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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엄마의 아르바이트

[사진 중앙포토]
“어린쥐, 어린쥐하란 말이야!”



몇 년 전 목격한 한 일화. 한 아파트에서 엄마가 아이 둘을 데리고 나오면서 영어로 아이들을 윽박지릅니다. 아이들은 엄마 뜻대로 ‘어린쥐(orange)’를 따라하지 않네요. 그리고 한 시간 뒤. 엄마 뒤를 쫓아 아이 둘이 입을 비죽거리면서 다시 집으로 들어옵니다. “엄마,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엄마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 돈 해브 머니, 오케이?(I don’t have money, okay?)



여기, 영어교육에 푹 빠진 한 엄마가 있습니다. 남들처럼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 싶고, 학원도 보내고 싶은데 살림살이가 빠듯합니다. 엄마는 결국,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엄마의 아르바이트가 6년째 이어지던 어느 날. 엄마의 ‘비밀 알바’를 눈치챈 아빠는 이혼을 하자고 합니다. 이 가족에겐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요. 내용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각색합니다.



#아빠의 이야기



그래, 내가 못난 놈이다. 학교 졸업하고 배우기 시작한 것이 미용 일이다. 내 꿈은 내 이름을 단 유명 미용실 프랜차이스 대표.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하루 종일 손님들의 머리를 매만지고 매달 손에 들어오는 돈은 100만 원. 그래도 기술을 얼른 배워 내 가게를 차리면 되겠지, 하는 꿈으로 버텨왔다.



아내를 만난 건 20대 초반 한 나이트클럽에서였다. 연락처를 주고받으면서 시작된 인연으로 우리는 4년의 열애 끝에 식을 올렸다. 결혼한 뒤로는 월급도 조금 올랐다. 나를 찾는 손님들이 늘면서, 한 달에 200만 원 남짓한 돈을 집으로 가져다주게 됐다. 남들처럼 알콩달콩 살림을 늘려가고 그 사이 아이 둘을 낳았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헌신적이었다. 임신했을 때부터 태교를 해야 한다며 책을 읽고, 영어 노래를 들었다. 첫 아이가 5살이 되면서부터는 유명한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했다. “우리 형편에 영어 유치원은 너무 심하다”고 반대를 했지만 아내는 완강했다. 나도 사실 흔들렸던 건 사실이다. 큰 아이는 영어 노래를 곧잘 따라했다. 내가 보기에도 영민한 아이를 나처럼 키우고 싶진 않았다. “애들 교육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라”라고 하는 아내의 말. 그 말을 나는 온전히 믿었던 듯싶다.



둘째가 태어나면 서부터는 내 월급만으론 생활이 어려웠다. 아내는 사촌동생 옷가게에서 일을 돕기 시작했다. 아내는 그렇게 일해 번 150만 원을 아이들 영어 유치원비에 보탰다. 그리고 몇 달 뒤. 아내는 “더 좋은 직장을 구했다”고 자랑을 했다. 아내가 버는 돈은 내 월급의 2배인 400만 원. 아내는 내게 “이 돈으로 당신 전문대라도 다니라”고 했다. 아내의 지원으로 대학공부를 시작했고, 그렇게 남들처럼 사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모텔 거리를 지나가다 아내 뒷모습을 보았다.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다. 이 시간이면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저 닮은 사람이겠거니. 뒤를 쫓아갔다. 그리고 한참을 모텔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렸다. 얼마였을까. 아내가 낯선 남자와 팔짱을 끼고 모텔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이게 현실이 아니어야 했다.



#엄마의 이야기



어릴 때부터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게 있다. “난 엄마처럼 안 될 거야.” 가난하다는 이유로 엄마는 늘 내가 하고 싶어하는 걸 반대했다. 가난한 집 딸이라서, 남들처럼 대학에 가진 못했지만 내 아이들마저 그렇게 키우고 싶진 않다.



영어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겠다고 했을 때 남편은 펄쩍 뛰었다. “형편에 안 맞게 유난 떤다”는 거였다. 형편대로라면 아무것도 애들에게 가르쳐 줄게 없다. 사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벌이를 늘리면 남들처럼 학원이라도 보낼 수 있다. 적어도 아이를 나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지 않나. 학부모들이 모인 각종 인터넷 카페에 가면 극성엄마들이 판을 친다. 수백만 원 하는 전집을 밥 먹듯이 사주는 엄마, 6개월 때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씩 원어민 영어선생님을 집으로 부르는 엄마에, 유명 유치원 옆으로 이사까지 가는 엄마. 나보다 애들 교육에 열혈인 엄마들은 넘쳐난다.



처음부터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은 없었다. 큰 애가 영어 유치원을 다니면서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싶다. 같은 반 친구처럼 미술도 배우고 싶다”고 하니까 그렇게 된 거다. 초등학교 3학년만 되어도 수영 수업이 있는데, 또래들은 이미 5살부터 학원에 다니며 수영을 배운다. 우리 애만 학교에서 처음으로 수영을 배우라곤 할 수 없잖은가.



남편 월급만으론 영어 유치원은 무리였다. 마이너스 통장까지 동원했지만, 학원을 보내려면 별도 수입이 필요했다. 마침 사촌동생이 제안을 해왔다. 옷가게 일을 도와주면 월급을 주겠다는 거였다. 한 달에 150만 원이면 애 둘 학원비는 댈 수 있었다.



일은 고됐다. 옷을 파는 것보다 새벽부터 시장에 나가 물건을 떼어오고 실어나르는 일이 고됐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동생이 “언니, 월급 더 주는 데서 한 달만 일해 볼래요?”라고 제안했다. 동생의 ‘아는 사람’이 운영한다는 가게 앞까지 가고 나서야 그 ‘고급 일자리’가 뭔지 알게 됐다. 그곳은 술집이었다.



동생에게 화를 내고 돌아왔다. 며칠 뒤 술집 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사람이 없다. 분위기만 맞춰주면 되니 딱 한 달만 일해 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보너스도 얹어주겠다고 했다. 둘째도 유치원에 갈 때여서 입학금, 교재비 등 돈이 필요했던지라, 딱 한 달만 일을 나가기로 했다. 남편에겐 비밀로 했다. 미안한 마음에 내가 번 돈으로라도 남편의 평생 한이었던 대학공부도 시켜보자 싶었다.



공부를 마친 남편은 대출을 얹어 미용실을 차렸다. 큰돈을 주고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썼지만 손님들이 늘지 않았다. 남편은 조금만 참아보자고 했지만 결국 가게는 3년도 채 되지 않아 문을 닫아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부부관계는 소원해졌고, 내 마음속에는 다른 남자가 들어오게 됐다. 길에서 우연히 남편과 마주치게 되면서 시한폭탄이 터지고야 말았다. 남편은 ‘불륜’이라며 길길이 날뛰었고, 그 길로 나는 두 아이를 등지고 나와 살아야 했다.



#법원의 판단은



아이들의 교육비를 대기 위해 술집 아르바이트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아내. 그런 아내의 불륜 현장까지 목격하게 된 남편은 아내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다. 부산가정법원은 “아내가 남편 모르게 술집에서 일하면서 부정행위를 했다”면서 “이혼의 책임이 아내에게 있다”고 판결했다. 아내는 “남편의 월급만으론 생활비도 대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법원은 “술집에서 일하는 행위는 혼인생활에서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며 아내 주장을 일축했다. 법원 판결로 아내는 남편에게 2000만 원의 위자료를 물게 됐다.



이 부부의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법원은 10대인 아이들의 정서를 감안해 양육권을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는 별거 이후 술집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사무직 일을 구했다. 반면 남편은 미용사 일을 하며 아이들을 돌봐왔다.) 재판부는 “남편이 별거 이후 아이들을 키웠지만 근무환경, 양육환경, 수입 등에 비춰볼 때 아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아이들이 “엄마와 살고 싶다”고 한 부분도 양육권 책정에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자녀가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하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아내를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하는 것이 아이들의 성장과 복지를 위해 옳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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