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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총수 일가 잇단 구속 … 움츠러드는 재계

주요 기업 사옥들이 밀집한 서울 도심가에 짙은 어둠이 깔려 있다. 대기업 총수들이 한층 엄격해진 사법 잣대로 연이어 법정 구속되는 등 수난을 겪자 재계 전체도 덩달아 움츠러들고 있다. [중앙포토]


재계가 전례 없이 뒤숭숭하다. 27일 최재원(50) SK그룹 부회장이 법정구속되면서 구속 처분을 받은 재벌 총수 일가의 숫자가 8명에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이 대열에 합류할지도 모를 기업인들도 적지 않게 거론되고 있다. 가히 ‘기업 총수 수난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서초동에 소환됐던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태 때나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도 없었던 현상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관용·선처 사라진 판결
기업인 사법처리 파장



 현재 구속 처분 상태인 총수 일가는 SK그룹의 최태원(53) 회장과 동생인 최 부회장, 김승연(61) 한화그룹 회장, 이재현(53) CJ그룹 회장, 태광그룹의 이선애(85) 전 상무와 아들인 이호진(51) 전 회장, 구자원(77) LIG그룹 회장과 구본상(43) LIG넥스원 부회장 등이다. 구속 시점과 양태는 제 각각이다.



형제·부자·모자 … 가족 동시구속도



 회사자금 465억원을 빼돌려 개인투자에 전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SK 형제들은 자금 전용 주도자가 누구냐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면서 수시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최 부회장은 수사 단계에서 구속됐다가 1심에서 자금 전용과 무관하다는 판단에 따라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1심 결론을 뒤집고 유죄 판결을 내린 바람에 재수감된 경우다. 반대로 SK 최 회장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심에서 자금 전용을 주도했다는 결론과 함께 법정구속됐고 2심에서도 풀려나지 못했다.



수천억원대의 배임 또는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CJ 이 회장, 태광 이 전 회장은 수사 및 기소 단계에서부터 구속 상태였고 한화그룹의 김 회장과 이선애 전 상무는 불구속기소됐다가 법정구속됐다. 어음 발행 사기 사건에 연루된 LIG의 경우 구 부회장이 처음부터 구속기소된 반면 구 회장은 불구속기소됐다가 법정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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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많은 기업 총수 일가들이 같은 시기에 한꺼번에 구속 처분을 받은 것은 이례적인 경우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 세태가 변했다고 말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법원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얘기다. 과거 법원은 기업 총수들이 재판에 넘겨지면 “나이가 많고 국가 경제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이유로 대부분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한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은 ‘총수 전용 형량’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법원에 ‘신상필벌’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이런 판결은 거의 사라졌다. 전과는 달리 불구속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수사기관이 아닌 법정에서의 진술과 증언만으로 실체적 진실을 판단하자는 ‘공판중심주의’의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가족이 동시에 기소될 경우 한 명은 풀어주던 관행도 사라졌다. SK(형제)·태광(모자)·LIG(부자)는 가족이 동시에 구속된 경우다.



‘인신모독 재판’ 기업 이미지 타격



 2000년대에 대대적인 수사를 받았던 대기업 관계자는 “과거에는 검찰 기소 단계에서 사실상 최종 형량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검찰이 불구속기소하면 법원은 으레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구속기소되더라도 1심 또는 최악의 경우 항소심에서는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졌다. 2명이 동시 기소되면 반드시 1명은 풀려났다. 하지만 이제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과거보다 형량이 무조건 높아졌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부 들어 특별사면 자제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형집행정지나 구속집행정지도 실효성이 많이 낮아졌다. 집행정지는 그 기간 중에 특별사면을 받고 풀려나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특사가 없을 경우 집행정지 필요성이 소멸되면 다시 수감시설로 돌아가야 한다. 현재 김 회장, CJ 이 회장, 태광의 이 전 회장과 이 전 상무가 신병 등의 이유로 집행정지 상태에 있다.



공격 투자, 신사업 추진에 차질



 그러나 이런 법원의 관용 없는 ‘판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결정권자가 없어 적극적인 투자와 신사업 추진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SK그룹은 최근 STX에너지 인수전 참여를 포기했다. 또 잘못을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간혹 ‘선명성 경쟁’을 하듯 과도하게 형량을 높이는 ‘보여주기’식 판결도 연이어 나오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엄격한 법적용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재판 또는 선고 과정에서 기업인들을 ‘사회악’처럼 표현하거나 인신 모독도 서슴지 않는 검사·판사의 언행도 해당 기업 임직원의 사기는 물론 경영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다” 고 지적했다.



 하지만 재계의 ‘사법공포증’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선종구(66) 전 하이마트 회장이 3000억원대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몇몇 기업들도 탈세 등으로 인해 검찰 고발을 앞두고 있다.



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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