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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 MRI 비용도 암 치료라고 우기면 100만원 → 5만원

3년 전 신장암 수술을 받은 A씨(49)는 최근 등산길에서 넘어진 후 허리 통증이 생겼다. 정형외과에선 “디스크가 의심된다”며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100만원 정도의 검사비가 큰 부담이었다. A씨는 수소문 끝에 묘안을 얻었다. 신장암 정기검진을 받아온 종양내과에서 재발 여부를 검사한다는 명분으로 MRI 검사를 받으면 5만원만 내면 됐다. 암 환자는 건강보험 진료비의 5%만 부담하는 특례제도 덕분이다. 암과는 관계가 없는 병인데도 암과 같은 혜택을 본 것이다.



복지예산 새고 있다 <중> 무분별한 4대 중증질환 보장

 병원에 입원하면 건보 진료비의 20%, 외래 진료 때는 30~60%, 약값은 30%를 환자가 낸다(법정 본인부담금). 여기에 보험이 안 되는 진료비도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건보의 혜택이 좁아 암과 같은 중병 환자의 고통이 컸다. 그래서 2005년부터 암·심장병·뇌질환·희귀난치성질환 등 4대 중증 진료비 경감 정책이 시작됐다. 이 중 핵심 정책이 법정 본인부담금을 경감하는 것이다. 2005년 이후 이를 단계적으로 낮춰 2009년 12월부터 5%로 줄었다.



합병증 기준 애매해 속수무책





 그런데 A씨의 예처럼 ‘5%룰(rule)’이 엉뚱한 데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원래는 암으로 인한 진료와 합병증에만 적용돼야 하는데 실제 의료 현장에선 그렇지 않다. 암과 관련 없는 질병으로 검사를 받거나 처방을 받아도 5%룰이 적용되는 실정이다. 한정된 건보 재정이 상대적으로 더 급하고 중요한 데 쓰여야 하는데 낭비되는 셈이다.



 일부 암환자는 만성질환 진료와 약에도 5%룰을 적용해 달라고 요구한다. 지난해 악성림프종을 진단받은 B씨(57)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6개월간 항암치료를 받은 후 완전 관해(조직검사 결과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 상태) 판정을 받고 지금은 2~3개월에 한 번씩 외래진료를 받고 있다. 암에 걸리기 전부터 혈압이 높고 당뇨가 있었다. 그는 암 주치의한테 외래진료를 받을 때 혈압약과 당뇨병 약 처방을 요구했다. 주치의가 “내과(만성질환 담당) 진료 예약을 잡아 줄 테니 그리 가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내과로 가 처방을 받으면 약제비의 30%를 부담하지만, 암 주치의가 처방전을 내주면 암 관련 진료로 간주해 5%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가령 20만원어치 고혈압 약을 정상적으로 처방받아 약국에서 조제할 경우 일반 환자는 6만원의 약값을 내야 하지만 암 주치의의 처방전이 있으면 1만원만 내면 된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은 이런 5%룰 악용 현상을 짐작만 할 뿐 얼마나 돈이 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진료비 심사를 담당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도 종양내과 의사가 진료한 것이면 적정성을 따지지 않고 인정한다. 합병증에 대한 마땅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복지부의 희귀난치성질환자 등록제 운영 방안에 따르면 ‘산정특례(5%룰) 대상 상병 관련 합병증에 대한 진료도 특례대상’이라고 돼 있을 뿐 어디까지가 합병증인지 세부 규정이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암 관련 진료 여부와 합병증이냐 아니냐의 판단은 결국 의사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누가 진료하고 처방하느냐에 따라 환자 부담이 5%인지 60%인지 결정되는 이상한 구조다. 정부나 심평원 등 복지비용 문지기 역할을 해야 할 기관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당뇨·혈압약까지 5%룰 적용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의사가 이런 환자의 요구를 받으면 거절하고 동네의원으로 안내해야 하지만 환자가 줄줄이 밀려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처방해 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김태유 교수는 “말기에는 항암치료가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안 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이일학 교수는 “암과 관련 없는 질병에 5%룰을 적용하는 것은 의사와 환자의 도덕적 해이”라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수술 받은 지 3년 후에 상관없는 부위에 MRI 검사를 할 경우 의사가 암 관련성을 입증하도록 요구해 귀찮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합병증의 개념을 명확히 해 5%룰 적용 남용을 줄이자는 것이다. 또 박근혜정부가 4대 중증 질환 보장 공약을 이행하느라 2017년까지 약 9조원의 돈을 마련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새는 돈부터 막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말기암 호스피스 지원 늘려야



 연세대 손명세 보건대학원장은 “의료 복지 공약의 우선순위를 조정해 돈은 별로 안 들지만 중요도가 높은 호스피스 지원 등에 눈을 돌리자”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암 환자들이 병원을 맘대로 못 가는 이유 중 하나가 간병비 부담”이라면서 “항암제 보장보다 우선적으로 간병비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5%룰(산정 특례)=2005년 9월 고(故)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도입했다. 중병에 걸리면 집을 팔아야 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당시는 입원진료비를 20%에서 10%로 낮췄고 2009년 12월 5%로 줄었다. 암·심장병·뇌질환은 5%, 희귀난치성질환은 10%를 부담한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장주영·김혜미·이서준·이민영 기자, 사진 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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