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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복지와 식권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어르신들께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언할 때 약간 불안하기는 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통합운영을 명시한 새누리당 공약은 글쎄였다. 노인 빈곤율이 높은 한국에서 기초연금은 꼭 필요한 복지 초석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노령연금은 어쩌고? 국민연금은 적금 같은 건데 미가입자에게도 기초연금을 줄까? 뭐 이런 의문이 들었으나 워낙 양당의 복지공세가 거세 잘 되려니 했다. 장고 끝에 악수(惡手)를 둔다고 했던가? 여덟 달 만에 내놓은 해답은 섞어찌개였다. 20만원을 다 못 받는 층을 둬서가 아니다. 정부가 제출한 지각 답안은 ‘기초연금’ 개념과도 부합하지 않고 국민연금을 온통 그슬릴 휘발성 강한 인화물질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30% 부자 노인은 제외, 나머지 70%에게 20만원을 지급하되 국민연금 장기 가입자는 지급액을 낮춘다’. 이 정도라면 대강 봐달라는 게 정부의 논리다. 연동층도 10%에 불과하니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건 ‘기초연금’의 평등원리를 위반한다. 이럴 바에야 기왕의 노령연금을 그냥 두고 하층부터 20만원을 지급하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하층 70%는 매달 9만원 상당의 노령연금을 지급받고 있었다. ‘20만원 약속’ 때문에 노령연금을 폐기하고 다른 기준을 세운 것이 옳은가? 한 십오 년이 지나면 물가와 연동된 노령연금이 20만원을 초과하는데 이를 미리 고려한 것인가? 그도 그렇지만, 국민연금 운영원리를 훼손했다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주요 국가의 설계도는 대체로 두 가지다. 국민연금이 기초연금인 단층 유형(일본), 기초연금 위에 소득연계 연금이 설계된 2층 유형(스웨덴). 일본은 모든 국민이 ‘정액’ 보험료를 납부하고 ‘정액’ 기초연금을 받는다. 스웨덴은 ‘정율’ 보험료를 납부하고 소득비례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지급받는다. 어쨌든 ‘기초연금’이 엄연히 존재한다. 한국은 기초연금이 없다. 국민연금에 기초연금 요소를 용해시켜 합친 유형이다. 연금 가입자는 보험료를 내면서 암묵적으로 기초연금을 동시에 불입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난데없이 기초연금 부분을 설정했고 또 장기 납부자에겐 적게 돌아간다고 통보한 것이다. 단기 납부자, 미가입자는 20만원 전액을 지급받는데 힘들게 돈을 부어 무엇하랴? 이런 회의가 당연히 든다. 형평성을 깬 것도 문제려니와, ‘기여형’인 국민연금과 ‘수당형’인 기초연금을 접합해 혼돈이 일어났다. 건축에 비유하면, 잘 지어진 집(국민연금)을 갑자기 들어올려 울퉁불퉁한 기소(기초연금)를 삽입한 격이다. 집이 피사의 사탑처럼 기우는 것은 물론이고, 불안해서 뛰어내릴 입주자가 속출할 것이다. 벌써 임의가입자 2만 명이 탈퇴했다.



 민주당이 공격하는 ‘약속 위반’ 논란보다 더 위급한 것은 국민연금에 대한 암묵적 합의정신이 손상되었다는 사실이다. 저수 둑에 뚫린 작은 구멍, 대수롭지 않은 이 구멍이 댐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국민연금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는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퇴임사가 아쉬운 대목이다. 연금은 그대로 두고 ‘소득연계’를 주장한 복지부 원안과 현재 정부안 사이에 소요 재정이 별 차이가 없음에도 진 전 장관이 항명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초연금보다 몇 배 중요한 것이 국민연금이다. 그걸 알고도 연계방안이 낫다고 조언한 정책 설계자는 누구인가? 국민연금 훼손 문제는 제쳐두고 손익계산으로 국민 관심을 몰아간 복지수석은 정치를 한 것인가, 아니면 임시 봉합을 한 건가. 정책 정합성을 따져야 할 기획재정부는 최저낙찰제에 정신이 팔렸나?



 4대 복지 공약 중 첫째 작품이 이렇게 시끄럽다면 중증 질환 공약은 건강보험의 중추신경을 건드릴 것이다. 무상보육은 벌써 지자체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소란이 불신으로 번지지 않게 하려면 패키지 딜이 필요하다. 복지공약 종합 로드맵을 작성해 내놓는 것. 약속에 너무 매이지 말고 ‘복지국가 한국’의 정책원리, 조감도, 단계별 시방서를 함께 제시하는 일이다. 이즘 냉철하게 반문해야 할 것이 있다. 대통령 공약사항이라 해서 꼭 말한 대로 가야 하나? 수정은 배신인가? 엄격히 말하면 대선 공약은 후보가 동원한 캠프 브레인들, 공조직이 아니라 사적 기획단의 초기 작품이다. 이들이 인수위를 거쳐 집권세력으로 등극했다고 해서 구상안이 저절로 완벽성과 현실 적합성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수정·유보될 것은 물론, 심지어 폐기돼야 할 것도 있을 수 있다. 4대 강 사업은 기초연금보다 시급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여타의 복지는 표심을 사는 정치화폐가 아니라 고용안정과 창출, 나아가 ‘완전고용’을 위한 국민저축의 투입이다. 우선순위와 원칙은 무엇인가? 그것이 아직 불분명한 한국의 복지는 대선주자들이 유권자 입맛에 맞춰 남발하는 식권(食券)이 되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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