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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무척 좋아했지만 한순간도 존경하지는 않았다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교수
언론학
“안인숙 예쁜 젖꼭지 본 사람, 손들어 봐.” 까까머리 십대시절 국어 시간, 선생님이 느닷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순간 교실 안은 와 웃음이 터졌다. 잠시 후 선생님은 “아니 ‘별들의 고향’ 정도는 형님 옷이라도 빌려 입고 봐야지” 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랬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보러 갔다가 학생주임 선생에게 귓바퀴 잡힌 채 끌려 나오던 그 시절, 선생님의 충격적인 말씀에 나는 당시 여주인공 안인숙의 중요 부위는 보질 못했지만 어쨌던 그 영화가 대단한 영화라는 것은 확실하게 알았다. 그러나 정작 영화는 극장에선 보지 못하고 스무 살이 넘어 어찌어찌해서 비디오로 본 기억만 남아 있다.



 이십대, 내가 가장 떨리는 가슴으로 읽은 소설은 ‘겨울 나그네’였다. 1984년 어느 일간지에 연재된 소설은 당시 대학에 다니던 나와 주인공들의 세대가 맞물리면서 묘한 동질감을 안겨 주었다. 우울했던 80년대 중반 늦은 밤, 하숙집 길목 가판에 있던 신문을 사들고 읽노라면 나의 고통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 흠뻑 빠져들었다. 살벌했던 시대, 휘둘린 청춘 남녀의 이루지 못할 사랑을 그린 소설은 보도 블록을 깨어 던지거나, 겁에 질린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그 시대들과는 정말 무관한 얘기들. 하지만 사회면을 장식했던 핏빛 활자들을 보란 듯이 무시한 소설은 나를 현실과 전혀 다른 달콤한 세계로 밀어 넣었다. ‘오직 한 가닥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으로/ 남몰래 고민하던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함’도 소설을 읽는 순간만큼은 없었다. 초창기 그가 보여준 번득이는 감수성, 세련된 문체 등은 평범한 독자인 내가 보기에도 적합한 관형어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386세대의 삶의 일부가 되었고 기쁜 우리 젊은 날을 사로잡았던 작가였다.



 그의 소설 ‘겨울 나그네’가 대중들에게 유명해진 데에는 연재 2년 뒤 제작된 동명의 영화가 한몫했다. 아직은 젊었던 안성기가 복학생으로, 강석우와 이미숙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자학하던 당시 청춘들은 영화에 열광했으며 불온했던 시국상황을 잊고 잠시나마 감미로운 사랑을 꿈꾸었다. 영화 속에서 첼로를 들고 가던 이미숙이 강석우와 부딪혔던 연세대 교정의 돌집은 그 시절 청춘들이 한번쯤 찾았던 명소로 각광받았다. 그날 이후 나는 그의 소설은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대부분 구입해서 읽었다.



 그러나 격동의 80년대를 지나오면서, 그리고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고민하게 된 이후에는 그의 문학에 깊은 절망을 느끼며 나의 열정은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아프다고, 견딜 수 없다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가끔은 우리와 같은 시대,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문학은 사회의 가장 예민한 살갗이어서 가장 먼저 상처 입고 가장 빨리 아파한다고 한다. 험악했던 시대, 현실의 모순을 문학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점도 이해가 가지만 시대의 아픔을 찾아보기 어려운 그의 글들이 몹시 서운했다. 그의 글을 열정적으로 읽으면서도 나는 점차 불편해져 갔다.



 정작 그가 떠난 이 순간에도 그가 취해온 작가적 이력을 긍정적으로 보기엔 나의 맘이 내키지 않는다. 모든 언론들이 저마다 그와의 ‘귀한 인연’을 들이대며 상찬을 늘어놓고 있다. ‘한국문학의 큰 별’이니, ‘거목’이니, ‘감수성의 천재’이니 하면서 이른바 저명인사들이 앞다투어 쏟아내는 그에 대한 엄청난 찬양 속에 냉정한 비판의 소리는 스스로 잦아들게 된다. 어려웠던 시대, 함께 살아내지 못한 시대의 인물을 무작정 비난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죽음 앞에 일방적인 찬사를 쏟아내는 것은 부박하다. 한 시대를 같이 고민하고 풍미했다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이제 그는 떠났다. 그는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다. 누구라도 그러했듯이 나 또한 그를 무척 좋아했지만 그러나 한순간도 그를 존경하지는 않았다. 최인호다. 그가 떠난 자리에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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