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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로 수놓은 백룡과 청룡 마치 용솟음치듯

1 독수리 작품 앞에 선 길정본 작가 2 민속진열장
백룡과 청룡이 비늘을 반짝이며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고, 현무(玄武)와 물고기가 헤엄치는 바다에는 무궁화가 피어난다. 백룡과 청룡은 각각 일본과 한국을 상징하고, 무궁화 핀 바다는 오염된 해수를 한반도의 사신인 현무가 정화시킨다는 의미를 담았다. 터럭이 한 올 한 올 살아있는 황금돼지와 기러기·황소·독수리 등의 동물상도 곳곳에서 생명의 기운을 뿜어낸다. 모두 자개를 한 땀 한 땀 공들여 수놓은 나전칠기 작품들이다.

원로 나전공예 작가 길정본 작품전

‘길정본 나전공예작품전’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2층에서 지난달 25일 개막했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칭송받는 나전공예의 거장 길정본(77)씨의 크고 작은 작품 80여 점이 전시돼 있다. 그의 작품은 빛깔과 형태, 섬세함과 완성도에서 기존의 나전공예에 대한 편견과 틀을 단숨에 깨어 부순다.

일단 무척 화려하다. 가구의 전면만 장식하는 게 아니라 옆면, 심지어 다리까지 자개를 입혔다. 보통은 벽면에 가려 보이지 않을 부분이라 신경 쓰지 않는 장롱의 옆면에도 학과 나비를 수놓아 수묵화를 걸어놓은 듯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탈리아 콘솔 등 유럽식 가구에도 나전을 장식한다. 전통의 현대화다. 서양 가구의 틀에 『흥부전』『춘향전』 등의 이야기가 담긴 민속장은 동서양의 문화적 융합을 보여준다.

한때 집집마다 자개 장롱을 들일 만큼 나전공예는 크게 유행했다. 하지만 업자들이 앞다퉈 값싼 나무에 싸구려 칠을 해 공멸을 초래했다. 1970년대 전국 1만7000여 개에 달하던 나전 공장이 이젠 몇 남지 않고 쓰러졌다. 일반인에겐 장식이 쉽게 떨어져나가는 조악한 기념품 정도의 위상만 남겨놓은 게 나전칠기의 오늘이다.

3 이태리형 콘솔 4 기린 작품
5 오리 작품
길씨는 자신의 작품에 ‘나전칠기’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100% 옻칠로는 자개가 붙어있질 않기 때문이다. 나무도 한국산만 쓰는 게 아니다. 말레이시아·태국 등 전 세계를 돌며 멋진 나무 조각을 사온다. 그걸 물에 한참 담그고 말려도 뒤틀리지 않으면 비로소 작품의 뼈대로 삼는다. 옛날 일본식 가옥을 헐면서 나온 목재들 중 좋은 걸 골라 재료로 삼기도 했다.

자개도 수입품을 쓴다. 옛날엔 바다가 깨끗해 제주 자개가 두껍고 색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바다가 오염돼 조개도 좀이 슬고 색이 누렇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도산을 비롯해 미얀마·뉴질랜드·필리핀 등의 깨끗한 바다에서 구해 오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길정본의 작품은 견고하고 오래간다. 민속장의 경우 40년 전에 완성했지만 여전히 뒤틀리거나 들뜨지 않아 갓 뽑아낸 작품 같다.

“40년 전에 만들어 내가 쓰던 걸 전시했어. 그렇게 써도 끄떡없다는 걸 보여주려는 거지. 나무를 깎고 칠하고 바르기를 몇 번 해서 단단하게 만든 뒤 3~10년 지나 하자가 없을 때 옻칠을 하고 자개를 붙이거든.”

그는 충남 금산에서 인삼 농사를 짓는 부농의 딸로 태어나 판사 부인이 됐다. 스물여덟에 취미로 시작한 나전공예가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어 『흥부전』『심청전』 등 옛 이야기를 직접 도안해 제작한 민속장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사업은 승승장구해 전성기엔 기술자가 240명에 달했다.

하지만 크게 사기를 당해 한순간 부도가 났고, 나락으로 떨어지려던 1987년 일본에서 전시 초청을 받은 게 새로운 발판이 됐다. 일본인의 취향에 맞춰 이탈리아 가구 혹은 일본식 공예품에 자개를 입히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현지화 전략을 택했지만 결국은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일이었다. 그는 공식 행사에선 늘 한복을 입는다. 또 작품을 통해 알게 된 일본의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 손수 담근 김치를 선물해온 김치 외교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200번 넘게 전시를 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일본 닛코 동조궁(2011년)에 외국 작가론 처음 초대됐다. 일본인 개인소장가가 그의 작품만 모아 지난 8월 도치기(栃木)현에 ‘대한민국 나전공예 특별 전시장’도 열었다.

일본 순회전시가 잦은 데다 대전에 근거를 둔 노작가라 이번이 마지막 서울 전시가 될 가능성도 크다. 오늘(6일)이 전시 마지막 날이다. 무료. 문의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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