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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확정금리 … 비밀번호 알려주세요" 전화로 채권 팔아

동양그룹의 모태 격인 동양시멘트와 계열사인 동양네트웍스가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1일 서울 동양증권 본사를 찾은 고객이 건물을 빠져나오고 있다. [뉴시스]


서울에 사는 회사원 정모(47)씨는 지난 6월 동양증권 지점 직원으로부터 “연 7% 확정금리 상품을 소개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 직원은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넣어봐야 이자가 얼마 안 되지 않느냐”며 “동양그룹에 투자하는 채권이어서 사실상 원금 보장도 된다”고 말했다. “비밀번호만 알려주면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정씨는 3000만원을 넣기로 했다. 정씨가 투자한 채권은 지난달 30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의 만기 1년6개월짜리 회사채. ㈜동양의 재무구조가 나쁜 점을 감안하면 정씨는 원금의 70% 이상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정씨는 “투자계약서를 쓰지 않고 전화통화만으로 채권을 사도록 한 것은 엄연한 불완전 판매 아니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거세지는 동양 불완전판매 논란
CMA 계좌수 1위, 지점 116개 2위
동양증권 고객이 자금 조달 창구



 동양증권이 4만9000명의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그룹 계열사의 회사채·기업어음(CP)을 불완전 판매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1일 소비자단체인 금융소비자원에 따르면 동양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진 뒤 일주일간 1만여 건의 불완전 판매 신고가 접수됐다. 동양그룹의 재무상태나 신용등급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투자했다는 이들이 대다수다. 정씨처럼 지점에 가지도 않고 전화 한 통만으로 수천만원을 투기등급인 동양그룹 채권에 투자한 경우도 많다.



 인천에 사는 투자자 강모(33)씨도 같은 경우다. 그는 오는 11월 전셋집을 옮기려고 CMA에 모아놨던 6500만원을 동양증권 자산관리사의 전화 권유로 만기 3개월짜리 동양인터내셔널 기업어음(CP)에 넣었다. 강씨는 “전세자금이라 안정적이어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걱정 말라’며 CP를 추천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최근에만 벌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9월 “동양증권이 2011년 6~11월에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CP 4329억원을 팔면서 서면으로 된 신탁계약서를 쓰지 않고 전화로 주문 받았다”며 동양증권에 경고하고 관련 임직원을 징계했다. 하지만 징계 이후 감시는 허술했고, 동양증권은 이런 행태를 계속하면서 개인투자자를 늘려 왔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불완전 판매 정황이 드러난 만큼 동양그룹·동양증권에 대한 법적인 조치를 서두르겠다”고 말했다. 금소원은 이르면 2일 검찰에 채권을 발행한 동양그룹과 판매한 동양증권에 대한 수사의뢰 공문을 보내기로 했다. 또 이달 중에 불완전 판매와 관련해 동양그룹 경영진을 형사고발하는 한편 손해배상소송을 내기로 했다. 조 대표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투기등급 채권이 개인투자자에게 팔리도록 방치한 금융당국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확보 창구 역할을 한 동양증권은 결과적으로 그룹에 ‘양날의 칼’이 됐다. 단기적으로 경영자금 마련을 수월하게 해줬지만 중장기적으로 B등급 채권을 ‘돌려막기’한 탓에 부채비율이 급등하고 구조조정이 늦어져 그룹 해체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동양증권이 5만 명 가까운 고객에게 투기등급 채권을 팔 수 있었던 것은 ‘이름값’과 탄탄한 고객 네트워크 덕분이었다. 동양증권은 1990년대부터 소매채권과 지점 영업의 강자로 군림해 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종금사 면허(2011년 반납)를 기반으로 CMA 열풍을 주도하며 고객 수를 늘렸다. 종금형 CMA에 돈을 넣으면 일반 은행 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받는 동시에 5000만원까지 예금자보호가 된다는 점 때문에 직장인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 현재 동양증권은 CMA 계좌 340만 개로 증권업계 1위, 지점은 116개로 현대증권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 증권사 임원은 “CMA 고객을 대상으로 채권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날 동양시멘트·동양네트웍스가 추가로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손실 가능성이 커진 투자자의 숫자는 더 늘었다. 금감원에 따르면 동양시멘트는 총 2253억원의 회사채를 1만292명의 개인투자자에게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양네트웍스는 회사채나 CP 물량이 없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동양그룹 5개 계열사의 회사채·CP 투자자는 총 5만3049명, 1조5564억원으로 파악됐다. 중복 투자자를 감안하면 투자자는 4만9000명 수준이다. 한 채권 담당 애널리스트는 관계자는 “㈜동양·동양인터내셔널·동양레저는 재무구조가 워낙 안 좋아 법원이 법정관리 신청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며 “이럴 경우 파산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손실금은 훨씬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채권시장에서는 개미들의 동양그룹 회사채 ‘폭탄 돌리기’가 시작됐다. 동양그룹 계열사의 채권을 싼값에 산 뒤 단기차익을 노리려는 투기성 자금 때문에 거래량이 급증했다. 동양증권이 2009년 12월 발행해 오는 2015년 6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동양증권78’의 경우 지난달 27일 6억6860만원에 그쳤던 거래량이 지난달 30일 14억290만원으로 늘었다.



 동양증권 금융상품에서는 이날 하루 동안 5000억원의 고객 자금이 빠져나갔다. 지난달 23일 동양그룹 유동성 위기가 불거진 뒤 일주일간 동양증권에서는 모두 7조5000억원의 자금이 이탈했다. 이에 따라 총 16조원이던 동양증권의 고객 자산은 절반 가까운 8조5000억원으로 줄었다.



이태경·홍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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