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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견불 마을에서

글 쓰는 이들은 여름 삼베옷처럼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는 것이 운명인 듯하다. 그래서 때로 꿈에도 선명한 무채색 그림을 글로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른다.

지난봄 초파일 무렵 계룡산의 숨어 있는 절, 신원사 뒤뜰에서 쑥 한 줌을 뜯어 비닐가방에 넣어 돌아오는 길에 창밖 논을 보며 아내는 말했다. “나는 모심기 전에 물이 가득한 빈 논이 참 좋아. 마음이 설레고 흐뭇해.”

3년째 조심조심 암과 투병하는 그는 속내를 ‘논 그림자’에서 풀고 있었다. 비바람 치던 엊그제 추석 전후, 운전을 하며 그 논두렁을 스쳐가 보니 벌써 노랗게 벼가 익어 가볍게 고개를 숙인 채 결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줄기 하나 꼿꼿이 서서 나를 바라보는 벼는 없다. ‘한 해가 벌써 이렇게 가고 있다니…. 세월은 잰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텅 빈 듯했다.

추석 무렵 시간을 내어 지리산 모퉁이에 있는 어느 선생님 황토방 토굴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맑고 깊은 밤하늘에 구름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별들이 숨바꼭질하는 그 마을의 이름은 견불 마을이었다. 부처를 눈으로 바로 본다는 견불(見佛), 산 언덕 마당에서 바라본 지리산의 등줄기는 이리 봐도 부처의 얼굴, 저리 봐도 부처의 얼굴이었다. 이름도 잘 지었지만 부처를 바라보는 마음은 보는 만큼 닮는가 싶었다. 사람은 무엇을 보든 보는 만큼 닮아간다.

이튿날 새벽 4시 이불을 개고 좌선을 하는데 마당 한가운데로 구름이 스쳐 지나간다. 이 땅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살아도 부처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부처의 얼굴과 자비를 보여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생각하다 문득 “그렇지” 하며 마음이 멈추었다. 지구상의 인구가 70억 명이라고 하지만 세상 사람이 알고 보니 모두가 부처님이었구나. 불경에도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이라고 쓰여 있지 않은가. 무려 1100억 명의 사람이 부처라는 말이 나를 다시금 돌아보게 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사람의 성품을 가리고,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이래서 불편하다고 했던가. 이 울퉁불퉁하고 불편한 마음 거울을 얼마나 더 닦아야 맑은 거울이 될까 참회를 했다.

실수하는 부처님, 성을 내는 부처님, 거짓말하는 부처님, 가족의 배고픔을 달래려 도둑질하던 부처님, 마음의 상처에 몸부림치다 세상을 떠난 부처님, 암으로 투병하는 부처님 등 헤아릴 수 없는 부처들이 이 땅에 있음에…. 이 세상에서는 모두가 스승이었구나 하는 마음에 새벽 좌선을 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은 모두가 근심 없는 깨끗한 마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돌아보지 못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마음을 깨끗이 할 수 있는가,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깨끗함도 없고, 깨끗함이 없음도 없음이 필경 깨끗함이니라. 그러니 세상 모든 것에 무심함이 참 공부길이니라.” 이 말은 ‘일체처 무심이 시정이라(一切處 無心 是淨)’는 깊은 뜻과 다름없다.

금강경은 세상 사람들에게 이런 글을 전한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 공양 올리는 것이 무심도인 한 사람에게 공양 올리는 것만 못하다. 그것은 무심한 사람에게는 일체의 비교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살면서 무심(無心)처럼 좋은 말이 또 있을까. 때론 다시 스쳐 지나지 않을 바람처럼, 길가의 이름 없는 풀잎처럼 살고 싶다. 그렇게 마음에 상처 없이 이생을 살다 가는 사람이고 싶다.



정은광 원광대학교 미술관 학예사. 미학을 전공했으며 수행과 선그림(禪畵)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마음을 소유하지 마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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