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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책·기도로, 40년 한국 사랑한 임인덕 신부 선종

13일(한국시간) 선종한 독일인 임인덕 신부. 평생 문화선교에 힘썼다. [사진 주교회의]
1970∼80년대 출판, 영화 보급 등을 통해 문화선교와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크게 기여한 독일인 임인덕(林仁德·하인리히 제바스티안 로틀러) 신부가 13일 새벽(한국시간) 선종했다. 78세. 자신이 속한 베네딕도 수도회의 독일 뮌스터슈바르차흐 수도원에서다. 고인은 20대 초반이던 56년 이 수도원에서 평생 성직자의 길을 걸을 것을 서원했다. 40년 넘는 한국생활을 거쳐 돌아간 최초의 출발점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았다.



[삶과 추억] 78세로 독일 수도원서 선종
왜관 정착, 분도출판사 설립
『아낌없이 주는 나무』 등 펴내

 고인은 35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났다. 전기 기술자였던 아버지는 나치에 반대하다 고향에서 쫓겨났을 정도로 기개가 넘쳤다. 고인 스스로도 초등학교 수업 시간에 히틀러가 누구냐는 질문에 “전쟁 범죄자”라고 답해 선생님과 부모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한국과의 인연은 북한 강제수용소에 갇혀 지내다 가까스로 귀환한 독일인 신부를 만난 게 계기가 됐다. 65년 왜관 수도원에 정착한 후 자연스럽게 문화선교에 손을 댔다. 고인이 속한 베네딕도 선교회는 문화선교로 유명하다. 특히 수도회 이름 ‘베네딕도’를 한자 음역(音譯)해 이름 붙인 분도(芬道·향기로운 길)출판사를 통해 한국 출판계를 살찌웠다. 고인은 71년부터 20년 넘게 분도출판사 사장을 지냈다. 70∼80년대 운동권 필독서였던 페루 신학자 구티에레스의 『해방신학』 등 400여 권을 출간했다. 이해인 수녀의 시집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미국 아동문학가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등 베스트셀러도 냈다.



 고인은 특히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지난해 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예수님이 지금 세상에 다시 태어나신다면 영화 감독이 됐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예수님 말씀 안에 들어 있는 풍부한 비유가 유능한 영화 감독의 작품과 유사한 데가 있다는 얘기였다.



 이런 생각에 따라 ‘사계절의 사나이’ ‘나사렛 예수’ 등 16㎜ 필름을 한국어로 더빙해 대학가, 전국 본당에 모인 노동자들에게 상영했고, ‘십계’ 등 60여 종의 영화를 번역해 비디오로 보급했다. ‘솔라리스’ ‘산딸기’ 등 러시아·북유럽의 예술 영화도 소개했다.



 70~80년대 고인의 이런 활동은 당시 정권의 미움을 샀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나를 감시하는) 전화 도청을 피하기 위해 독일인 신부끼리 라틴어로 통화했다”고 회고했다. 독일 땅에서 잠들었지만 고인은 영원한 한국인이었다. 그는 지난해 중반 지병 치료차 독일로 돌아간 참이었다. 한국에서 고인을 보좌한 분도출판사 류지영 수사는 “선종하신 날 아침을 드시지 않아 신부님을 돌보던 분이 이유를 묻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을 먹을 것’이라 말씀하셨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병환으로 의식이 또렷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한국을 잊지 않은 것이다.



 왜관수도원은 14일 오전 고인의 장례미사를 열었다. 추모미사는 31일 오전 10시30분에 열린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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