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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연주 최고 아니어도 최선, 아름다운 그들

2009년부터 ‘기쁜우리챔버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한 ‘왕고참’ 박경인씨가 클라리넷을 든 채 활짝 웃고 있다.
“자, 앞에 관객이 있다고 생각하고 인사하는 거야.”

 지난 15일 오후 8시 서울 가양동의 한 복지관 강당. 지적·자폐 장애인으로 구성된 ‘기쁜우리챔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정기 공연을 하루 앞두고 막바지 점검을 하고 있었다. 단원들은 지휘자의 신호에 맞춰 가상의 관객을 향해 쭈뼛쭈뼛 인사를 했다.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 합주가 시작됐다. 먼저 부드럽고 묵직한 클라리넷 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졌다. 이어 첼로·바이올린·비올라가 힘겹게 선율을 보탰다. 전체적으로 불협화음이었다. 하지만 단원들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한 음 한 음 연주를 이어갔다.

 오케스트라 단원 20명은 모두 무연고(無緣故) 장애인이다. 어려서부터 복지시설에서 지내왔다. ‘그룹 홈’에서 4~5명이 짝지어 생활자립교사와 함께 생활한다. 대부분 지적장애 1~3급 또는 자폐성 장애인이다.

 클라리넷을 맡은 박경인(19·여·지적장애 3급)씨는 여기에서 ‘왕고참’에 속한다. 2009년 말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질 때부터 활동해 왔다. 이번 공연에서 오케스트라 합주곡과 카니발의 ‘거위의 꿈’ 앙상블을 공연한다.

 한창 꾸밀 나이지만 박씨는 항상 손톱을 짧게 자르고 매니큐어도 칠하지 않는다. 연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는 “아직도 박자를 맞추는 게 어렵다”며 “우리 연주가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 했다. 복지시설에 산다는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자 주변 학생들은 ‘고아’ ‘장애인’이라고 놀렸다. 책상 서랍에 쓰레기를 넣어놓기도 했다. 박씨는 “그럴 때마다 도움실(특수반)에 뛰쳐 내려가 울었다. 나는 왜 이럴까, 왜 할 줄 아는 게 없을까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이제는 “돌이켜 보면 날 괴롭혔던 아이들도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서 괴롭힐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고 말할 정도가 됐다.

 변화는 오케스트라에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고교 진학 후 복지시설 교사의 소개로 클라리넷을 처음 만지게 됐다. 공기 구멍에 손가락을 맞추고 악보를 보는 법부터 배웠다. 남들보다 습득이 느린 탓에 하루 3시간씩 맹연습을 하고서야 겨우 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첫 정기 연주회를 거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비슷한 처지의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어울리면서 성격도 밝아졌다. 함께 클라리넷 앙상블을 하다가 남자친구도 사귀게 됐다. 박씨의 다음 꿈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그는 “나 스스로가 자신을 예뻐하지 않으면 진짜로 한심한 사람이 된다”며 “음악 공연을 하면서 나를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16일 오후 7시로 예정된 공연을 앞두고 이날 오후 마지막 리허설을 위해 무대에 오른 박씨는 “오늘 연주하는 ‘거위의 꿈’ 가사 내용처럼 장애가 있는 친구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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