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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칼럼] 정약용 부인 다홍치마의 행방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지난달 26일 대법원이 9조원대 금융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부산저축은행그룹 임원진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박연호 회장 징역 12년, 김양 부회장 10년, 김민영 행장 4년. 이로써 주요 피고인에 대한 형사처벌은 마무리됐지만, 다른 절차가 남아 있다. 부산저축은행의 재산을 털어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보상하는 일이다. 검찰이 수사팀과 별도로 재산 환수팀을 구성해 확보한 액수는 1조원이 조금 넘는다. 그러나 피해 금액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재작년 저축은행 비리 수사 당시 검찰은 김민영(67) 부산저축은행장으로부터 보물·고서화 등 1000여 점을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아냈다. 서울대 사학과를 나온 김 행장은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금융인인 동시에 프로급 안목을 지닌 문화재 애호가로 유명했다. 검찰이 확보한 문화재 중 압권은 월인석보 9·10권과 하피첩. 월인석보는 세조 5년(1459년)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해 만든 불교대장경이고, 하피첩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유배 시절 부인이 보내온 비단치마에 글을 써 두 아들에게 다시 보낸 서첩(書帖)이다. 월인석보 9·10권은 보물 745-3호, 하피첩은 보물 1683-2호로 지정돼 있다.



 하피첩은 태생부터 기구했다. 다산은 만 14세이던 1776년 한 살 연상의 풍산 홍씨(1761~1838)와 결혼한다. 1801년 다산이 전남 강진으로 귀양가면서 긴 생이별이 시작된다. 유배 7년째, 남편이 살아 돌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1807년에 부인 홍씨가 특이한 선물을 귀양지로 보낸다. 시집올 때 입었던 붉은색 비단치마였다. 결혼한 지 31년. 다홍치마는 이미 누렇게 바래 있었다. 왜 보냈을까. “영원한 이별을 고한 것”(김시업 실학박물관장), “나를 잊지 말라는 정표”(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등 해석이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조선시대로선 극히 드문, 애틋하고 섹시한 애정 표시인 것만은 분명하다.



 천재 공부벌레이던 다산은 치마를 보고 책 만들 욕심부터 낸다. “아내가 헌 치마 다섯 폭을 보내왔다. 시집올 적에 입었던 활옷인데, 그때의 붉은빛은 담황색으로 빛이 바래 정녕 서본(書本)으로 쓰기에 알맞았다”(하피첩 서문). 비단치마를 조각조각 말라 두 아들에게 경구(警句)들을 써 보냈다. “나는 벼슬을 하지 않아 너희에게 남겨줄 게 없다. 오직 두 글자의 놀라운 부적을 줄 테니 소홀하게 여기지 말아라. 한 글자는 근(勤)이요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우리 집안은 선세(先世)로부터 붕당에 관계하지 않았다. 하물며 불운을 만나고부터 옛 친구들이 연못에 밀고 돌을 던지는 경우를 당했으니 너희들은 내 말을 가슴에 새겨 편당하는 사사로운 마음을 깨끗이 씻어버려야 한다”….



 당대엔 해피엔딩이었다. 18년의 유배가 끝나자 다산은 아내와 다시 합친다. 결혼 60주년, 회혼일(回婚日)인 1836년 음력 2월 2일 다산이 숨을 거두고 2년 뒤 홍씨도 남편을 따른다. 부부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함께 묻혀 있다. 하피첩이 가보 1호로 대접받은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1950년 터진 한국전쟁이 문제였다. 6·25 발발 직후 다산의 종손 정향진(1968년 작고)씨가 난리통에 수원역에서 열차에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하피첩을 잃어버렸다. 7대 종손인 정호영(55) 교육방송 정책기획센터장은 “할아버지께서 잃어버린 것을 뒤늦게 깨닫고 실신할 지경으로 애통해하셨지만 끝내 찾지 못하셨다”고 말했다.



 하피첩이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은 2006년. 한 소장자가 “2004년 수원에서 파지를 수집하는 할머니의 수레에서 발견했다”며 공개했다. TV ‘진품명품’ 프로그램에서 감정가 1억원이 매겨지기도 했다. 이 귀중한 문화재가 다시 김민영 부산저축은행장의 손에 들어갔던 것이다. 하피첩은 지금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1층에 임시로 모셔져 있다. 중성 한지로 싸고 오동나무 상자에 넣은 뒤, 다시 오동나무 장에 넣어 조습패널 시설이 된 수장고 안에 보관 중이다. 예금보험공사가 진행 중인 손해배상 소송에서 김민영 행장의 책임 범위가 확정되면 입찰을 통해 공개매각에 들어가게 된다. 보물이라 해도 예보공사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예보공사가 배임을 저지르는 격”(예보공사 자산관리1부 최진무 팀장)이니까.



 그렇더라도 법 절차가 전부일까. 하피첩은 국민 모두의 보물이다. 공공기관이 사들여 박물관에 전시할 방법은 없을까. 그게 힘들면 누군가가 구입해 국가에 기증하거나 영구대여 형식으로 희사할 수는 없을까. 사회가 명예로 보답하면 된다. 평생 사재를 털어 우리 문화재를 지켜낸 간송 전형필(1906~1962) 같은 분이 요즘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하피첩과 그에 얽힌 찡한 사연을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감상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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