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예술감독 에마뉴엘 드마르치-모타, 그가 선택하면 세계 최고가 된다

에마뉴엘 드마르치-모타가 연출한 ‘빅토르 혹은 권좌의 아이들’은 아홉 살 소년의 연극놀이를 통해 1920년대 부르주아 사회를 비판하는 잔혹극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테아트르 드 라 빌(Thetre de la Ville).

프랑스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
피나 바우슈·로버트 윌슨 키워내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공연차 내한



 프랑스 파리에 있다. 일반인에겐 조금 낯선 곳, 하지만 명실공히 세계 최고 권위의 공연장으로 불린다. 피나 바우슈·로버트 윌슨·알랑 플라텔 등이 이 극장 무대에 오르며 실력을 키웠다. 이후 세계 최정상급 예술가로 인정받게 됐다. 극장은 45년 역사 동안 늘 진취적이었고, 논란을 일으켰으며, 선망의 공간이 됐다. 콘템포러리 예술의 메카이자 세계 공연예술의 심장부였다.



 이곳의 예술감독이 처음 한국을 찾았다. 연출가 에마뉴엘 드마르치-모타(Emmanuel Demarcy-Mota·43)다. 테아트르 드 라 빌이 제작하고, 그 자신이 연출한 연극 ‘빅토르 혹은 권좌의 아이들’(2∼4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이 제13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개막작으로 선보인다. 지난달 30일 내한한 그는 “아직 한국 공연예술에 대해선 문외한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을 조금 더 알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5년 전 30대 젊은 나이로 예술감독이 됐다. (1968년 출범한 테아트르 드 라 빌은 45년간 예술감독이 단 두 번 바뀌었다. 85년 2대 예술감독에 오른 제하드 비올레뜨는 23년간 자리를 지켰고, 모타는 3대 예술감독으로 2008년 선임됐다)



 “풋내기가 어찌 저 유서 깊은 극장의 감독이 됐냐는 뜻인가 본데, 사실 나도 놀랐다. (웃음) 내 아버지는 연출가였고, 어머니는 포르투갈의 유명 배우였으며, 외삼촌은 리스본 극장장이었다. 어릴 때부터 공연과 무대와 극장은 내 삶의 대부분이었다. 열일곱 살에 연출가로 데뷔했고, 스무 살 때 극단을 창단했으며, 20대 중반에 랭스 국립연극센터 기관장으로 선임됐다. 이런 경력을 파리시가 높이 사지 않았나 싶다. 또한 테아트르 드 라 빌은 아방가르드 예술의 전진기지로 언제나 시대를 선도해 왔다. 극장 운영에서도 때론 파격적인 인사가 필요했을 듯싶다.”



 -5년간 어떤 변화를 주었나.



 “관객의 다양성이다. 과거엔 회원제 중심이었다. 지금은 일반 관객에게 문호를 넓혔다. 파리엔 모로코인·터키인 등 다양한 언어와 민족이 공존한다. 그들을 다 품어야 한다. 관객이 젊어졌고, 계층과 인종은 넓어졌다.”



 -공연 프로그램은 어떤가.



 “연극·무용·음악 등을 다채롭게 구성하고 있다. 중요한 건 장르간 밸런스를 유지하면서도 특정 장르라는 벽에 갇혀선 안되며, 새로운 예술가를 찾는 일이다. 균형과 융합 그리고 모험, 그게 우리의 철학이다.”



 위대한 예술가의 무대를 꾸준히 올렸기 때문에 테아트르 드 라 빌이 오늘의 명성을 갖게 된 건 아니다.



초야에 묻혀 있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지원해 세계적 거장으로 키워냈다는 자부심이 극장엔 면면히 흐르고 있다. “우리의 선택이 곧 세계 예술의 역사다”란 믿음이다.



 -무명 예술가가 이곳을 통해 거장으로 성장했다. 그런 안목과 전통은 어디서 시작됐는가.



 “난 예술가는 과학자라고 생각한다. 과학자란 우리가 모르는 것을 발견하고 발명하는 이들이다. 마찬가지로 예술가 역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할 의무가 있다. 피나 바우슈는 연극과 무용을 결합한 무대 언어를 창조했고, 로버트 윌슨은 이미지로 드라마를 구축했다. 새로움은 낯설기에 주저하게도 된다. 그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믿어야 한다. 용기와 열정이 현재의 우리를 만들었다.”



 -한국엔 문턱이 높다. (2002년 김덕수 사물놀이가 파리가을축제의 일환으로 테아트르 드 라 빌에서 공연했고, 2011년 이자람의 ‘사천가’가 분관인 아베스 극장에 오르긴 했지만 극장이 초청해 메인 무대에 오른 한국 예술가는 아직 없다)



 “이자람 공연은 내가 선택했고, 무척 감동적이었다. 판소리는 언제나 특별하다. 아시아 예술엔 늘 촉각을 세우고 있다. 솔직히 한국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더 알고 싶고, 궁금하고, 공연도 보고 싶고, 교류하고 싶다. 그래서 직접 온 게 아닌가.” 



글=최민우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테아트르 드 라 빌=1862년 건축가 가브리엘 다비가 지었다. 초기 예술감독을 지낸 유명 여배우의 이름을 따 ‘사라 베르나르극장’으로 불리웠다. 1968년 리모렐링 후 재개관하면서 현재 이름을 갖게 됐다. 연간 400여 개의 공연이 올라가며 관람객도 40여 만 명에 이른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