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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아파트 재건축, 소비를 바꾸다

잠실3단지 트리지움 아파트 앞에 있는 트리지움 상가. 왼쪽 뒤편으로는 잠실 2단지 리센츠 아파트와 리센츠 상가가 보인다. 잠실 상권의 특징은 상가가 아파트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아파트를 둘러싼 대로변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입니다. 혹자는 중산층의 욕망이 집결된 곳이라고도 하더군요. 1970년대 강남 개발과 함께 여기저기 들어섰던 대단위 아파트 단지들이 하나 둘씩 재건축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재건축은 아파트를, 아니 아파트 거주자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요. 잠실 1~3단지를 통해 이를 분석해 봤습니다. 25㎡(7.5평)짜리 집이 모여있는 5층짜리 야트막한 작은 서민 아파트 단지가 큰 평수 고층 아파트 단지로 바뀌면서 그야말로 모든 걸 변화시켰습니다.

우리 동네 상권 ② 신천역 잠실 1~3단지 재건축아파트 상가



엘스 아파트 상가에 있는 (1) 롯데.


우리 동네 상권 <2> : 신천역 잠실 1~3단지 아파트 재건축 후 달라진 소비 패턴

구매력 있는 중산층 유입되자 반경 150m 아파트 상가에 여행사만 6곳




“단지마다 시장을 대신하는 상가가 자리잡고 있으며 19평형을 제외하곤 개별 욕실이 없어서 단지 내 상가 2층의 공중목욕탕이 여느 아파트 단지에서 볼 수 없는 진경이다. 1단지에서 4단지에 이르는 도로변을 따라 늘어선 평균 3층 규모의 상가는 창문마다 광고와 무질서한 간판숲 그대로이다. 1층 도로변의 경우는 평당 월세가 1만5천원 정도라지만 권리금 또한 부르는 것이 값이라 할 정도의 금싸라기 지역이다. 도심을 연결하는 6개의 시내버스노선이 있지만 주거 지역으로서 외에는 너무나 열세에 놓여있는 교통난 지역이기도 하다. ” (1977년 6월 17일자 매일경제) 분양 2년 뒤 한 일간지에 실린 잠실 관련 기사 내용이다. 잠실은 무주택서민·자금이 부족한 신혼부부·철거민 등을 위해 전국 최초로 초소형 아파트인 25㎡(7.5평형) 모델이 들어있던 대표적인 서민 동네였다. 하지만 2007년 잠실 트리지움(3단지)을 시작으로 재건축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면서 대표적 중산층 동네가 됐다. 창문마다 무질서한 간판으로 가득했던 3층짜리 상가는 지하2층 지상5층 규모의 대형 상가로 변모했다. 구멍가게 슈퍼, 철물점, 지물소 등으로 채워졌던 상가 안은 여행사·병원·학원 등이 대신하고 있다. 재건축이 바꾼 모습이다.





단지내 애플 수리점·결혼정보회사까지



 잠실 1~3단지에 각각 하나씩 있는 지상 5층짜리 상가를 둘러보면 다른 아파트 상가에서 보기 어려운 점포가 많다. 애플 기기 수리점과 결혼정보회사가 대표적이다. 특히 여행사는 반경 150m안에 6곳이나 된다. 병원은 어느 동네나 다 있는 치과나 내과는 물론이고 정신의학과·비뇨기과·통증클리닉 같은 특성화한 의료시설도 다 들어와 있다.



 보통 아파트와 달리 이렇게 다양한 업종이 들어서 있는 이유가 뭘까.



 우선 아파트 단지의 규모다. 1만 5000여 세대에 달하는 대단지(1단지 5600세대, 2단지 5400세대, 3단지 3500세대)라 구매력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3단지 트리지움 상가에 입주한 하나투어 관계자는 “규모가 크고 주민 생활수준이 높기 때문에 여행사가 6곳이나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잠실운동장과 한강에 둘러싸인 잠실 엘스(왼쪽)·리센츠 단지. `항아리 상권`으로 불린다. [네이버 항공뷰]
단지 안에서 모든 것 해결하는 ‘항아리 상권’



 오후 1시 동네 주부들과 커피숍에서 만난 후 3시엔 빵집에서 아들 만나 빵 사주고 학원 보내고, 곧바로 여행사에 들러 친정 식구와 갈 여행에 대해 상담한 후, 4시반에 등산용품 전문점에 들러 친정아버지 생신 선물을 사고 5시에 장 보기.



 잠실 3단지 트리지움에 사는 주부 박수진(41)씨의 지난달 10일 오후 일과다. 박씨의 이날 모든 행동반경은 단지 내 트리지움 상가 안에서 모두 이뤄졌다. 박씨는 “여기 살다보니 단지 밖에 나갈 일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9월 24~26일 잠실 1~3단지 아파트 상가에서 만난 이곳 주부 10명도 “단지 밖에 나갈 일이 거의 없다”고 똑같이 답했다.



 잠실 1~3단지 상가 임대료는 38㎡(11.5평)짜리가 월 350만~500만원 선이다. 대기업 아니면 진입이 어렵다고 할 만큼 임대료가 오를대로 오른 가로수길(43㎡·13평·월 250만원)과 비교해도 훨씬 비싸다. 부동산 업자들은 “단지 대형 아파트 단지에 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까지 임대료가 높게 형성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다른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답은 지형에 있다. 잠실 재건축 단지 내 아파트 주민들은 다른 상권으로 이동하기가 매우 불편하다. 특히 1·2단지는 잠실종합운동장과 아직 재개발되지 않은 1980년대 만들어진 구(舊) 상권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이 이곳을 ‘항아리 상권’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런 지형은 공간적 제약 탓에 상권이 더 이상 팽창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지만 거꾸로 소비자가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장점도 있다.



 잠실1번지부동산 김찬경 대표는 “이곳 주민은 차 타고 아주 멀리 나가지 않으면 단지 안 상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흑석동에서 살다 2008년 1단지 엘스로 이사왔다는 이효완(40·여)씨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이 안에서 해결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곳은 지하철 신천역을 끼고 있는 역세권 상권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곳 상권의 가치는 역세권이라는 점보다는 항아리 지형이 결정했다고 분석한다. 부동산 가격이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항아리 상권의 전형인 1단지의 상가는 2·3단지에 비해 임대료가 더 비싸다. 반면 같은 역세권이라도 3단지 상가는 임대료가 싸다. 이곳 주민들이 인근 새마을 시장 등 다른 상권으로 나가기에 편해 ‘항아리 상권’ 조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다.





학군 매력에 40대 비중 높아



 잠실 1~3단지 인구구성 통계를 보면 40대 인구 비중(잠실2동·22.1%)이 송파구 평균(17.3%)보다 훨씬 높다.



 40대 인구 비중이 높다는 건 그들 자녀 세대 인구 비중도 높다는 걸 의미한다. 각 단지에 초·중·고교가 1개씩 있는 데다 학군까지 좋은 게 영향을 끼쳤다. 잠실 1단지에는 잠일초·신천중·잠일고, 2단지에는 잠신초·중·고, 3단지에는 버들초와 영동일고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자녀를 둔 김나연(41·2단지 거주)씨는 “5년 전 이곳으로 이사온 이유 중 하나가 학군”이라고 말했다. 단지 안에서 초·중·고를 모두 보낼 수 있는 장점이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요즘 학군 수요는 집 가까이에 학교가 있느냐보다는 명문 사교육 업체가 있느냐로 결정된다. 그런 점만 놓고 보면 잠실 1~3단지는 한참 부족해 보인다. 중학교가 2곳, 고등학교가 3곳 있지만 입시학원이라곤 2개 뿐이다. 이유가 있다. 대치동과의 거리다. 잠실 1~3단지는 자동차로 10~15분이면 도착할 만큼 대치동과 비교적 가깝다. 이곳 중고생 대부분 대치동으로 학원을 다닌다. 학원에서 잠실 거주 학생을 위해 셔틀버스를 운행하기도 한다. 대치동의 한 학원 관계자는 “수강생 30% 가량이 잠실에서 온다”고 말했다.



“뉴타운 2.0버전…강남의 미래”



 잠실 1~3단지를 앞으로 만나게 될 ‘강남의 미래’로 표현하는 학자가 적지 않다. 윤혜정 평택대 도시·부동산 개발학과 교수도 그 중 하나다. 그는 “강남을 개발한지 40여 년이 넘어가면서 재건축이 본격화하고 있다”며 “개포·가락동을 비롯해 향후 재건축이 유력한 압구정·잠원동 등도 이런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뉴타운 2.0 버전’이라고도 설명했다. 무슨 말일까.



 윤 교수는 “1970년대 개발된 압구정·반포·잠실 등 강남의 대단위 주거지는 대규모 개발계획으로 조성한 서울의 첫 뉴타운, 즉 뉴타운 1.0 버전이었다”며 “1.0버전의 특징은 일명 ‘성냥갑’이라는 네모 반듯한 건물 형태와 널찍하게 떨어진 동 사이의 거리, 단지 내 조성된 테니스장 등”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상가 건물은 모든 단지 주민이 이용하기 편리하게 단지 가운데에 지었다”고 덧붙였다.



 뉴타운 1.5버전은 90년대 후반에 나왔다. 도곡동 타워팰리스로 상징되는 주상복합이다. 천정부지로 솟은 강남 땅값을 반영해 아파트를 높게 짓고 그 안에 운동 시설이나 상가 등을 모두 집어 넣었다. 한때 꿈의 거주지로 여겨졌던 주상복합 인기는 이미 시들해진지 오래다.



 부동산컨설팅업체 대호21 박원순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주상복합은 주거용지가 아니라 상업용지에 지은 건물이라 관리비는 일반 아파트의 5~6배에 달할 정도로 비싸다. 재산세도 마찬가지다. 또 상업용지는 용적률이 800~1000%에 달하지만 잠실 단지처럼 주거용지는 400~600% 정도기 때문에 주상복합으로 재건축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



 이런 이유 등으로 2000년대 중후반 현재의 잠실처럼 주거지역과 상가를 분리한 2.0 버전이 다시 등장했다. 그렇다고 1970년대 강남개발 시대로 되돌아간 것은 아니다. 상가는 그때처럼 주거지역과 분리됐지만 단지 내 중심이 아니라 도로변으로 밀려났다. 상권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단지 한가운데 있던 상가가 대로변으로 내몰리면서 주민 편의는 전보다 떨어진 게 사실이다. 이는 집값에도 영향을 끼쳤다. 김세빈 공인중개사무소의 김세빈 대표는 "상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동은 똑같은 100㎡(30평)대를 기준으로 매매가 2000만원, 전세가 1000만원 가량 더 싸다”고 말했다.



트리지움 아파트 서문 건너편에 있는 (7) 중앙마트 직원이 배달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8) 알파마트 3호점. 중앙마트와 함께 저렴한 가격과 질 좋은 물건으로 주민들이 애용하는 곳이다.


울산은 현대, 용인은 삼성, 잠실은 롯데!



 “이곳 주민치고 롯데카드 안 갖고 있는 사람 없을 거다.”



 압구정동에서 살다 결혼 후 이곳으로 이사 온 정현주(40·1단지 거주)씨는 “여기 오기 전까지 롯데카드를 써본 일이 없다”며 “여기선 가입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 말했다.



 잠실 1~3단지는 롯데를 빼놓고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김인숙(42·3단지 거주)씨는 “주말에 갈 곳 없으면 애들이랑 롯데월드에 간다”며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롯데카드로 계산하면 5% 할인도 해준다”고 말했다. 박기숙(51·2단지 거주)씨도 “단지 안 롯데마트에서 롯데카드로 결재하면 주소가 자동으로 찍힌다”며 “번거롭게 따로 적지 않아도 알아서 배달해줘 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울산은 현대, 용인은 삼성을 떼놓고 설명하기 어렵듯 잠실은 롯데 타운”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여가(롯데월드·샤롯데시어터·롯데시네마), 생필품(롯데마트), 고급품(롯데백화점), 편의점(세븐일레븐) 등을 롯데가 책임지고 있어 주민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크다.





잠실의 고민



 잠실 1~3단지 주민들의 2007년을 시작으로 서울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이다. 사실상 동네의 역사가 6년에 불과한 곳이다. 그러다보니 압구정 현대아파트 상권에서 소개했던 동아서점이나 현대청과처럼 유명한 가게가 없다. 속칭 ‘뿌리 없는 동네’의 한계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편리하지만 ‘깊이’가 없다”고 한 마디로 정리했다. "재개발과 함께 기존 원주민이 대부분 나가고 각지에서 입주민이 들어오다보니 단골을 상대로 하는 유서깊은 식당이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재개발로 인한 임대료 상승도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가게가 많고 10평대의 소규모 가게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주민들이 느끼는 결핍감도 적지 않다. 한 주민은 “유명한 맛집이나 분위기 좋은 카페 하나 없다”며 "가족들과 외식을 하려면 강남권으로 갈 때가 많다. 동네 아주머니들이랑 좋은 카페를 찾아 하남시나 미사리까지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을까. 박원순 대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잠실 1~3단지 상권의 특징은 폐쇄적인 항아리상권이면서도 유동인구가 많은 역세권이라는 독특한 특징, 거기에 주민 다수가 ‘정착민’이 아니라 ‘유목민’이다. 즉, 학군을 찾아왔다가 나가는 30~40대의 이동이 많다는 것”이라며 "이곳만의 개성을 갖춘 상권이 들어서기는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안혜리·유성운·심영주·조한대 기자 ,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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