자신의 전환기라고 자평한다. 전작들이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을 다뤘다면 이제는 사회적이고 전체적인 것으로 시선을 옮겼다.

 면면을 살펴보면 이렇다. ‘국가의 형식’이란 시에서 ‘우리는 전쟁을 모방하여 싸우고, 싸우고 난 뒤에야 안심을 얻어내’고 돈과 사람이 거래되는 ‘증권거래소’에선 ‘눈에 새겨진 비명’을 알아차리며 ‘카메라 제국’에서 ‘우리는 완전히 기억처럼 사육되며 고삐처럼 기억된다’.

 그는 이미 이 시대가 자본과 소비의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속에 침윤된 존재의 절규와 고통, 우수과 침울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모두 발버둥치고 몸부림치는데, 그 아우성의 소리를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옮기고 싶었어요. 개인적 주체가 아닌 다중적 주체, 개인 속에 포함된 우리라는 개념. 그것이 이번 시집의 전체성의 맥락입니다.”

 형식적 변모도 눈에 띈다.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보통 시인의 나이가 되면 자기세계에 갇히거나 미학적으로 보수적이 되기 쉬운데, 박주택은 특별한 케이스다. 보다 많은 현대성을 가지려 하고 그 세대에 보기 힘든 과감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고 평했다. 시인이 ‘전작들을 위한 애티튜드’에서 ‘이번 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전작에 대한 저항과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다.

 콘크리트의 냉기가 감도는 냉혈한 시어 앞에서 “그래도 희망은 없는 거냐”고 물었다. 그 답은 이 시집의 제목 ‘또 하나의 지구가 필요할 때’로 대신한다.

  “지구가 더 이상 둥근 모양이 아닌 것 같아요. 욕망으로 팽창하고, 절규로 가득 차서 한쪽이 부풀어 올랐거나 찌그러졌을 것 같아요. 이건 농담인데, 요즘엔 길거리에서도 담배를 못 피우잖아요. 또 하나의 지구가 필요해요.”(웃음)

 안식년이라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시인에게 최근 유일한 ‘지구’이자 ‘빛’은 햄스터다. 아파트 로비에 누군가 버린 것을 가져다 키우고 있다. 그 작은 생물이 사람 말을 알아듣고 재롱을 피우는데 제자들에게 보낼까 하다가도 망설이게 된단다.

“그 세대 보기 힘든 과감한 형식적 실험”

 “검은 하늘 속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빛 때문에 사는 거겠죠. 사는 것은 의지적이예요. 결심이 필요하죠. 인간은 매일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겠다고 결심이 설 때 아침이 오는 것 같아요.”

글=김효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박주택=1959년 충남 서산 출생. 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시간의 동공』? 등. 현대시 작품상·소월시문학상 등. 경희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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