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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뉴스 인 뉴스<227>세계의 주요 원전 사고

강혜란 기자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원전 주변에선 방사능 오염수 유출을 막기 위한 사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1954년 소련(현 러시아)의 오브닌스크 원전 건립 이래 인류는 원자력의 편의성과 위험 사이에서 도전과 응전을 계속해 왔습니다. 지난 반세기간 주요 원전사고와 이를 극복해온 역사를 돌아봅니다.

# 후쿠시마 원전, 금세기 첫 7등급 사고

20만 명 피폭 체르노빌 사고의 역설 … '안전한 원전' 기폭제 됐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46분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臺)시 동쪽 130㎞ 해저에서 규모 9.0의 강진이 발생했다. 인류가 지진을 관측하기 시작한 1900년 이래 네 번째 규모의 강진이다. 최대 14m 높이의 지진해일(쓰나미)이 밀어닥쳤다. 이 영향으로 진앙지와 인접한 해안가의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제1원전)에서 수소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처음에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4등급(시설 내부의 위험사고)으로 규정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5등급(시설 외부로의 위험 사고)으로 올린 후 다시 6등급(심각한 사고)을 거쳐 최고 수준인 7등급(대형 사고)으로 상향했다.



 등급이 차츰 상향된 데서 보이듯 강진이 바로 원전 폭발사고를 초래한 것은 아니다. 모든 원전은 지진이 발생하면 자동 정지하도록 설계돼 있다. 당시 지진 영향권에 있던 후쿠시마 제1원전의 1~3호기와 제2원전의 1~4호기, 오나가와 원전의 1~3호기, 도카디 원전의 2호기 등 11기가 강진을 감지하고 멈춰 섰다. 후쿠시마 제1원전 4~6기는 정기검사로 가동 중단 상태였다.



 문제는 냉각시스템. 가동 중지로 핵분열은 멈추더라도 이미 달아오른 핵연료를 식히는 냉각시스템은 가동돼야 한다. 그런데 제1원전에 전력을 공급해온 신후쿠시마(新福島) 변전소 철탑이 지진으로 쓰러져 전원이 끊겼다. 자동으로 비상용 발전기가 가동됐지만 이마저도 쓰나미가 덮치자 유명무실해졌다. 제1원전의 1~6기 건물 전체가 4~5m 높이로 침수되면서 ‘발전소 블랙아웃’(Station Black Out)이 발생한 것이다.



 냉각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원자로 노심(爐心)을 식혀 주는 냉각수 유입이 중단된다. 제1원전 1~3호기의 경우 노심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면서 노심 용융(melt down)이 발생했다. 그 결과로 핵연료가 용융하고 수소 폭발사고로 이어지면서 원자로 격벽이 붕괴돼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다. 4호기는 가동 중단 상태였지만 화재가 발생하면서 건물 지붕이 붕괴됐다. 이 상황에서 폐연료봉(사용 후 핵연료) 저장수조의 냉각시스템이 중단되자 핵분열 연쇄반응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우려됐다.



 사력을 다한 방재작업 끝에 원자로 자체가 폭발하는 참사는 막았다. 냉각수 대신 바닷물을 대량 투입해 노심 온도를 낮췄기 때문이다. 대신 방사성 물질을 머금은 오염수가 대량으로 발생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더 이상 처리할 방법이 없어지자 일부 저농도 오염수를 바다로 방출하기도 했다. 4월 12일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의 사고 수준을 7등급으로 격상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전까지 7등급은 1986년 소련(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유일했다.



#원자폭탄 개발이 54년 첫 원전으로 이어져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소아암을 앓고 있는 우크라이나 어린이가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중앙포토]


 세계 최초의 원자로는 1942년 11월 이탈리아 출신의 물리학자인 엔리코 페르미가 미국 시카고대 지하에 만들었다. 플루토늄 생산이 목적인 이 원자로 건설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41년 미국이 시작한 원자폭탄 제조계획(맨해튼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의 최고 책임자는 ‘원폭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로버트 오펜하이머였다. 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페르미의 원자로에서 생산된 플루토늄으로 만든 것이다.



 원자폭탄의 원리는 우라늄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핵분열 반응이 일어난다는 데 기초한다. 일정한 조건하에서 연쇄적인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면 막대한 에너지가 발생한다. 선사시대 인류에게 불이 위협인 동시에 도구였듯,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핵에너지도 인류가 활용하기 나름이다. 군사 목적으로 만든 게 원자폭탄이고, 연쇄반응 속도를 조절해 에너지원으로 개발한 게 원자력발전이다.



당시 원전 4호기는 원자로를 덮고 있던 건물 지붕까지 날아가 최악의 방사능 누출을 기록했다. [중앙포토]
 최초의 원자력발전소는 54년 소련 모스크바 교외의 오브닌스크에 세워졌다. 6㎿의 설비용량이었다. 오브닌스크 원전은 2002년 4월 30일 원자로 불을 끌 때까지 48년간 가동됐다. 본격적인 상업용 원전시설은 56년 세워진 영국 캘더홀발전소로 50㎿ 설비용량이었다.



 1g의 우라늄235가 완전 핵분열했을 때 나오는 에너지는 석유 9드럼(약 1430여L) 또는 석탄 9t을 태울 때 나오는 에너지와 맞먹는다. 그만큼 경제적이다. 게다가 73년 1차 오일쇼크는 자원 빈국들에 중동 석유에 언제까지 의존해선 안 된다는 경각심을 줬다. 프랑스·일본 등이 앞장서 원자력에너지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전이라는 첨단기술을 다루는 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방사능 누출사고가 터졌다. 대표적인 대형 사고가 미국 스리마일섬(TMI) 원전사고(5등급)와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7등급)다.



#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 미 신규 원전 중단



79년 누출사고를 낸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이 멀리서 보인다. [중앙포토]
 79년 3월 28일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 인근 스리마일섬 원전 2호기에서 방사성 물질이 누출돼 주민들이 대피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미 원자력 역사상 가장 심각한 사고 기록이다. 스리마일섬은 길이가 3마일(약 4.8 ㎞)쯤 되는 좁고 기다란 섬. 사고 원자로는 이곳 원전 두 기 가운데 2호기였다. 78년 4월 전기 생산을 시작한 지 불과 1년여 만이었다. 증기발생기에 냉각수를 보내는 주급수펌프 이상이 발단이 됐다. 자동으로 물을 공급하는 긴급노심냉각장치가 작동했지만 계량을 오판한 운전원이 냉각장치를 정지시키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압력밸브 등 다른 방호시스템까지 오작동하면서 노심의 절반 이상이 녹아내렸다(노심 용융).



 방사능 피폭 우려 속에 10만여 명이 피난했다. 다행히 방사능 누출은 많지 않았다. 1m 두께로 견고하게 설계한 원자로 격납용기 덕분이었다.



 이 사고로 미 사회에 원전산업에 대한 불신이 증폭했다. 반핵·반원전 운동이 힘을 얻으면서 미국 내 수십 개 원전이 건설 승인을 받고도 계획이 취소됐다. 지미 카터 당시 미 대통령은 “미국은 새 원전을 짓지 않는다”고 공언했다.(미국은 사건 발생 31년 후인 2010년 2월에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조지아주 버크 카운티에 원전 건설 재개를 선언한다.)



 그러나 각국의 원전 건설이 사실상 중단된 계기는 이보다 7년 뒤다. 스리마일섬과 비교할 수 없는 최악의 재앙이 세계를 전율시켰다. 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전사고다.



# 체르노빌 사고, 히로시마 400배 방사능 누출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고 당시 방출된 방사능 양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약 400배에 달한다. 이로 인한 인명 피해 규모에 대해선 사고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분석이 엇갈린다. 피폭 효과가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이다.





 2006년 유엔체르노빌포럼이 원전사고 20년을 맞아 발표한 보고에 따르면 사고로 인한 직접 사망자는 4000여 명. 이 가운데 50명이 사고 한 달 내 급성방사선증후군으로 숨졌다. 대다수는 사고 당시 원자로 운영을 담당하고 있던 근로자들과 화재 진압, 응급구호 작업에 투입된 소방대원이었다.



 당시 사고 수습을 위해 투입된 작업자 중 피폭된 사람은 20만 명이 넘는다. 갑상샘암·백혈병·악성종양 등이 피폭 후유증으로 발병됐다. 사고 수주 내 원자로 주변 반경 30㎞ 인근 주민 11만여 명이 대피했지만 이미 상당수가 피폭된 상태였다. 지상 1㎞ 높이까지 치솟은 방사능 낙진이 벨라루스·러시아·우크라이나 일대에 떨어졌다. 체르노빌에서 3㎞ 떨어진 도시 프리퍄티는 사고 이후 전 주민(당시 5만 명)이 소개돼 지금까지 유령도시로 남아 있다.



 사고 당일 체르노빌 원전에선 터빈 발전기의 관성력 이용 실험을 위해 원자력 출력을 3분의1 정도로 낮추고 있었다. 이 실험을 위해 원자로 안전상 필요한 긴급 노심냉각계 등 안전장치와 컴퓨터 자동제어시스템을 제거한 상태였다. 그런데 직원의 실수로 원자로가 거의 정지 상태에 이를 만큼 출력을 낮추다가 재가동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출력을 다시 높이기 위해 제어봉을 올리는 과정에서 원자로에 무리가 가해졌고, 핵연료가 순간적으로 파열돼 수소폭발을 일으켰다.



 당시 원전엔 격납용기가 없었다. 폭발이 화재로 이어지고 수차례에 걸친 수소폭발로 원자로 구조물 상부도 날아갔다. 이후 약 9일에 걸쳐 총 140t의 핵연료 중 약 8t이 일부 감속재와 함께 원자로에서 누출됐다. 낙진의 80%가 떨어진 벨라루스는 국토의 4분의1이 출입금지 구역이 됐다.



# 안전한 원전, 그 험난한 꿈을 향한 여정



 파멸과 같은 사고에도 인류는 아직 원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위험도 있지만 그것이 주는 혜택 또한 엄청나기 때문이다. 2010년 기준 원전의 전력생산단가는 ㎾h당 39원으로 액화천연가스(LNG)나 석유류(185원)의 20~30% 수준이다. 유연탄(60원)의 3분의2 정도다. 태양력발전(700~800원) 등 신재생 에너지에 비해 경쟁력이 월등하다. 지구온난화를 부르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면서 더 많은 이들이 저렴하게 전기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원자력만 한 걸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역설적으로 원전사고는 더 안전한 원전을 향한 도약의 계기가 돼왔다. 스리마일섬과 체르노빌 사고는 사고 유형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결과는 판이했다. 그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설계의 차이다. 체르노빌은 원자로를 감싸는 격납용기가 없었던 반면 스리마일 원전은 방호벽이 견고했다. 이 때문에 현대 원전은 외부에서 비행기가 충돌해도 끄덕 없을 만큼 견고한 5중 방호벽이 기본이다. 사고가 나도 방사선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함은 물론이다.



 또 체르노빌 사고 피해의 교훈은 원자력시설의 안전성은 전 지구적인 메커니즘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인식 아래 IAEA가 제창한 원자력안전협약이 96년 발효됐다. 협약은 2011년 6월 기준 65개국이 서명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이런 점에서 또다시 원전 안전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2011년 5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전 세계 원자력 시설의 총체적인 안전성 평가 실시 등 안전 최우선의 원자력 정책이 강조됐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이탈리아·스위스·일본 등은 원전 비중을 줄이려 하고 있고, 미국과 프랑스도 신규 건설보다 기존 원전 안전성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반면 중국·인도·러시아 등은 기존의 원전 확대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2011년 9월 세계원자력협회(WMA) 보고서는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2030년 세계 원자력발전 용량이 2010년(364GW)보다 70% 늘어난 614GW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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