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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접점 없는 한·일 대화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한국과 일본 언론인들이 미국 대사관에서 미 외교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격론을 벌이는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지난주 도쿄에서 있었던 일이다. 스토리의 전말은 이렇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와 주한 미대사관이 공동 주관한 주일 미군기지 시찰 프로그램에 10여 명의 한국 중견언론인들이 참가했다. 주일 미대사관 측은 이들에게 미·일 관계 전반에 관한 브리핑을 한 뒤 일본 주요 신문의 외교·안보 전문기자들과 별도의 대화 시간을 마련했다. 성조기가 펄럭이는 미국의 치외법권(治外法權) 구역에서 한국과 일본 기자들이 설전을 벌일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준 셈이다. 방일(訪日) 기자단 단장을 맡은 심규선 동아일보 논설위원실장의 완벽한 통역에 의지해 양국 기자들은 마음에 담은 얘기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한국 기자들의 질문은 주로 일본의 재무장과 우경화 움직임에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최근 일본에서 열린 미·일 외교·국방장관 연석회의인 ‘2+2 회담’에서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보 노력을 공식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면서 불거진 일본의 군사대국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집중적으로 표명됐다.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이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게 되면 자칫 군국주의의 부활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게 한국 기자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동북아 평화는 물론이고 한·일 관계 개선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일본 기자들은 역사 문제와 안보 문제를 혼동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또 일본이 헌법 해석을 바꾸거나 개헌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확보하는 것은 유사시 미국이나 한국을 돕겠다는 취지인데 왜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주일 미군기지의 주요 임무에는 한반도 유사시 한국을 방어하는 역할도 포함돼 있다면서 그 기지를 유지하는 비용을 일본 국민이 부담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기도 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불만을 잘 알지만 일본인들 사이에는 “도대체 몇 번이나 더 사과해야 하느냐”는 ‘사과 피로증’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일본 기자들은 맞받았다. 또 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우경화를 걱정하고 있지만 그것은 몇몇 정치인을 포함한 일부 사람의 문제일 뿐 일본 사회 전체의 흐름과는 거리가 먼 문제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치인들 중 가끔씩 잘못된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일본유신회가 지난 선거에서 궤멸적 참패를 기록한 것처럼 그런 극단적 성향을 가진 정치인들은 일본 유권자들이 표로 심판한다는 반론도 폈다.



 한국 기자들은 도쿄 인근의 요코다(橫田) 공군기지와 요코스카(橫須賀) 해군기지, 오키나와의 후텐마(普天間) 해병대기지 등 일본 내 주요 미군기지를 둘러봤다. 하나같이 유엔사령부 기지를 겸하고 있는 곳들이다. 한반도 유사시 별도의 절차 없이 바로 주한미군의 후방기지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의미다. 가는 곳마다 미군 측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와 아태지역 안보를 위한 주일 미군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한·미·일 3각 협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국 기자들을 초청해 민감한 군사시설까지 공개한 이유도 바로 이것일 것이다.



 한·일 관계가 심각하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 최악이란 얘기도 들린다. 국익 손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태가 장기화하면 한국이나 일본 모두 손해다. 한·미·일 3각 협력도 당연히 어려워진다.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 갈등이 미국으로선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일 언론인 간 대화를 주선한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다. 접점은 없었다. 균형감각을 갖고 냉정해야 할 언론조차 역사 문제에 관한 한 초연하기 힘든 안타까운 현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주일 미대사관 관계자는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우려에 대해 “역사적으로는 이해하지만 일본이 군사적으로 한국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보를 지지하는 것은 일본이 아태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길 바라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했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전제됐다면 미국의 설명을 수용하는 데 무리가 없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어제 국회 답변에서 “미국이 일본의 재무장을 묵인하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태를 너무 안일하게 보고 있는 것 아닌가.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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