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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물이 된 서울 도시 갤러리들








지난달 말 서울 지하철 3호선 옥수역 앞. 3번 출구와 4번 출구 사이 고가를 떠받친 기둥과 보에는 알록달록 채색된 문양과 숫자들이 찍혀 있다. 2007년 서울시가 추진한 ‘도시 갤러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바코드’라는 작품이다.

 하지만 예술작품이라 칭하기엔 볼품없었다.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졌고 거북이 등처럼 쩍쩍 금이 갔다. 각종 홍보전단이 엉망진창으로 붙어 있고 테이프 자국이 흉터처럼 남았다.

 3번 출구 계단 난간에 놓인 노란색 대형 화분도 프로젝트에 의해 2007년 설치된 작품이다. 하지만 노란 도색이 벗겨진 자리에는 구정물을 엎지른 것처럼 녹이 슬었다. 도장이 멀쩡한 부분에도 뿌옇게 먼지가 앉았다. 주민 문명철(54)씨는 “관리를 안 할 거라면 차라리 그냥 다른 곳처럼 페인트 도색이나 다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옥수역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관리를 부탁한 적은 없다”고 했다.

 망원동의 유수지체육공원 바닥을 장식했던 그림은 도색이 벗겨져 형상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어두운 공간을 색(色)의 힘으로 밝히자는 취지로 설치됐던 작품은 낙서로 도배돼 오히려 삭막함을 더했다.

 마포대교 남단에 놓인 ‘바람의 길’이라는 대형 조형물 주위에는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바람이 여러 갈래로 부는 듯 이리저리 휘어진 곡선이 아름다운 작품이지만 관리 소홀로 방치돼 있었다. 12억원을 들인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도심 갤러리 프로젝트’에 따라 설치된 서울 곳곳의 미술작품들이 서울시의 관리 소홀로 도심 속 흉물로 전락했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시가 2007년 ‘도시가 작품이다. 삶이 예술이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추진한 사업이다. ‘디자인 서울’을 내건 오세훈 당시 시장이 의욕적으로 밀어붙인 사업이었다. 2011년까지 총 85개의 프로젝트에 150여억원이 투입됐다. 1590명의 건축가·미술가·디자이너·지역주민이 참여했다.

 이 사업은 크게 장소형 프로젝트와 공동체 프로젝트로 나뉘어 진행됐다. 서울의 정체성을 잘 살리는 작품을 특정 장소에 설치하거나 예술가들이 지역주민과 소통해 마을을 꾸미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재는 제대로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정동길에도 장소형과 공동체 프로젝트가 여러 종류 설치됐으나 현재 남아 있는 건 덕수궁 돌담길에 설치된 벤치뿐이다. 2007년 기하학적 도형을 그린 공중전화 부스 안 구식 전화기를 두고 수화기를 들면 옛날 음악이 흘러나왔던 ‘소리꽃’이라는 작품은 온데간데없다. 오려 붙인 도형은 때가 탔고 부스 한쪽 유리창에 붙인 작품 설명 위에는 그대로 도배지를 덮어 볼썽사나웠다.

 각국 언어가 기다란 전광판에 표시돼 한때 행인의 눈길을 끌었던 예원학교 담장의 ‘신세계 언어’와 벤치 위로 옛날 라디오가 흘러나온 ‘라디오 정동’은 철거됐다.

 2009년 아마추어 예술가와 주민들이 참여해 삼청동 20여 군데에 설치해던 작품들은 4곳을 제외하고는 사라졌다. 일시적 프로젝트이긴 했지만 이후 이와 비슷한 프로젝트는 다시 시도되지 않았다.

 프로젝트 초반에는 서울디자인재단이 주무를 맡았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신규 프로젝트가 나오지 않으면서 올해 3월부터는 서울시 디자인정책과가 유지·보수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2007년 32억원, 2008년 80억원에 이르던 예산은 지난해 9000만원, 올해 83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서울시의회에서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예산이 없다 보니 당연히 관리와 유지·보수는 소홀해졌다.

 당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서울디자인재단 관계자는 “서울시가 관리하는 건 행정적 문제가 크다고 봐서 구청과 협의해 관리 책임을 맡기려 했으나 예산 문제로 틀어진 적이 많다”며 “다양한 시도는 좋았지만 지역 단위의 예술사업으로 안착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전남대 이무용(문화전문대학원) 교수는 “공공미술은 지역주민·예술가집단과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관리 주체와 방식을 정해야 한다”며 “박원순 시장이 시민사회와 연계하는 방식으로 이어 나가는 게 현재로선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사진 설명

①② 작품명 ‘바코드’ … 전단으로 도배
서울 지하철 3호선 옥수역 기둥에 그려진 작품 ‘바코드’의 페인트가 벗겨지고 작품 위에 각종 홍보전단이 붙어 있다.

③④ 그림이 지워진 자리엔 낙서뿐 서울 망원동 유수지체육공원에 그려진 벽화는 대부분 훼손되고 온갖 낙서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⑤⑥ 12억 들인 ‘바람의 길’은 금 가 서울 마포대교 남단에 설치된 조형물 ‘바람의 길’의 보도는 금이 가고 시멘트 구정물이 흘러내려 지저분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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