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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여자의 전유물, 까르띠에 손에서 남자의 물건으로 거듭나다

왼쪽부터 탱크 디반, 탱크 루이 까르띠에, 탱크 상트레, 탱크 아 기셰.


역사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이야기, 중요한 화제가 모이고 쌓여 역사를 이룬다. 브랜드나 상품, 회사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이야기 유산이 풍부한, 역사·전통이 오랜 브랜드일수록 소비자의 흥미를 자극할 소재를 무궁무진하게 갖고 있다. 1847년 창업한 프랑스 브랜드 ‘까르띠에’에는 그래서 얘깃거리가 많다. 166년 동안 지속한 브랜드이니 166년 동안 개발한 상품과 기술에 관련한 것만 나열해도 얘깃거리가 차고 넘친다. 까르띠에의 흥미진진한 역사를 알아 봤다.

까르띠에 166년의 역사, 탱크의 시간
창업자 손자, 비행사 친구 위해 제작
실용성에 미학적 우수성 겸비, 젊은 군인들 찾으면서 대중화
1917년엔 탱크 본뜬 디자인 완성, H 모양 테두리, 기하학적 균형 특징



까르띠에 탱크를 처음 디자인한 루이 카르티에.
◆보석의 왕, 왕의 보석상=까르띠에라는 브랜드는 보석으로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브랜드 자체가 보석 세공 장인 루이프랑수아 카르티에의 보석상에서 출발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다이아몬드와 금·은, 루비나 사파이어처럼 진귀한 돌을 깎아 만든 보석을 주로 취급했다. 그러니 보석 장인 카르티에가 상대한 고객들은 주로 유럽의 내로라 하는 왕가와 쟁쟁한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시대의 유행을 주도하고 문화적 흐름을 이끌던 이들에게 루이프랑수아 카르티에의 섬세한 보석 디자인이 알려지며 브랜드의 명성도 차츰 높아졌다.



창업자 루이프랑수아의 아들 알프레드, 알프레드의 세 아들 루이조제프, 자크테오딜, 피에르카미유는 까르띠에를 국제 브랜드로 키웠다.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영국 런던, 미국 뉴욕에까지 커다란 까르띠에 상점을 내고 각국의 명사들을 고객으로 맞아 들였다. 영국의 에드워드 7세는 즉위 전 ‘웨일스 왕자’ 시절 까르띠에를 ‘왕의 보석상, 보석의 왕(Jeweler to Kings, King of Jewelers)’이라 칭찬하기도 했다. 에드워드 7세는 1902년 자신의 대관식 때 까르띠에에 티아라 27개를 주문했고, 즉위 2년 뒤인 1904년 까르띠에를 영국 왕실의 공식 보석상으로 지정했다. 이후 까르띠에는 스페인·포르투갈·러시아·그리스·벨기에·세르비아·루마니아 등 많은 유럽 왕가의 공식 보석상 역할을 도맡았다.



스위스 라쇼드퐁에 있는 까르띠에 시계제작소에서 시계 장인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시계 역사에 손목시계가 등장한 건 19세기 후반의 일이다. 손안에 쏙 들어가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회중시계(懷中時計)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게 손목시계다. 시계를 손목 위에 얹은 형태를 처음 개발한 건 스위스 시계 브랜드 파텍 필립으로 알려져 있다. 까르띠에는 20세기 초, 손목시계를 대중에 본격적으로 알린 브랜드로 평가 받는다.



루이 카르티에가 1904년 제작한 시계 ‘산토스(Santos)’가 손목시계 대중화의 첫 주자로 꼽힌다. 루이 카르티에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알베르토 산토스 뒤몽의 요청에 따라 만든 것이다. 비행기 조종사였던 산토스 뒤몽이 “비행하면서 회중시계를 보는 게 거추장스럽고 불편하니 손목시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시계 전문가인 존 브로젝이 2004년 1월 ‘인터내셔널 워치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손목시계가 처음 소개된 19세기 당시에는 주로 여성용 시계로 인식됐다고 한다. 점잖은 남성의 필수품으로 여겨진 건 오직 회중시계뿐이었고 손목시계는 여성들의 노리개에 불과하다는게 일반적 인식이었다고 한다. 손목시계의 여성성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남자들이 손목시계를 차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치마도 입고 다니게 될 것’이란 사회적 조롱을 낳기도 했다는 게 브로젝의 주장. 하지만 산토스 뒤몽과 같은 참전 군인들이 실용적이면서도 멋진 손목시계를 차기 시작하자 이런 인식이 바뀌었다고 한다. 루이 카르티에가 디자인한 손목시계 산토스는 실용성과 미학적 우수성까지 겸비한 덕에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같은 모델명으로 계속 생산되고 있다.



까르띠에 탱크 시계를 찬 영화배우 알랭 들롱(사진 왼쪽)과 영화감독 장피에르 멜빌.
◆탱크 닮은 ‘탱크’ 시리즈=까르띠에는 보석상에서 출발해 시계로 분야를 넓히며 진화해 온 브랜드다. 왕의 보석상이란 별칭 못지않게 브랜드의 명성에 힘을 보탠 게 손목 시계 ‘탱크(Tank)’ 시리즈다. 브랜드 창업자 루이프랑수아 카르티에의 손자인 루이 카르티에가 처음 디자인했다.



손목시계 대중화의 첫 주자인 산토스를 디자인한 루이 카르티에는 1917년 탱크 모양을 본뜬 시계 디자인을 완성했다. 그가 활동한 20세기 초 유럽 대륙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 새 문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탱크 등 신식 무기가 총동원된 세계 전쟁 이후 프랑스 파리의 예술가들은 ‘아르데코(Art Deco)’라 불리는 새로운 디자인 경향에 심취했다. 아르데코는 1925년 파리에서 개최된 ‘현대장식미술·산업미술국제전’에 처음 등장한 용어. 프랑스어로 ‘장식 예술’을 뜻하는 ‘아르 데코라티프(art decoratif)’가 기원인 예술 경향이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기술 발달에 힘입어 생산력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현대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이런 사회적 흐름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예술가들의 시선이 아르데코에 녹아 있다. 그래서 아르데코 양식에선 나비·꽃 같은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적인 것보다 기계의 부속품처럼 기하학적으로 정교하게 계산된 디자인이 특징이다.



루이 카르티에가 만든 ‘탱크’도 아르데코 경향을 충실하게 반영한 디자인이었다. 손목시계를 위에서 내려다 보면 알파벳 H 모양을 닮은 위아래 긴 직사각형 시계 테두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탱크를 위에서 본 모양을 본뜬 것이다. 시계판에 보이는 분침은 철도 선로를 연상케 하는 기하학적 무늬로 장식돼 있다. 이처럼 탱크는 새로운 세기, 새로운 예술 경향, 새로운 사회적 환경을 모두 반영해 탄생한 시계 모델로 역사에 남았다.



루이 카르티에의 디자인이 시대를 한발 앞선 것도 탱크의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탱크를 최초로 세상에 내놓은 게 1917년이니 아르데코란 신 사조가 널리 알려진 1925년보다 8년이나 앞선 시기다. 단순한 선을 복잡한 도안으로 그려내 기하학적 균형미를 추구한 아르데코 양식을 시계 디자인에 끌어들인 건 당시 대중의 취향과 너무 달라 모험적인 시도였다. 루이 카르티에가 탱크를 만들기 전, 프랑스 파리의 장식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아르누보(Art Nouveau)’ 경향이었기 때문이다. 아르누보는 부드럽고 풍만한 선과 부피감을 강조한 양식이다. 사회 전반에 유행하는 경향과 달리 과감한 시도를 한 루이 카르티에의 도전은 탱크의 큰 성공으로 귀결됐다. 당시 전반적으로 유행하던 취향과는 다른 반전, 즉 형식적인 엄격함을 추구한 아름다움이 탱크 시계 디자인의 역량이었고 이것이 하나의 확고한 트렌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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