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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증자에게 국가가 명예 주고, 세금도 깎아줘라”

김종규 1939년 전남 무안 출생. 동국대 경제학과 졸업. 1960년대 삼성출판사 부산 지사장을 맡은 뒤 『한국단편소설선집』 『세계문학전집』 『세계사상선집』 등 역작들을 잇따라 냈다. 이후 삼성출판사 사장·회장을 역임하면서 30년간 모은 책과 사재를 털어 1990년 국내 최초의 출판전문 박물관인 삼성출판박물관을 열었다. 한국박물관협회 3, 4대 회장을 지내면서 전국에 산재한 박물관들을 조직화했고 2004년 서울에서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세계박물관대회를 개최했다. 2009년부터는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을 맡아 ‘문화 지킴이’로 나서고 있다. 그가 주인으로 있는 삼성출판박물관은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월인석보』 등 국보·보물급 서적 11권을 소장하고 있다. 기억력도 남달라 문화계의 뒷얘기를 복원해주는 백과사전으로 불린다. 국립 중앙박물관 건립위원장과 국립 중앙박물관 문화재단 초대 이사장·대한민국역사박물관 추진위원회 전시분과위원장 등을 맡아 박물관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11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인간은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리며 조각을 하고 사진을 찍는 유일한 동물이다. 왜 이런 표현을 하고, 남기려 하는가?
“본능이다. 인간은 삶도 기억력도 유한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행 가면 우선 사진부터 찍으려고 하지 않는가? 인류는 태곳적 옛날에도 알타미라 동굴 벽화나 울산 반구대 암각화, 이집트 파피루스 같은 걸 통해 자신들의 흔적과 문화적 경험을 후손에게 남겨 주려 했다. 잘 알려진 얘기지만 파피루스에 적힌 낙서 중엔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창간 6주년 기획 이광재가 원로에게 묻다 <15>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같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이 없었다면 ‘조선왕조 500년’이란 인기 사극도, 신봉승이란 걸출한 작가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난중일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순신이란 영웅을 생생하게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허구만으론 상상력이 한계를 갖게 된다. 침수 위기에 놓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당장은 돈이 많이 들고, 식수난을 겪더라도 국민들이 지켜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문화 민족이라고 당당하게 전세계에 선언할 수 있다.”

-출판 박물관을 하게 된 배경은?
“큰형님이 1951년 목포에서 서점과 출판업을 시작했다. 얼마 뒤 형님과 함께 책을 만들며 돈을 벌었다. 이 돈으로 출판 박물관을 열게 됐다. 세계에서 금속활자를 처음 만든 민족의 후예로서 의미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형 회사에 입사한 뒤 곧바로 출판에 뛰어들었나?
“아니다. 형님은 개성 상인들처럼 친구 회사에 나를 우선 들여보내 훈련을 시켰다. 그 회사가 대한도서주식회사다. 당시 부산에 있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사장 막내 여동생과 결혼을 하게 됐다. 아내는 영남, 나는 호남 출신이다. 영호남 젊은이가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이다.”

-갈등은 없었나?
“결혼을 잘 했다. 지금까지 행복하게 산다. 우리 아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웃음)”

-개성 상인의 전통을 언급했는데 그게 뭔가.
“개성 사람들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벼슬을 하지 말자’고 결의한 뒤 장사에 나섰다. 우리 역사에서 처음 복식 부기를 도입한 이들이 개성 상인들이다. 이들은 혈족을 친분 있는 이의 가게에 취직시켜 고된 훈련을 시켰다. 자연히 개성 상인들은 강했다. 일제 시대에도 일본 상인들을 이겼다.”

-간송 전형필 선생도 개성 상인 아닌가?
“맞다. 전 선생을 비롯한 개성 상인들이 우리 박물관 역사의 효시다. 일제 시대에 개성 박물관장을 지낸 우현 고유섭 선생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우리 고유의 박물관을 만들었다. 간송 전형필과 호림 윤장섭, 최순우 전 국립박물관장 등이 그들이다. 특히 간송은 전 재산을 팔아 문화재를 사들였다. 일본인들에게 문화재가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거다. 3·1 독립선언을 한 33인의 한 분인 오세창 선생은 간송의 소장품을 감수해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간송은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건국 훈장을 받았다.”

김종규 이사장(왼쪽)이 이광재 전 강원지사에게 박물관 자료집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재 지키려면 십시일반 국민운동 필요
-간송 미술관은 공간은 작지만 작품은 많아 전시회를 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런 박물관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이는데.
“그렇다. 국보급 가치를 가진 박물관은 정부가 조건 없이 지원해야 한다. 이런 박물관을 설립한 사람들은 박물관을 만들 때 자신의 유산을 사회에 상속했다고 봐야 한다.”

-출판 박물관을 운영하며 기억나는 일화가 있나?
“아버지와 형님에게 ‘박물관 한다’고 구박을 많이 받았다. 6·25 시절 피란민들이 들고 나온 가보들을 매입했다. 그런데 평안도에서 피란 와 부산 수정동에 세 들어 살던 사람이 가보를 팔겠다고 해놓고, 종전 뒤 사라졌다. 10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중간 상인을 통해 물건을 매입했다. 그가 살던 집 2층 다락에 있던 물건들 가운데 가치 있는 문화재들이 있었다. 그래서 집주인과 중개인에게 사례금을 두둑이 줬다. 그랬더니 동네에 소문이 나서 값진 문화재가 있는 사람들은 전부 나에게 와 팔려고 왔다. 의도한 일은 아니었다.(웃음)”

-소장 작품 가운데 국보급 문화재가 많다고 들었다.
“여러 점 갖고 있다. 1980년대 일이다. 초조대장경을 구하려 했는데, 당시 금액으로 2억원이 필요했지만 돈이 없었다. 둘째 처남한테 ‘돈을 빌려달라. 이 사실을 우리 형한테 말하면 나는 맞아 죽는다’고 요청한 끝에 돈을 융통해 구입했다. 『남명송증도가(南明頌證道歌)』도 있다. 1239년에 제작된 고려시대 금속활자본 불교서적이다. 이것 역시 국보다. 이 국보는 84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일본에서 히로히토 일왕과 회담을 할 때 갖고 가겠다고 요청했지만 거절했다. 진본은 보내지 않고 영인본을 보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연간 문화유산 구입비가 50억원을 밑돈다.
“국가 예산만으론 작품 구입이 어렵다. 기증자가 많아야 한다. 기증을 한 사람에게는 국가가 명예를 주고, 세금도 깎아줘야 한다. 일본의 도쿄 박물관엔 마네나 모네의 작품이 즐비하다. 일본 기업들이 기부한 것이다. 우리도 기부가 활성화되도록 관련 법규나 제도를 대폭 개정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발표한 세법 개정안에는 기부자가 세금을 더 내게 돼 있다. 기부 문화를 더욱 위축시키는 것이다.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미술품 양도세 부과로 인해 미술 시장이 극도로 위축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술품을 활발히 구매해줘야 작가가 살고, 작가가 살아야 창의적인 디자인과 패션, 문화가 나온다. 그래야 요즘 정부가 좋아하는 ‘창조 산업’이 발달할 것 아닌가? 우리 화랑가에 일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지만 교각살우(矯角殺牛)해선 안 된다. 지금 우리 미술 시장은 완전히 죽었다. 되살리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국제적인 옥션 시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맞다. 우리 미술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세계적인 작품들이 국내에서 거래될 수 있는 길이 그것이다. 그러면 우리 박물관·미술관도 명작을 소장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가 문화쿠폰을 만들어 학생들이 무료나 염가로 박물관·미술관을 관람하게 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그런 제도가 생기면 정말 좋겠다. 세계적인 예술가들은 어린 시절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산 사람들이다. 학생들이 무료 쿠폰을 갖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마음대로 다니게 하고 정부가 학생 입장 실적을 기준으로 박물관·미술관을 평가하고 지원해주면, 우리 미술문화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노태우정부 시절 이어령 문화부 장관(당시)이 그런 취지로 어렵게 문화상품권을 만들었지만 활성화되지 못한 게 아쉽다.”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데.
“유홍준 문화재청장 시절 만들어진 조직이다. 문화재청이 종잣돈을 지원하고, 일반회원 5000여 명의 기부로 뒷받침되는 민관협력 체제다. 초대 사령탑을 맡은 유영구 전 이사장이 기틀을 잘 만들어줘 순항하고 있다. 앞으로는 가급적 민간 주도로 넘어가야 할 것이다. 미국도 40년대 정부 주도로 시작했지만 점차 민간 주도 체제로 바뀌었다.”

-국민신탁에서 중점적으로 한 사업은?
“울릉도 주민인 이영관씨의 전통가옥을 지킨 것이다. 독도 물개 몰살 등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보여주는 역사 체험관으로 만들었다.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보성여관과 고종이 미국 워싱턴에 세운 공사관을 102년 만에 되찾은 것도 기억에 남는 사업이다. 이 모든 일에는 큰돈이 든다.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선 십시일반의 국민운동이 필요하다.”

-시주자(큰돈을 내는 사람)보다 화주자(소액을 내는 사람)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데.
“거액을 쾌척하는 시주자도 중요하지만 2000원에서 1만원을 내는 화주자들이 더 중요하다. 인생이란 건 ‘바통 터치(물려주기)’다. 문화유산을 우리 후손들에게 넘겨줘야 한다. 영국은 내셔널트러스트(개인 소유 시설을 공공 소유로 전환시켜 영구 관리하는 운동) 회원이 400만 명을 넘는다. 윈스턴 처칠 총리도 생전에 모은 모든 것을 기증했다.”

-우리나라가 일류 국가로 가는 길목에 문화가 있다고도 했다.
“선진국은 기부와 자원봉사가 살아 숨쉬는 나라다. 선진국의 옛 성곽이나 오래된 마을에는 옛날 아이들이 한 낙서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 게 문화다. 체코 프라하나 이탈리아 피렌체 같은 고도들은 과거 건물을 내부만 수리하고 외관은 그대로 보전해 세계적인 유산을 양산했다. 독일도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자신들의 도시를 옛날 모습 그대로 복원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뉴타운이니 뭐니 하며 우리의 삶을 깡그리 부셔버리는 야만의 시대를 끝내야 일류국가로 갈 수 있다. 독일엔 8층 이상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도시가 얼마 안 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방방곡곡에 아파트가 하늘을 가리고 있다. 무엇이 인간답게 사는 길인가?”

인생은 ‘바통 터치’ … 과욕 부리지 말아야
-‘문화계의 마당발’로 불리며 ‘보수’로 자칭하는데 보수와 진보는 무엇을 고쳐야 하나.
“인류는 보수와 진보의 투쟁을 통해 진화해 왔다. 안정과 변화 모두 있어야 나라가 진화한다. 그런데 우리는 양측이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고수들이 바둑을 둘 때 급수 낮은 사람의 훈수가 맞을 때가 있다. 여당은 야당의 훈수를 들을 줄도 알아야 한다. 야당도 여당을 칭찬할 줄 알아야 한다. 여야 모두 명심해야 할 게 정당 위에 국가가 있다는 점이다. 국가를 위해 정당이 존재해야 하는 거다. 정당이 정권을 잡으려고 죽기살기로 싸울 게 아니라 나라를 살리기 위해 훈수도 듣고 칭찬도 해줘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마디 한다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을 왕에 비유하기는 뭐하지만 고구려·백제·신라 가운데 가장 약했던 신라가 선덕여왕 시절 삼국통일의 기반을 갖췄다. 선덕여왕이 인재를 양성했기 때문이다. ‘여자가 나라를 다스린다’는 핑계로 반란이 일어났지만 김유신과 김춘추가 잘 막아냈다. 김유신은 가야 출신이고 김춘추는 쫓겨난 왕의 자손이었다. 둘 다 비주류였던 거다. 그럼에도 여왕이 두 인재를 기용해 3국 통일이란 대역사를 만들었다. 박 대통령도 여야를 넘어 인재를 쓰기 바란다.”

-박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듯하다.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려면 교육 개혁의 씨앗을 심으라고 주문하고 싶다. 임기 중 설익은 열매를 거두려 하지는 말아야 한다. 설사 다음 정권이 야당으로 넘어가도 먼 훗날 승자로 기록되려면 교육개혁에 나서야 한다. 일본은 전후 문부성 예산으로 어머니들을 재교육해 고도성장의 씨앗을 심었다. 우리도 아이를 쥐어짜는 교육은 이젠 끝내야 한다. 그리고 야당을 통 크게 칭찬하고 포용해 달라. 그러면 야당도 대통령과 함께할 것이다. 북한에도 마찬가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여야, 남북 할 것 없이 칭찬할 것을 찾으면 일이 잘 풀릴 것이다. 그리고 차분히 시간을 갖고 독서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말끝마다 독서를 강조하는데.
“일본이 경제대국이 된 이유는 선각자들이 있어 선진 사상·문물을 제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또 출판대국이란 점도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일본은 신간이 나오면 2000~3000권을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도서관 등이 구매해줬다. 그러다 보니 출판사는 양서를 내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다. 이는 일본의 지적 토양이 됐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글쎄, ‘편도 차표’(One way ticket)랄까…? 인생은 가정이나 사회나 다 ‘바통 터치’다. 자신이 모든 걸 다 이룰 수는 없다는 자각이 중요하다. 의욕을 갖되 과욕은 금물이다. 나는 실패한 사람을 많이 봐 왔다. 과욕을 부리는 사람들이 실패하고 건강마저 잃더라. 스스로 욕심을 제어하면 나중에 덕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 좌우명은 ‘누군가에게 베푼 건 생각하지 말고, 받은 건 결코 잊지 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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