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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기무사 터에 '테이트'를 허하라

박지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영국 런던의 템스강 남쪽 강변을 걷다 보면 아름다운 자작나무 밭 뒤로 초대형 빨간 벽돌 건물이 보인다. 런던에 왔다면 꼭 가봐야 할 곳, 테이트 현대미술관(이하 테이트)이다.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2000년에 새롭게 문을 연 이 미술관은 오늘날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미술관으로 군림하고 있다. 런던에서 6년간 살면서 나는 테이트를 한 달에 한 번은 들렀다. 딱히 미술전시를 보러 간다기보다 그냥 그곳에 가면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전시를 둘러보고 난 후엔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며 하루 반나절을 보내곤 했다.



 사실 십수 년 전만 해도 테이트의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소장품도 빈약했고, 정부 지원금으로 그럭저럭 운영해 나가는 미술관 중 하나였다. 그런 테이트가 오늘날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거듭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혁신적인 전시와 깨알 같은 마케팅 전략 덕분이다.



 테이트에는 ‘터빈 홀’이라는 게 있다. 화력발전소의 대형 터빈 엔진을 걷어내고 그 빈자리를 특별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름도 터빈 홀이다. 면적 3305.8(1000평)에 5층 높이의 이 초대형 전시장이 예술가들에겐 꿈의 공간이다. 상상 속에서 꿈꿔 왔던 작품을 실제로 구현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허를 찌르는 전시를 선보여 왔다. 놀이동산의 대형 미끄럼틀이 들어서고, 바닥 전체에 해바라기 씨를 깔아놓고, 인공 해를 띄워 관람객들이 일광욕을 즐기게 했다.



 이 중 가장 혁신적인 전시는 뭐니 뭐니 해도 2007년 10월 열린 도리스 살세도의 ‘관습(Shibboleth)’전이다. 콜롬비아 출신의 무명 작가가 터빈 홀의 바닥을 드릴로 뚫어 버리는 작업이었다. 실제로 가보니 정말 가관이었다. 전시장 입구부터 생긴 균열은 점점 커져 167m 길이의 끝 부분에선 폭 1m가 넘는 틈이 생겼다. 사람들은 미술관 바닥에 뚫린 이 정체불명의 균열 작품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전시가 끝난 다음해 4월, 테이트는 바닥에 생긴 틈을 시멘트로 다시 메웠다. 지금도 터빈 홀에 가면 그때의 ‘상처’가 바닥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생각해보라. 어느 미술관이 무명 작가에게, 그것도 미술관 바닥에 대형 구멍을 낼 수 있게 허락하겠는가? 단연 테이트 미술관밖에 없다. 테이트는 이런 열린 사고와 기존의 관행을 뛰어넘는 전시기획으로 세계의 눈을 사로잡았다.



 테이트의 상설전시관은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획전시의 경우 2만원 안팎의 비싼 입장료를 내야 한다. 테이트는 60파운드(약 10만원)를 내면 1년간 무제한으로 기획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테이트 멤버스’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원권 제도로 지난해 벌어들인 수익이 무려 500만 파운드(약 86억원)다. 미술관은 이 중 150만 파운드(약 26억원)를 소장 작품을 구입하는 데 썼다. 가히 회원들의 힘으로 미술관이 그 힘을 단단히 키우고 있는 셈이다. 전시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서점 등 부대 시설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도 엄청나다. 사람들은 전시만 보러 미술관을 찾는 게 아니다. 테이트는 이 점을 간파하고 각종 허를 찌르는 마케팅 전략으로 돈을 쓸어모으고 있다. 이 돈으로 다시 좋은 전시를 선보인다.



 며칠 전 옛 기무사 터에 새로 지어진 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지나갔다. 도로 앞에 뻥 뚫린 앞마당은 풀 한 포기 없이 황량했다. 너무 위압적이고 도도해 보였다. 외관은 둘째 치고 향후 그 안에서 우리가 보게 될 미술 전시가 어떨지 궁금했다. 슬픈 이야기지만, 이름은 ‘국립현대미술관’인데도 세계적인 현대미술품은 소장품 목록에서 찾기 힘들다. 데이미언 허스트, 마크 로스코, 제프 쿤스 등 현대미술의 한 획을 그은 작가 작품을 보려면 사립 미술관인 리움으로 달려가야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예산이 없다고, 우리 미술계 환경이 척박하다고 투덜대지 말자. 테이트 현대미술관도 무한한 아이디어와 혁신으로 오늘날 이 자리에 섰다.



 꼭 한 달 후인 11월 12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서울 소격동 옛 기무사 터에 문을 연다. 아이 손 잡고 주말에 놀러 가듯 친숙한 미술관,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그럴듯한 미술관 하나 만들어 보자는 절절한 마음으로 몇 자 적어 봤다.



박지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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