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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증세보다 한국형 복지모델이 먼저다

김영욱
논설위원·경제전문기자
A와 B, 두 사람이 있다. 누군가 A에게 1만원을 주면서 B와 나눠 가지라고 했다. 대신 조건을 붙였다. A가 임의로 돈을 나누되 B가 그 제안을 거절하면 둘 다 돈을 못 가진다고 했다. 퀴즈다. A는 B에게 얼마나 주면 될까? 실험 결과 3000~5000원이었다. 그 정도면 B도 받겠다고 했다. 그럼 A가 얼마를 주면 B가 거절할까? 3000원 미만이다. A가 2999원을 주면 B는 한 푼도 안 받겠다고 했다. 게임이 무산되고, A 역시 많이 가지려다 한 푼도 못 받게 된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행동경제학의 주장이다. 이른바 ‘최종제안게임’이다. 주류경제학과 전혀 다른 결론이다. B는 A가 1원을 준다고 해도 받는다는 게 주류경제학이다. 한 푼도 못 받는 것보다 이익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3000원 미만을 주면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이럴 바엔 A도 못 받게 하겠다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판 자체를 엎어버린다(도모노 노리오, 『행동경제학』).

 양극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메시지다. 양극화가 심해지면 불공정하다고 생각해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체제 자체가 전복된다는 의미다.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는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복지를 늘려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복지는 양극화를 해소하는 재분배의 핵심 수단이라서다.

 요즘 증세 논란이 우려되는 건 이 때문이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보수와 진보가 증세만큼은 한목소리다. 복지 늘리려면 증세하란다. 속내야 다르다. 증세가 힘들 테니 복지 공약을 축소하라는 게 보수다. 진보는 증세가 힘들 테니 “박 대통령, 한번 혼나보라”는 심산이다. 어느 것이든 복지에 세금 문제가 개입되면 복지 자체가 힘들어진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재원 문제를 고려하지 말자는 건 결코 아니다. 능력 이상의 복지는 재정 파탄의 주범이라는 데도 동의한다. 그리스 등 남유럽이 그랬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증세 논의보다 복지 모델에 관한 고민이 먼저여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복지를 어떻게 실행해야 할 것이냐라고 하는, 복지의 방향과 정책의 효율성 논쟁이 우선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돈이 많이 들더라도 해야 한다는 거다. 증세를 하든 국채를 발행하든. 꼭 해야 할 복지라면 국민을 설득하기도 쉽다. 그 정도도 이해 못하고 부담하지 않겠다고 뻗댈 우리 국민이 아니다.

 그런데도 여당이건 야당이건, 보수건 진보건 하나같이 복지를 포퓰리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복지를 정권 획득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한국형 복지모델에 대한 고민은 뒷전이다. 복지가 일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한다. 복지가 소비가 아닌, 생산과 연결돼야 하며 생산적 복지가 퍼주기식, 시혜성 복지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행동은 딴판이다. 생산적 복지의 핵심인 재취업 지원이라든가 실업보험의 강화 등 적극적 노동정책엔 별 관심이 없다. 대신 득표에 도움이 되는 기초연금이나 무상급식 같은 시혜성 복지에만 매달린다.

 정책의 효율성은 아예 뒷전이다. 목적과 수단이 일치하지 않는 건 그래서다. 보육 지원의 목적은 여성 일자리의 활성화다. 맞벌이 중심으로 보육 지원이 행해져야 한다. 그런데도 전업 주부와 육아유직자도 지원한다. 대학생 반값 등록금이 청년실업을 가중시킨다는 건 상식이다. 직업교육을 담당하는 전문대학이나 기능대학만 지원해야 하는데도 여전히 반값 타령이다. 기초연금도 마찬가지다. 목적은 노인 빈곤 해소다. 가난하지 않은 노인에게 줄 이유가 없다. 그 돈 있으면 가난한 노인에게 더 주는 게 맞다. 그런데도 모든 노인에게 다 주다가 빈곤 노인에게만 주는 선별적 복지로 바꾼 스웨덴의 시행착오는 애써 무시한다.

 ‘일하는 복지’로 복지모델을 다시 만들자. 정책의 우선순위도 새로 짜자.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한국형 복지모델을 정립한 후 그래도 필요하다면 증세 논의를 하자. 이렇게 하면 돈도 덜 들고 국민 설득도 용이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맞춤형 복지 운운하면서 안주할 계제가 아니란 얘기다. 진짜 리더십이 참으로 절실한 때다.

김영욱 논설위원·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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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