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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질하는 나를 그가 안았다 … 그때 떠오른 단어, 선생님

지난 7월 새울학교 천연염색 수업 시간. 바늘 귀에 실을 꿰는 정연수(중3·가명)군의 오른손 마디에 상처가 나 있다. 걸핏하면 싸우고, 분을 삭이지 못하면 벽을 주먹으로 마구 치는 바람에 생긴 상처다. 그러나 정군은 새울학교를 다니면서 마음을 다스려 주먹을 휘두르지 않는 학생이 됐다. [김상선 기자]

경기도 이천시 율면 논밭 한가운데 자리한 새울학교. 중학교 학교폭력 가해학생을 위한 대안학교다. 쉽게 말해 ‘일진’을 모아놓은 곳이다. 이 학교에서 지난 2일 첫 수료식이 열렸다. 올 6월 입학한 18명이 과정을 마쳤다. 중3 정연수(가명)군도 그중 하나. 교무실에서조차 난동을 부리던 정군은 이젠 조용히 앉아 수업을 듣는다. 성적도 올랐다. 주먹을 휘두르는 건 그야말로 옛얘기가 됐다. 무엇이 정군을 바꿔놓았을까. 육성으로 들어봤다.


나는 화가 나면 주먹부터 나갔다. 그 때문에 툭하면 교무실에 불려갔다. 올 5월, 교무실에서 설교를 들을 때였다. 듣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선생이 나를 툭툭 친다. 눈을 치켜뜨자 ‘어디서 노려보느냐’는 호통이 돌아왔다. 분노가 치밀었다. 책상을 발로 차고 손에 잡히는 것을 던졌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주먹으로 벽을 쳤다. 손등에서 피가 흘렀다.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한 달간 집에서 근신 결정. 6월부터는 새울학교란 곳으로 가라고 했다. 집에서도 동의를 했단다.

 6월 1일. 아버지에게 잡혀 새울학교로 끌려왔다. 촌구석 논밭 사이에 알록달록한 3층 건물이 솟아 있다. 이곳에서 몇 달을 보내란다. 입학한 아이들은 42명. 학년별로 15명 정도다. 여학생도 있다. 다들 학교 ‘짱’(주먹이 제일 센 학생)이라고 했다. 서열싸움이 시작됐다. ‘수원의 핵주먹’이라 으스대던 한 남학생은 2학년에게 얻어맞고 4일 만에 짐을 쌌다.

 기숙사 생활은 숨이 막혔다. 오전 7시에 일어나 오전 8시40분부터 오후 4시까지는 수업이다. 다음은 댄스나 연극, 상담 같은 방과후 활동이 이어졌다. 오후 10시30분 잠자리에 들기까지 자유가 없다. 선생들은 퇴근도 안 한다. 기숙사에 살면서 시도 때도 없이 ‘얘기를 하자’고 찾아온다. 풀려나는 건 집에 다녀오는 주말뿐. 창살 없는 감옥이다.

 견디다 못해 이틀 만에 도망쳤다. 걸어도 걸어도 나오는 건 논과 밭. 다시 터덜터덜 학교로 돌아갔다. 몇몇은 이런 생활을 견디다 못해 집과 학교에 사정사정해 돌아갔다. 개교한 지 15일 만에 학생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정군이 부모에게 보낸 편지. 새울학교 입학 초기(왼쪽)에는 “잘 지내겠다” 한 줄뿐이었던 것이 한 달 여 뒤엔 앞·뒷면을 빼곡히 채우게 됐다.
 학교는 이상했다. 국어·영어·수학·과학 수업이 1주일에 한 번(2~3시간 집중)밖에 없다. 그것도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배우는 게 아니다. 국어 시간엔 책을 읽고 토론을 하라고 하고 과학 시간엔 토끼를 살펴보라고 했다. 수업 대부분은 예체능이다. 요리나 바느질, 드럼·기타 같은 악기 연주도 가르쳐준다.

 선생들도 희한하다. 수업을 빼먹으면 “다음 시간에 재미있는 것을 보여줄 테니 궁금하면 꼭 들어오라”고 한다. 어느 날 몇몇 친구와 수업을 땡땡이치고 기숙사 뒤편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우리를 찾으러 나온 담임에게 걸렸다. 담임은 “흡연 구역은 저쪽”이라고 알려줬다. 그러더니 “담배를 많이 피우면 키도 안 크고 얼굴도 못생겨져 연애를 못한다”며 “하루에 한 대만 피우라”고 한다. “끊으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도 했다.

수업은 주로 예체능 … 교내엔 흡연구역도

 처음에 나는 여기서도 닥치는 대로 시비를 걸고 싸웠다. 말리는 선생들에게 “꺼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번은 땡땡이치려고 가방을 메고 나가다 교무실 앞 복도에 침을 뱉었다. 하필 교감이 봤다.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일렀다. 그게 왜 그리 고깝게 들리던지. 교무실 문을 걷어찼다. 소리를 지르며 주먹으로 벽을 치는 나에게 선생들이 달려들었다. 맞는 건가. 손등이 따끔거렸다. 선생들이 피가 흐르는 내 손에 약을 바르고 있었다.

 1주일쯤 뒤 이번엔 기숙사 사감과 붙었다. 잠깐 기숙사에 들어가려는데 안 된다고 했다. “기숙사는 정해진 시간에만 문을 연다”는 거였다. 사감실까지 따라가 문을 걷어차고 욕설을 퍼부었다. 주먹을 쥐고 문을 힘껏 때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누가 나를 안고 뒤로 잡아끌었다. 상담 선생이었다. 발버둥치고 욕을 했다. 선생이 내 귀에 속삭였다. “다친 손이 아직 낫지 않았는데 또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모두 문제아라고 손가락질하던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 그게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난폭하게 행동했던 내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 낯이 없어 수업을 빼먹고 선생님들을 피해 도망 다녔다(정군은 이 무렵부터 머릿속에 ‘선생’ 대신 ‘선생님’이란 단어가 떠오르게 됐다고 했다).

 작은 학교 안에서 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상담 선생님과 마주 보며 2시간 넘게 대화를 했다. ‘음악과 외국어에 관심이 많음. 평소엔 성격이 온순하고 머리가 좋음. 그러나 화가 나면 참지 못해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고 자해를 함.’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매일 상담하고 관찰한 나의 모습이라고 했다. 이날 선생님과 약속을 했다. 화를 참아보겠다고.

 화가 나면 체육관에 달려가 운동을 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선생님들과 대화를 했다. 화난 이유를 설명하다 보면 ‘별일 아닌데 왜 화가 났을까’ 의문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체육관에 가는 횟수가 줄었다. 마음가짐이 차분해지자 수업에 흥미가 생겼다. 성적이 좋아졌다. 처음 본 쪽지시험보다 20점이 올랐다. 변화를 가장 반긴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나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던 아버지는 주말에 만났을 때 간지럼을 태우며 장난을 걸었다.

 7월 19일 4주간 방학에 들어갔다. 원래 다니던 학교는 1주일 뒤부터 방학이다. 집에 도착한 다음 날 교복을 입고 학교로 갔다. 새울학교 마치면 돌아올 텐데, 사과를 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무실에 들러 ‘죄송하다’고 선생님들께 사과를 했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괴롭힘을 당했던 친구들은 사과를 흔쾌히 받아줬다.

 다시 새울학교에 갔다. 마음이 편해지고, 성적은 더 올랐다. 새울학교에서 성적 통보를 받은 원래 학교 담임 선생님이 전화를 해서는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여기서도 상위권을 노릴 만하다”고 했다.

수료식 때 선생님이 준 편지엔 "널 믿어라”

새울학교 선생님들은 칭찬을 해줬다. “진짜 모습을 찾은 거야. 연수는 원래 머리 좋고 성실한 최고의 학생이었어.”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내 얘기를 들어주고 믿어주고 내 편이 되어준 선생님들이란 것을.

 지난 2일 수료식이 열렸다. 수료장을 만지작거리는 내게 상담 선생님이 직접 쓴 편지를 건넸다. ‘너 자신을 믿어라. 너는 충분히 멋진 사람이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일부에선 여전히 나를 ‘문제아’라고 생각한다. 한번 새겨진 주홍글씨는 지우기 어렵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내가 ‘문제아’라는 것을 편견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이천=최모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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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