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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83)|창군전후(2)|이경석

내가 일본육사 제45기생으로 졸업한 것은 1933년.
신의주 고등보통학교 4학년 때 미국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를 영화에서 본 것이 육사를 지망한 동기였다. 당시에는 교육 총감부라는데서 사관학교 시험을 관장하고 있었는데 나는 영화에서 사관생도들의 생활에 매력을 느낀 나머지 『조선 청년인데 사관학교에 응시하면 들어갈 수 있느냐』는 편지를 띄웠다. 얼마 후 회신이 왔는데 『조선 청년이라도 응시할 수 있다』는 답변이었다.
나는 평양주재 제77연대에 가서 응시, 다행히 합격하긴 했으나 뒤에 생각하니 한국인도 사관생도로 쓸만한가를 테스트하기 위해 나를 뽑아준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내가 사관학교를 졸업하는 해에 가서야 한국인 학생 2명(채병덕·이종찬)을 입학시켰기 때문이다.
내가 사관학교에 입학했을 때 동기생에 이 왕가의 이우 공과 일본 황족인 아사까노미아, 다까히꼬, 왕이 있었다. 이우 공은 나와 같은 중대로 예과 2년간을 같이 보냈으나 공은 황족사에서 기거했다.
공은 풍모가 단아하며 준수하여 귀공자의 전형적 타입이었다. 두뇌 또한 영명할 뿐 아니라 마술·검도·수영 등에도 능했다. 검도는 예과 1학년 때 벌써 3단이었는데 이는 공이 육군유년학교 3년 과정에서 익힌 실력이었다.
이우 공은 졸업할 때까지 나에게는 단 한번도 일본말을 쓴 일이 없다. 나도 자연히 우리말로만 응대했는데 둘이서 좀 길게 이야기 할 때면 일본인 생도들이 신기한 양 바라보곤 했었다. 공은 평민적이어서 사관학교에서의 우대도 못 마땅히 여겼거니와 일본 황실의 집요한 권고를 물리치고 동족규수를 아내로 맞았으니 그이가 곧 박영효의 손녀 되는 찬주 여사(서울 거주)이다. 공이 1945년8월6일 광도에서 승마로 출근하는 도증 원폭의 세례를 받고 운명한 것은 비통한 일이다. 공을 따라 부 무관이었던 요시나리·히로시 중좌가 권총으로 자결한 것은 원폭에 얽힌 또 하나의 비화가 되어왔다.
이우 공에 앞서 영친왕 이은과 엄 비의 동생 엄주명(예비역 준장·현 진명여고 이사장)이 29기로, 공의 형 이건 공이(현재 일본거주)심기로 각각육사를 졸업했다.
이 무렵 한국인 육사 출신들은 「계림회」란 이름으로 종종 모임을 가졌다.
동경사관학교근처에 회관까지 마련하고 일요일이면 이곳에 모여 흉금을 털어놓곤 했는데 이 회관의 운영비는 주로 영친왕이 부담했다.
우리가 사관학교에 다닐 때에는 「일요하숙」이라는 것이 각 현에 있었다. 산구 현에는 「동상회」광도 현에는 「초수회」등으로 43개 현마다 이름을 붙여 그 지역 출신끼리의 친목을 도모했다.
당시에는 사관생도가 시중에서 함부로 음식을 사먹는다든지 영화관에 가는 것을 금했으므로 사관생도들은 외출하면 으례 「일요하숙」에 몰린다. 우리 사관생도에게는 술 마시는 것이 허락되지 않으나 일본사관학교에서는 이를 허용했다.
사관생도의 음주를 막지 않은 것은 장교의 기백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장교는 음주가무를 해서 호탕한 성격도 있어야 부하를 통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일요일에 외출하면 주로 「일요하숙」에 가서 요리를 시켜 놓고 선후배들과 술을 마셨다. 사관생도들에게 지급되는 급료가 있기는 했으나 이같이 요릿상을 차려놓고 마실 형편은 못 되었다. 이런데 영친왕이 「일요하숙」에서 드는 비용을 항상 부담하여 한국생도들은 부담 없이 일요일을 즐길 수가 있었으니 영친왕의 인자하고 후배를 사랑하던 그 성품을 다 헤아릴 길이 없다.
우리가 사관학교를 나온 후 한국생도는 한기에 한두 명 정도였다.
이종찬(예비역 중장·8대 국방장관), 고 채병덕(2, 4대 육군참모 총장)이 49기이고 50기에 고 이용문(예비역소장·전사), 52기에 고 박범집(예비역공군소장·전사)이 있었으며 신응균(예비역중장·국방과학연구소장)은 53기, 김정렬(초대, 3대 공군총장·국회의원)은 54기, 정일권(5, 8대 육군참모총장·전 국무총리), 유재흥(예비역중장·청와대 안보담당 특별보좌관) 등은 55기이다.
이밖에 이형근(예비역대장·행정개혁조사위원장), 이한림(예비역중장·건설부장관), 정내혁(예비역중장·국방부장관), 신상철(예비역공군소장·체신부장관), 박원석(8대 공군참모총장·석유공사사장) 등 20여명이 육사를 나왔다.
창군의 주역 중에는 만주군관학교 출신과 중국 군 출신도 적지 않다.
양국진(예비역중장·종합식품사장), 신학진(예비역소장·오양건업희징) 등은 만주군관학교출신이며 김홍일(예비역중장·국회의원), 최덕신(예비역중장·천도교 교두)과 고 최용덕(2대 공군총장) 등은 중국 군 출신이다.
최용덕 장군은 중국비행학교출신으로 9천여 시간의 비행시간을 기록하여 전 중국 군에서 3위의 비행시간을 보유했으며 한때 장개석 장군의 전용기 조종사로 이름나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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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