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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위기의 평양 신데렐라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차장
김정일은 벤츠 승용차의 클랙슨을 연신 눌러댔다. 그러고는 차에서 내려 4층 건물 창가에 선 한 여인에게 외쳤다. “혜림이가 방금 아들을 낳았어.” 첫 여자인 성혜림과의 사이에 아들 정남을 낳은 1971년 5월 10일의 장면이다. 득남의 기쁨에 29세의 김정일(당시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은 처형인 성혜랑을 찾아가 치기 어린 행동을 한 것이다. 혜랑씨는 1996년 서방 망명 이후 펴낸 자전적 글 『등나무집』에서 당시 상황을 전하며 “김정일에게 친구 형수인 혜림의 인상은 모성의 향수 같은 것을 불러일으켰을지 모른다”고 술회했다.



 유명 배우 출신 유부녀 성혜림을 강제 이혼시켜 함께 살 정도로 불같던 김정일의 사랑도 곧 식어버렸다. 북송 재일교포 출신의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고영희가 대신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성혜림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모스크바에서 홀로 숨졌다. 고영희는 유선암 등으로 치료받다 파리의 병원에서 숨졌다. 정혼한 것으로 알려진 김영숙은 존재 자체가 베일 속이다. 김정일의 말년을 함께한 건 40대의 ‘기술서기(비서)’ 출신 김옥이었지만 이젠 행방이 묘연할 정도다. 물론 이런 김정일의 여성 편력은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수령독재의 폐쇄체제에서 금기였기 때문이다.



 그런 벽을 깬 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다. 지난해 7월 관영매체를 통해 ‘부인 이설주 동지’를 공식화하며 화려하게 최고지도자의 여인을 데뷔시켰다. 은하수관현악단 가수 출신 이설주의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은 물론 가방·시계 등 소품까지도 관심거리가 됐다. 올 초 둘째 딸의 출산도 화제가 됐다. 아버지가 조종사 출신인 평범한 집안의 딸 이설주는 한마디로 평양판 신데렐라였다.



 그녀가 요즘 추문설에 휩싸였다. 자신이 몸담았던 악단 단원들이 문란한 성관계를 갖고 포르노 비디오까지 찍었다고 한다. 조사를 받던 중 ‘이설주도 우리처럼 놀았다’는 증언이 나오자 당국이 입막음하려 10여 명을 처형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며칠 전 국회 정보위에 이설주 관련설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은하수악단의 추문은 사실로 파악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급속한 소문 확산에 곤혹해하던 북한도 대응에 나선 듯하다. 추문설 직후 모습을 감췄던 이설주를 그제 김정은의 공개 행사에 동행시켰고, 은하수악단의 노래도 다시 북한 관영매체에 틀었다. 하지만 이젠 사실 여부보다 추문이 당 간부와 주민들의 입소문을 탔다는 게 중요해 보인다. 군부 장악과 경제난 해결에 골몰하던 김정은에게 뜻밖의 복병이 닥친 것이다. 과거와 달리 북한 내 정보유통 속도가 빨라진 데다 ‘부인 이설주’라고 안팎에 공식화한 것도 부담 요소다.



 평양 로열 패밀리로 간택된 여인들은 절대권력자의 사랑을 뒷심으로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다. 하지만 그 유효기간은 ‘사랑이 식을 때까지’로 제한됐다. 버림받은 뒤엔 숙청과 은둔이 기다렸고, 비운의 여인이 됐다. 29세 청년 지도자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가 위태로워 보인다.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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