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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고문 검사' 홍경령의 진실

권석천
논설위원
금요일 오후. 교대역 6번 출구를 빠져나와 건물 안에 들어섰다. 8층 변호사 사무실 문을 열자 반팔 와이셔츠 차림의 그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홍경령(48). 조폭 잡는 강력부 검사였던 그를 세상은 ‘고문 검사’로 기억하고 있다. 11년간의 진실에 홍경령이 이의를 제기한 건 『어느 칼잡이 이야기』란 책을 통해서다.



 홍경령과 나는 초면이다. 하지만 나도, 그도 무엇을 얘기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2002년 10월 그는 두 건의 죽음이 한 폭력조직의 범행이란 단서를 잡고 용의자들을 긴급체포해 조사한다. 이때 피의자 한 명이 조사실에서 도주한다. 뒤엉킨 상황 속에 수사관이 다른 피의자를 추궁하며 구타한다.



 “다시 수사를 진행하기 위해 직원들을 깨웠다…갑자기 OOO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순간적으로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빨리 119를 부르세요!’…”(책 중에서)



 근육 내부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사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수사관들이 흥분한 상태였습니다. 일단 수사를 중단시켜야 했습니다.”



 왜 그러지 않았습니까. 내 물음에 홍경령의 안경 속 눈동자가 붉게 흔들렸다. 당황했습니다. 도주 피의자를 잡지 못하면 문책 당한다는 생각에…. 모든 책임은 수사검사인 제게 있습니다. 지금도 유족들께 죄송합니다.



 “너와 검찰은 적이 되고 말았다.” 선배검사의 말대로 그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다. 홍경령은 가혹행위를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했지만 언론도, 국가인권위도, 법원도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징역 3년→2심 징역 1년6월→대법원 확정. 판결문엔 “가혹행위를 묵과, 용인한 채 이에 편승해 그대로 수사를 진행시켰다”고 적혀 있다. 책은 반박한다. “조직폭력배들에게 인권이 있다면 나에게도 인권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겠는가? 흉악범들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면 나에게도 응당 그 원칙이 적용돼야 하지 않겠는가?”



 홍경령에게 다시 물었다. 강압 수사를 한 적이 정말 없습니까. 책임을 인정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백 안 한다고 강요하고 폭행하면 공소 유지가 될 수 있습니까. 제게 잘못이 없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당시의 수사 시스템에서 비롯된 문제들을 모두 개인에게 전가하며 형사책임까지 물어선 안 된다는 겁니다.



 그는 구치소에서 폐소공포증에, 출감 후엔 자살충동에 시달렸다고 했다. 제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내와 아이들 얼굴, 그리고 운명과 인연…그 사건이 4년이나 저를 따라다닌 것도 그렇고, 불의의 교통사고처럼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게 삶이다. 이 고통과 시련을 견뎌나가는 길밖에 없다고….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검찰에 있을 땐 정의냐, 불의냐, 나쁜 사람이냐, 아니냐로만 봤습니다. 그런 이분법으로는 그 무엇도 재단할 수 없다는 것, 저 자신을 포함해 대부분의 인간은 완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존재라는 것을….”



 그의 아내도 책 끝부분에 소회를 남겼다. “이 글이 그이가 과거를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정의는 사람이 내세우는 가치 중 가장 떳떳한 것에 속한다. 그러나 그만큼 무서운 무기이기도 하다. 그이는 그 명분을 집행하기도 했고 또 집행당해 보기도 했다.”



 법원과 검찰을 원망합니까. 마지막 질문이었다. 이 책으로 다 털어버렸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법조인들이, 법을 공부하는 이들이 한번쯤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길….



 건물 밖으로 나왔다. 세 번의 판결로 굳어진 진실과 홍경령의 진실. 과연 진실은 무엇이고, 정의는 무엇일까. 저 행인들은 다른 이의 진실, 지나간 진실에 관심이 있을까. 멀리 언덕 위에서 법원 청사가 거리와 골목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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