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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학계 잡고 있는 좌파들, 교과서를 자기 영역으로 생각 … 자유주의자 진입 막아

진보-보수 진영 사이에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역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1970~80년대 진보 이론가였던 안병직(77 ·국민통합시민운동 공동대표) 서울대 명예교수는 온통 음해 수준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판했다. 서로 물고뜯으니 언뜻 크게 다른 것 같지만 8종의 교과서 모두 민주화운동사 체계로 쓰였다는 점에선 동일하다고 분석했다. 교과서에서 사상의 자유는 종북주의만 아니면 모두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안병직 국민통합시민운동 공동대표가 “현재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 싼 논란은 결국 밥그릇 싸움”이라고 꼬집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람 속으로] 교과서 '좌편향' 비판 안병직 교수
교과서 8종 모두 '운동사 체계'로 쓰여
‘'한민국의 성공' 제대로 설명 못해
교학사만 대한민국 정당·정통성 강조

“현재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은 온통 음해 수준입니다. 정상적인 학술토론이 아니에요.”



 10일 오전 10시 서울 청진동 국민통합시민운동 사무실. 1960년대부터 진보 진영의 주요 이론가로 활약하다 만 50세가 되던 86년 이후 시각을 180도 바꾼 그의 목소리는 두 시간 내내 열정적으로 이어졌다. 국민통합시민운동 공동대표 안병직(77·한국경제사) 서울대 명예교수의 이야기다.



 대학가 운동권이 극성했던 80년대의 대표적 좌파 이론인 ‘식민지 반(半)봉건론(식반론)’을 남한에 확산시킨 출발점이 그였다. 엄밀히 말해 창작이라기보다는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의 농민혁명 이론을 모방한 것이었다. 식반론은 한국이 여전히 식민지 상태며 아직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않은 봉건적 상태로 파악했다. 안 교수가 전향했던 86년은 대학가 운동권의 헤게모니가 ‘NL(민족해방) 주체사상파(주사파)’로 넘어가는 시점과 겹친다. 안 교수에 따르면 마오쩌둥의 농민혁명론, 식반론, 남미의 종속이론, 주사파 등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다. 모두 ‘내재적 발전론’이란 분모를 공유한다.



 안 교수 자신은 식반론에 대한 생각을 바꿨지만 그가 뿌린 씨앗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근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 진영 사이 ‘역사 전쟁’도 그런 연장선에 놓여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보수적 관점에서 진보를 향한 ‘사상 운동’을 전개하는 이유다.



 - 내재적 발전론이란.



 “한국 현대사를 보는 두 개의 관점 가운데 하나다. 내재적 발전론은 한국의 발전동력이 안으로부터 나온다고 본다. 밖에서 들어오는 것은 전부 침략적이다. 대외 침략에 대한 저항적 민족주의가 기조를 이룬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한국 근현대사는 저항운동사가 된다. 일제시대는 독립운동, 해방 이후는 민주화운동이다. 북한에서 자력경제하는 것도 다 그거다. 조선 후기의 자본주의 맹아론과 관련된다. 조선 후기에 자본주의 맹아가 있어서 만약 제국주의 침략이 없었다면 저절로 근대화가 됐을 거라고 보는 시각이다.”



 - 내재적 발전론이 왜 문제인가.



 “조선 후기에 자본주의 맹아가 사실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른다. 일종의 이념이다. 또 일제시대 민족자본을 내재적 발전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일제시대 조선인 자본 중 가장 유명한 게 고무와 메리야스 공업이다. 고무와 메리야스가 조선 후기부터 발전할 수 있겠는가, 밖으로부터 온 거다. 조선 후기부터 발전해 일제시대까지 연결되는 것은 동(구리)광산업의 덕대 제도다. 덕대는 광산에서 하는 하청업이다. 광산업자가 모든 굴을 자기가 다 개발하지 못하니까 일부는 덕대에게 줘서 개발토록 했다. 그리고 도기 산업, 옹기 만드는 정도였다. 내재적 발전론은 마오쩌둥의 ‘중국 혁명과 중국 공산당’(37년)에서부터 나온 가설이다. 이에 기반해 남쪽이든, 북쪽이든 지배적인 사상은 저항적 민족주의다. 한국이 미국 식민지라고 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게 전부 그렇다. 내재적 발전론이 주류 이념이다. 올해 검정 통과된 8종의 한국사 교과서가 전부 다 운동사 체계로 쓴 배경이다.”



 - 한국 현대사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관점은 무엇인가.



 “캐치업(catch- up) 이론이다. 한국 근대를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민족운동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 국가를 만드는 과정이었다는 얘기다. 그런 가설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성공했기 때문이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제3세계 신흥공업국에 나타나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중국도 개혁, 개방을 해 저만큼 발전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먼저 이승만 시대에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했다. 이승만이 독재도 하고 권위주의도 했지만 제도를 그때 만들었고, 반공주의와 53년 한·미 방위조약으로 지켜냈다. 그 다음에 박정희 대통령이 수출 지향 공업화 정책으로 경제발전에 성공했다. 내재적 발전이 아니고 외국에서 새로운 자본, 기술, 산업을 도입해 한국 산업을 발전시켰다.”



 - 87년의 민주화는 어떻게 설명하나.



 “민주화 역량에서 중요한 게 학생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지식인운동이다. 민주화운동의 주체도 서양과 교류하는 캐치업 과정에서 자라났다. 이승만은 재정이 그렇게 어려운데 엄청난 교육 투자를 했다. 고교생, 대학생을 양산해 그들이 4·19혁명의 주체가 됐다. 이승만은 자기가 민주주의한다고 가르쳐놓고, 자기가 민주주의를 하지 않으니까 자기가 육성한 세력에 의해 쫓겨난 거다. 왜 북쪽에는 4·19가 없나. 그런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87년 이후 민주화도 사실상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민주주의가 본래 우리나라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안병직 대표는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음해 대신 정상적인 학술 토론을 하자”고 주장했다.
 - 8종 교과서가 모두 운동사 체계로 씌어 있다고 했는데, 유독 교학사 교과서를 놓고 말이 많은 이유는.



 “그것은 밥그릇 싸움이다. 내 눈으로 보면 교학사 교과서를 포함해 8종이 모두 다 같은 운동사 체계다. 다만 교학사는 대한민국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 점이 다르긴 하다. 그러나 서술 체계는 운동사 체계다. 그럼에도 교학사 한 종에 대해 데모까지 해가면서 눈을 부릅뜨고 하는 것은 국사학을 하는 사람들이 교과서를 자신들 영역이라고 보는 것이다. 국사학계는 전부 좌파가 잡고 있고, 그 좌파의 이념이 저항적 민족주의다. 그런 상황에서 왜 너희들 자유주의자들이 들어오느냐 하면서 들어오지 말라는 밥그릇 싸움이다. 교학사 교과서를 놓고 이론 싸움을 하는 것을 봤는가? 전부 음해고 그렇다. 숫자가 틀렸다거나 맞춤법 오류 같은 것은 다른 교과서에도 많다. 그렇게 틀린 것들은 고치면 되는 것이다.”



 - 8종 교과서가 모두 운동사로 되어 있는 이유는.



 “검정에 통과하려면 집필기준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집필기준의 민주주의 발전 항목을 보면 한국 민주주의가 민주화운동에 의해 발전한 것으로 돼 있다. 집필기준에 이승만 시대의 권위주의, 박정희 시대의 유신, 전두환 시대의 군부독재를 부정적 요인으로 넣어놨다.”



 - 독재가 있었고 그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이 있었지 않나.



 “일례로 이승만 시대의 권위주의가 과연 자유민주주의 운동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었나? 공산주의가 워낙 득세하니까 어떻게 하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느냐, 그 목적으로 만든 것 아닌가? 60여 년 전의 권위주의를 오늘날 입장에선 비판할 측면도 있지만 평가할 측면도 있는 것이다. 또 박정희 시대의 유신체제도 민주주의를 두드려 잡기 위해서만 한 것인가? 그것도 하나의 사실이지만 중화학 공업화를 성공시키기 위해 한 것도 사실이다. 전두환 정권 때 3저 호황으로 한국 경제가 크게 발전하며 무역흑자로 바뀌었다. 물가를 한 자릿수로 잡았다. 한국 경제사에서 아주 중요한 거다. 그런 기술은 교과서의 어느 곳에도 없고 전두환이 5·18 민주화운동 두드려 잡기 위해서만 독재했다고 하는 식이다. 교과서의 종합적 평가가 안 되는 이유는 집필기준이 운동사 체계라서다.”



 - 교과서 집필기준에 보완할 점은.



 “집필기준에 ‘권위주의 정치체제론’이 하나 들어가야 한다. 저개발국이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일 때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실행할 객관적 조건 없이 제도만 받아들였다. 농민, 빈민이 대부분인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어떻게 하겠나. 자유민주주의는 두꺼운 중산층이 성립돼야 한다. 예전엔 단순히 독재라고 했다. 그런데 저개발국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보니까 선진적인 정치, 경제체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독재를 했다. 단순히 권력욕, 장기 집권만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개발독재란 말이 그것이다. 그게 이론적으로 발전해 권위주의 정치체제론이 된 거다. 권위주의 정치체제론은 캐치업 이론의 일부다. 민주화운동만 갖고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 안 교수는 진보 진영의 주요 이론가였으니까 진보적 역사인식을 이해해줄 법도 한데….



 “나도 한때는 좌익이었다. 한국 사회에 맞는 이론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르크스와 레닌과 마오쩌둥 이론을 공부했다. 마오쩌둥 이론이 한국 사회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더라. 식반론은 그렇게 나왔다.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한 이론이다. 내가 접한 것은 북쪽에서 수용한 마오쩌둥 이론이었다. 당시 북쪽의 사회과학이란 잡지를 다 복사해 볼 수 있었다. 나는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한용운과 신채호를 연구해 30대 초반에 이미 학계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얻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식반론을 이야기하니까 선배들도 내가 독자적인 이론을 개발했다며 감히 못 달려들었다. 그러다 보니 피가 나도록 박정희 정권과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왜 생각을 바꿨나.



 “내가 주장한 식반론에 의하면 70년대 말 한국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붕괴해야 한다. 그런데 80년대 초 전두환 정권 등장 후 한국 자본주의가 계속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을 전부 노동운동에 밀어넣었는데 내 이론이 틀렸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85년 도쿄대에 1년간 전임교수로 갔다. 도쿄에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스트레스로 윗니 2개가 빠졌다. 그때 북쪽에서 온 사람들을 만났다.”



 - 북한 사람을 만나면 감옥에 갈 때가 아닌가.



 "내가 감옥에 가는 게 문제가 아니고, 민족 운명이 문제니까. 조총련이니 뭐니 다 다가왔다. 칙사 대접이었다. 만나 보니까 완전히 저승사자를 대하는 것 같았다. 인간의 유형이 너무나 음험했다. 독재국가에서 자란 내가 제일 후진 인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나보다 훨씬 후졌다. 소련, 중국, 동독 등 공산권에서 온 유학생들이 당시 도쿄에 바글바글했다. 그들이 나보다 훨씬 선진적인 사회에서 사는 줄 알았는데 만나 보니 완전 후진국이었다. 마침 85년에 이미 사회주의 세기가 끝나고 지금부터 자본주의 세기가 전개된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연구자들이 있었다. 교토(京都)대 경제학과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나카무라 사토루(中村哲) 교수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세계사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이 엄청나게 동태적인 사회이며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후 내 제자들부터 사상 전향을 시켰다. 노동운동을 했던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대표적이다. 처음엔 말로 하다 잘 안 돼서 사상투쟁을 전개했다. 80년대 후반을 그렇게 보냈다. 내가 죄를 많이 지었다. 제자들을 사지에 몰아넣었는데 나 몰라라 하고 팽개칠 수 없었다.”



 - 식반론은 이제 다 폐기됐나.



 “세계적으로 폐기됐다. 중국도 폐기해서 개혁·개방에 나선 것이다. 개혁·개방은 캐치업의 전형이다. 국내 시장경제 체제를 만들고 대외 자유무역을 하고 그래서 선진국에서 수백 년간 축적한 제도와 기술을 계속 받아들인다. 그것을 안 받아들인 게 쿠바와 북한, 일부 아랍 국가다. 북한은 아직도 남한을 미국의 신식민지라고 한다.”



 - 식민지 근대화론을 교학사 교과서가 수용한다는 비판이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진보 진영이 보수 진영에 뒤집어씌운 거다. 식민지 시대에도 근대적 변화가 있었다. 1905년 재정, 화폐개혁, 1910년대 토지조사 사업을 통해 근대적 화폐, 은행, 소유 제도를 도입한 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유효하게 식민지를 착취할 수 없다. 조선 후기의 재정은 마이너스, 저축률도 마이너스였다. 착취할 것도 없다. 착취하려면 개발을 해야 한다. 철도, 항만, 도시도 건설하고, 자금 투자도 하고. 안 그러면 일본에서 보충금이라고 해서 재정보조를 해야 한다. 예컨대 아프리카에 가서 뭐를 착취할 거냐. 땅을 차지한다든지 그 정도지, 아무 생산도 없는데 뭐를 착취할 거냐. 착취하려면 개혁도 하고 투자도 해야 한다. 그 다음에 식민지민의 자기계발도 있다. 식민지민도 근대적으로 살아남으려면 근대적 교육도 받고 근대적 경영도 해야 한다. 일제시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근대적 학교도 만들고 산업도 일으키고 한 것을 무엇으로 설명하나. 식민지 시대라도 식민지적 개발과 식민지민의 자기계발이 다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설명한다고 해서 공격해 오는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 교과서에서 사상의 자유는 어느 정도까지 용인될 수 있는가.



 “종북주의만 아니면 모두 보장돼야 한다. 그것은 자유주의의 본질이다. 자유가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되 내 자유가 지고의 가치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자유주의다. 다만 종북은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니까. 인류사 차원이 아니고 국민사회 차원에서 그렇다.”



글=배영대·주정완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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