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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도 부산에선 ‘단디 해라’ 알아들어야”

하나프레스
“하이튼 고집만 엉캉 씨 갖고. 이 사람 학교 다일 때도 한 고집 했지예? 우리 어무이 말이 알라 때부터 고집이 씨 갖고 고집디이라캤담니더.”

부산 사투리로 배우는 한국어 교재 펴낸 배정렬 대표

한국어 교재에 첨부된 오디오 CD에선 표준말 대신 이처럼 억양이 강한 경상도 사투리가 흘러나온다. 교재에 실린 내용도 모조리 사투리다. 단어학습 부분에선 ‘가시나’ ‘쎄빠지다’ ‘퍼뜩’ 같은 단어가, 일상 표현을 배우는 부분에선 ‘지기네!’ ‘그라지 마이소’ ‘단디 해라!’ 같은 말이 나온다.

이 책은 지난 7월 일본에서 출판된 한국어 교재 『말해보자! 부산말(話してみよう, 釜山語)』이다. 외국어는 표준어로 배운다는 통념을 깨버리는 어학 교재다. 경상도 사투리를 가르치지만 내용은 보통의 것과 다를 바 없다. 문법과 단어를 가르치고, 일상 대화를 담은 CD를 통해 현지 발음과 억양을 들려준다. 표준말을 중급 이상 구사하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이 책은 부산말-표준말-일본말을 오가면서 경상도 사투리의 세계를 일본인에게 소개한다. ‘씨부리다’란 단어를 알려주면서 표준어 ‘지껄이다’와 일본어 ‘しゃべりちらす’로 번역·설명하는 식이다.

일본 아마존과 블로그엔 교재에 대한 리뷰가 올라와 있다. ‘부산에는 많은 친구가 있고 부산말과는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다. 하지만 상대의 말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부산 남자친구가 있는 분들은 꼭 보세요’처럼 반가워하는 평이 있는가 하면 ‘한국어를 배운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은 한국어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처럼 색다른 언어에 관심을 나타내는 것도 있다.

기발하고도 특별한 한국어 교재를 만든 이는 재일교포 출판인, 하나프레스의 배정렬(48ㆍ사진) 대표다. 재일교포 3세인 그가 한국어 관련 책을 만들어 온 지는 10년이 넘었다. 그중엔 한때 발행부수 5만을 넘기며 인기를 끈 한국어 학습잡지 『한국어 저널』도 있다. 초대 편집장을 지내면서 한류 붐에 따른 한국어 열기를 달궜던 그가 독립해 차린 출판사 하나프레스도 어학 전문 출판사다. 한국어 책을 주로 출판한다.

『말해보자! 부산말』의 내용 일부.
-부산말 교재를 만든 계기가 있나.
“아버지 고향이 경상도다. 2002년 처음 경상북도 성주에 있는 산소에 갔다. 대구에 계신 고모님과 친척들도 만났는데 말씀의 절반밖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서울에선 없던 일이다. 고향 사람과 의사소통을 못 한다는 데서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 고향이 경상도면 어려서부터 사투리를 접했을 텐데.
“집에서는 일본어를 쓰고 한국말은 학교에서 배웠다. 내 말에 사투리가 섞여 있는 건 나중에 한국에서 온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알게 됐다. 할매·할배 같은 거다. 표준어인 줄 알고 썼던 말이다. 어릴 때 할아버지·할머니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 영향을 받았나 보다. 그제야 내가 쓰는 말의 존재감을 인식했다. 그러다 마침 2003년 『한국어 저널』에서 영화 ‘친구’를 소재로 부산말 특집을 하면서 책으로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일본인 중에 지역 방언인 부산말에 관심 갖는 사람이 있나.
“일본엔 부산은 물론 경상도와 인연을 가진 사람이 많다. 특히 서부는 배 타고 수시로 오갈 만큼 가깝다. 후쿠오카 사람들은 부산에서 송년회를 하기도 한다. 교류가 많으니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생긴다. 또 일본인 중엔 언어를 매니악하게 배우는 사람들이 있다. (표준어를) 배워도 원어민처럼 못 하니까 아예 특별하게 사투리를 배운다.”

-부산말은 일본말과 비슷하게 들린다고도 한다. 유사성이 있나.
“나도 그렇게 느낀다. 부산 전철 안에서 일본말을 하는 것 같은 사람이 있어서 주의 깊게 들어봤더니 부산말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말을 표준어로 배우면 부산말을 하는 것 같다고 한다. 억양이 비슷하다. 보통 서울말은 낮게 시작해서 끝이 높아지는데 부산말은 끝이 낮아지는 경우가 많다.”

교재는 부산말의 억양·음운현상·문법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주로 규칙에 대한 것이다. ‘ㅆ’이 ‘ㅅ’으로 약하게 발음되는 것, ‘ㅓ’와 ‘ㅡ’ 발음 구분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것, ‘잘 모르겠어예’처럼 종결 어미가 변하는 것, ‘춥다-춥고-추부면-추버서’처럼 음운현상이 달라지는 것 등이 예시로 실려 있다. 원어민이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를 못 느꼈던 언어의 법칙들이다. 배 대표는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은 늘 문법을 의식하게 돼 있다”며 “부산말도 문법이나 법칙을 정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특징적인 표현을 많이 담으려고 했다. 사투리의 특징은 특히 반말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 같다. 보통 언어 교재는 존댓말을 기본으로 하다가 나중에 반말을 가르치는데, 부산말 교재에선 존댓말·반말 배합을 잘 하려고 애썼다. 3장은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형식으로 구성했는데, 남녀의 존댓말과 반말 차이를 알 수 있도록 했다.”

-책은 누가 썼나.
“기획은 우리가 했고 그걸 가능하게 해준 분들이 있다. 한 분은 부산 토박이로 부산에서 일본어를 가르쳤고, 다른 분은 연극을 했다. 이분들이 대화 예문을 만드는 등 실생활 언어를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 부산말에 대해선 일본에서 짧게 글을 쓴 분도 있고 선행연구가 있기는 하다.”

-책은 잘 팔리고 있나. 반응이 궁금하다.
“기대했던 것보다 잘 되고 있다. 초판 3000부를 찍었는데 몇 개월 있으면 2쇄를 찍을 것 같다. 엽서를 보내준 독자들이 있는데 전라도·제주도·북한 사투리로 책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은 아직 많은가.
“새로 입문서를 찾는 사람이 줄었다. 한·일 관계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2004~2005년 한국어 학습 붐이 일었을 때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이 지금 중급·상급이 됐고, 이들이 계속 열심히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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